장보응 목사 <영광교회>
종교간의 관계가 중요한 관심사로 되고 있다. 요즘 특히 무슬림 과격주의자들의 폭력 행사가 세계적인 위험이 되면서 모든 종교가 다 미덕이 있고 결국 좋은 것을 가르친다는 생각은 실감나는 수정을 받게 되었다. 사회 안에서 종교들이 조화를 이루며 유익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더 심각한 증오와 균열의 뿌리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때에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들의 지혜와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종교들마다 받는 비판과 작은 마찰들은 늘 있어온 일이지만 그 중에 기독교인들도 그 믿는 바를 타협하지 못하고 자기들의 종교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며 다른 종교를 무시한다는 비판의 소리도 들렸다.
기독교가 독선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의 구주라고 믿는 데에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믿고 여기에 관해 양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는 성경의 말씀을 대할 때 기독교인들이 가질 수 있는 유동의 여지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 기독교인들을 비난해도 소용이 없다. 이 점은 기독교인들이 대답한다던가, 타협한다던가, 흥정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배타적 구원의 길은 만들어 낸 주장이 아니라 주어졌기 때문이다. 타협이나 양보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주된 관심은 구원이었다. 흔히 말하는 대로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목 하는 선행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분은 가장 큰 실패자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분은 수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고 끝내 죽임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진정 예수님의 최대 관심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에 나타난 대로 인간을 죽음에서 구원하여 살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기독교인의 큰 관심도 구원에 있다. 그 외의 다른 사회적 이슈들은 이차적이다. 죽어가던 내가 살았고 죽어 가는 이웃을 살리겠다는 마음에 사로잡힐 때 그 눈에 다른 것들이 작게 보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타협하고 수정하여 결국 또 하나의 기독교 비슷하지만 구원이 없는 종교가 되는 위험은 취할 것이 못된다. 다른 종교와의 융화와 공존은 필요하지만 영혼이 살고 죽는 문제 앞에서는 그 우선 순위가 많이 떨어지는 것이다.
기독교인과의 사회적 대화는 기독교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한다. 기독교의 노력이 단지 종교적인 세력확장과 정복욕으로 비판되는 것은 옳지 않다. 내 이웃과 내 민족을 살길로 인도하겠다는 노력과 주변의 다른 종교 단체들을 죽이고 자신이 비대해 지겠다는 노력은 그 근본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경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살펴보면 종교마다 자기 나름대로의 배타적 주장이 있다. 그리고 그 종교인이 자기의 주장에 충실할 때 진실 되고 아름다운 것이다. 다른 종교와 융화하기 위해 자기의 믿는 바를 마사지하는 종교인은 많은 사람을 실망시킨다. 뿐만 아니라 나 혼자만 옳다고 믿고 자기와 다른 사람은 배척한다고 기독교인을 비판할 때는 자기 모순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비판자도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로 기독교인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인이 자기의 믿는 바에 충실하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나와 다르고 또 그 믿는 바가 틀렸다고 내가 생각하더라도 그 사람의 믿는 자유는 상호 존중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자유를 존중해 주는 것이지 모든 사람들이 믿는 바가 다 그 나름대로 동등하게 진리가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수님 만이 구원을 준다고 믿는 기독교인이 다른 종교인을 사회적으로 수용하고 공존할 수 있다. 이 수용의 능력은 개인적인 소양에도 기인하겠지만 그 근본은 기독교 복음의 성격 자체에서 볼 수 있다. 기독교는 강요된 믿음을 원치 않는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안 믿을 수도 있고 다른 종교를 신봉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권하는 것이다. 칼을 들이대고 강요하는 개종은 자신 있는 종교가 하는 일이 아니다. 이렇게 볼 때 다른 종교는 순수한 기독교 신앙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사회의 평온을 위한 종교인들의 기여가 필요한 때에 기독교인의 노력이 잘 이해되면 좋을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