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저녁 뉴스시간 한 사회학자가 나와서 사회보장의 적자는 대부분 70세 이상의 노인 등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그리고 의사들이 너무 쉽게 약을 처방한다고 비난했다. 그래서 마구잡이로 노인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서 대폭적인 예산삭감이 이루어졌다. 먼저 정부는 인공심장의 생산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노인들을 불사의 로봇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한계는 존중되어야 합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노년기와 극 노년기의 국민들은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함으로써 국가가 민심에 반하는 세금을 부과하게 하고 사회가 퇴보하는 듯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나이는 75세, 이런 대통령의 담화가 있은 뒤 70세 이상 노인들에 대한 약값과 치료비지급을 제한하는 조치가 내렸다. 80세부터는 치과치료에 대해, 85세부터는 위장치료에 대해, 90세부터는 진통제에 대해 환급을 받지 못하고 100세 이상의 노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무료의료혜택을 전혀 받을 수가 없게 되었다.
레스토랑 문에서 <70세 이상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보는 건 어렵지 않게 되었고 행여 반동분자로 몰릴까 이젠 아무도 노인을 옹호하려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CDPD라는 기구를 만들어 자식들이 동의한 70세 이상의 부모들은 체포해 간다. 호주나 중국 동남아 등지로 해외여행을 보내준다고 감언을 하면서. CDPD에 체포되어가던 일단의 노인들이 운전대를 탈취 도주한다. 산 속 동굴에 숨어 원시인들처럼 산다. 다람쥐를 잡아 나누어 먹으며 가져온 약들이 바닥이 나면서 절망에 빠진 그들은 모여서 수습책을 의논한다. 우리가 어쩌다 이리되었느냐는 한탄과 한숨소리, 그때 한 노인이 일어나 말한다. <추억을 되새기는 일은 그만 합시다. 한탄과 하소연도 부질없습니다. 이제 현실 속에서 살기로 합시다. 젊음을 숭배하는 세대조류에 우리 자식들이 세뇌되었습니다. 그들은 육체의 아름다움에 너무 집착합니다. 몸무게를 줄이고 주름살을 없애는 것이 신앙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몸만 가꾸다 그들은 바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젊음이 영원히 유지되리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참으로 큰 착각이죠.> 이들의 소식을 전해들은 노인들이 숨어서 잠입하면서 숫자가 늘어간다. 그들 가운데는 전직 의사, 학자, 과학자들도 있다. 인류발전에 들인 그들의 공로는 이제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은 결속해서 노인의 권리를 회복할 계획을 세운다. <우리를 배척하지 말고 존중해주시오. 우리도 일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일을 맡겨주시오. 잘할 수 있으니 어울려 삽시다. 노인배척법을 철폐합시다.> 그들의 구호는 아무효력이 없었다. 정부는 이들의 반란을 완전히 종결시킬 계획을 세운다. 싸우고 체포하고 할 필요조차 없다. 헬리콥터에서 이들의 머리 위로 독감바이러스를 살포한다. 모두 감염된다. 하나씩 둘씩 죽어간다. 그들이 백신을 구할 수 없도록 정부는 사전에 모든 백신을 폐기처분해 버렸다.
이는 불란서 작가 베르베르의 작품 <황혼의 반란>내용의 일부다. 나는 얼마 전 <슬픈 이빨>이라는 칼럼을 보였다. 그 글의 연장이라고 해도 좋겠다. 옛날, 그 옛날에도 기로풍속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고려장이 그렇고 남태평양의 생매장, 일본의 졸참나무 산 등, 우리는 한동안 식량의 증산과 문명의 발달로 이런 일을 잊고 있었다. 먼 옛날이야기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베르베르가 다시 이끌어내 보여주고 있는 이것은 바로 다름 아닌 우리들의 일이다. 반만년을 가난하게 살아왔던 우리들이 내 말과 글, 내 고향과 핏줄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왔던 이유들이 사실상 안개 속으로 스러지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의 역사상 가장 크고 부유한 바빌론인 이 미국 땅에도 오래 전부터 바닥이 보이기 시작하는 사회보장금이 어두운 그림자를 비추고 있다. 머잖아 인구는 매 40년마다 배가될 것이라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식량생산이 확대되므로 걱정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진실한 모습은 그런 낙관이 어렵다고 한다. 화학물질과 화학비료들이 땅을 죽여가고 있으므로 그것은 허황한 꿈이라는 것이다. 곳곳에 물이 마르고 사막으로 변해가고 있다. 인공심장이 나올 날도 멀지 않았다는데 그때쯤이면 베르베르의 이야기가 딱 들어맞을지 모른다. 머리 좋은 사람의 상상력이라고만 믿고 싶을 것이다.
나이 열 살 위면 존자라 하여 어버이로 대접하고, 송사가 생기면 마을 어른 앞에 고하고 두말없이 그의 결정을 따르고, 가장 좋은 수확물은 의례 어른께 먼저 드리던 우리들의 풍속, 그래서 나이 드는 걸 생명보험보다 더 든든하게 여기던 시절을 다시 펼쳐볼 수는 없을까? 정치인들의 관심 꼭 필요하다. 정치가는 정치를 한다. 과학자는 과학을 한다. 그들은 인류의 꿈을 실현하려 애쓴다. 그러나 작가들은 그들에게 꿈을 제시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모두 유기체가 될 때 참담한 역사의 반복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 위에 고려장의 역사가 돌아오는 걸 막을 수는 없을까? 정말 정치인들의 관심 필요하다.
(시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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