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문명’이라고 했던가.
복잡한 종교전통에 낡은 인습의 포로가 돼 있다. 가난과 무지가 지배한다. 절망의 나락에라도 빠져든 것 같다.
중국과 맞먹는 거대한 나라다. 말 그대로 그 자체로 한 문명권이다. 그러나 관심에서는 항상 제외돼 왔다. 소망이 없어 보여서다. 인도 이야기다. 이 인도가 세계를 계속 놀라게 하고 있다. 총선 결과 잇달아 파란의 드라마가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걸어서 투표소까지 가는데 며칠이 걸린다. 그 넓은 인도 전역에서 한 주에 걸쳐 투표가 실시됐다. 난동과 소요의 투표였다. 민주주의의 기본 시스템은 그렇지만 제대로 작동됐다.
결과는 국민회의당의 승리다. 문맹의 농촌 유권자들이 한 표 행사로 정권을 바꾼 것이다. 세계가 놀랐다. 관심의 초점은 곧바로 소냐 간디에 쏠렸다.
이탈리아 태생으로 라지브 간디 전 총리와 결혼해 인도국적을 취득했다. 이 외국태생 여 당수가 인도 총리로 집권해 ‘간디 왕조’는 계속 이어질 것인가.
세계가 또 한차례 놀랐다. 소냐는 총리직을 고사한 것. 그리고 소수계 중에도 소수인 시크교도 출신 만모한 싱을 총리로 지명했다. 잇단 쇼크다. 그러나 신선한 변신이다.
인도는 앞으로도 계속 전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새로 대두되는 전망이다. 세계 경제의 견인차로서 인도는 중국을 따라잡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인도 경제개혁의 설계자 만모한 싱이 총리로 임명되면서 그 전망은 설득력을 넓혀가고 있다.
세계의 관심은 온통 중국에 쏠려 있었다. 닉슨 대통령이 화려한 핑퐁 외교를 통해 중국을 소련견제의 파트너로 이끌어 들인 이후부터의 현상이다.
눈부신 경제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으로, 중국으로 외국자본이 몰려든다. 하루라도 중국 뉴스가 빠지는 날이 없다. 중국은 미국의 경쟁자가 될지도 모른다. 중국에 대한 기대이자 우려다.
중국 바람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을 때 인도는 차분한 성장을 해왔다. 그 성장의 원년은 1992년이다. 파산상태의 인도 경제의 해결사로 싱이 국민회의 정부의 재무장관에 취임한 해다.
페이비언 사회주의라고 했나. 먼저 그 인도형 사회주의 경제의 틀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해외자본을 도입하고 루피화의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과감한 개혁정책을 펼친 것이다.
빈사상태의 인도 경제가 살아났다. 5% 남짓 성장률을 보이던 경제가 8%의 성장률을 보이게 된 것이다. 국민회의 정부는 96년 선거패배로 물러났으나 시장경제 지향의 개혁은 이후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이때부터 인도는 어쩌면 중국을 능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점을 워싱턴은 특히 주목해 왔다.
무한궤도를 질주하는 듯하던 중국경제는 약점을 드러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다. 소득 격차가 날로 벌어진다. 악성대부가 쌓인다. 범죄가 증가한다. 국가소유의 거대 기업들은 날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방대한 외국자본의 유입이 자생적 기업의 성장을 막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투명성이 결여된 중국 시스템이 한계를 보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느리다. 인도의 특성이다. 그렇지만 모든 면에 투명성이 보장돼 있다. 금융시장이 원활히 돌아간다. 법치(法治)가 자리를 잡았다. 민주제도가, 언론이 살아 움직인다.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체제 인도가 중국과 차별되는 게 이 부문이다. 잇단 종교폭동, 그칠 새 없는 분리주의운동, 빈곤 등의 산적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시스템을 발판으로 생명공학, 약학 등 부문에서 일부 인도 기업은 이미 ‘세계 베스트’의 반열에 올라있다. 중국은 반면 세계적 클래스의 기업이 거의 없다.
인도가 지닌 비장의 카드는 그러나 다른데 있다. 영어능력이다. 영어는 세계의 상공업을 지배한다. 다국적 기업의 공용어이고 정보화 시대 인터넷을 주름잡는 언어다. 이 영어능력에서 중국은 인도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수학에 강조를 둔 기초과학의 기반이 단단하다는 게 또 다른 비장의 카드다. 또 있다. ‘디아스포라 두뇌’의 활용이다. 실리콘 밸리 등지의 해외 이민자들을 적극 포용하는 정책이다.
갑자기 한국이 생각난다. 뭐라고 하더라. 양키와 함께 영어는 가고, 중국어는 오라고 한다던가. 또 뭐라고 하더라, 반기업 정서가 팽배해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간다고 하던가.
또 뭐가 있었는데. 그렇다. 병역법을 강화해 미 시민권자의 한국 취업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던가. 또 뭐가 있더라…. 인도 이야기가 먼 남의 나라 이야기에 그칠까.
옥 세 철<논설실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