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목회학박사)
사람의 삶이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관계란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말한다. 일상사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일들은 사람과의 관계를 떠나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평소 관계가 좋으면 좋은 결과가 생기고 관계가 좋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장자>의 ‘산목(山木)’편에 보면 빈배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사람이 배로 강을 건널 때 저 만치서 빈배가 와서 사람이 탄 배에 와 부딪친다. 사람이 없는 빈배가 와 부딪쳤으니 배에 탄 사람은 아무리 성질이 급하다 해도 화를 내지는 않는다. 아니, 화를 낼 수가 없다.
사람이 없는데 어디에다 화를 내랴. 빈배에다 대고 화를 내봐야 자기 목만 아플 따름이다.그런데 그 배에 한 사람이라도 사람이 타고 있다면 이 쪽에서 그 배를 피하거나 물러가라고 할 것이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고 다시 소리쳐 듣지 못하면 세 번째 소리치게 되면 반드시 욕설이 따르게 마련이라 장자는 말한다. 빈배가 부딪쳤다면 화를 내지 않을 사람이 화
를 내는 것은, 사람이 타고 있기에 그렇다. 사람은 배를 보고 욕설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욕설을 내뱉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도 자신을 빈배처럼 비우고 산다면 그 누구도 자신을 해칠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게 장자의 말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사이는 사람이 탄 배와 빈배와의 부딪침 같은 것은 아니다. 사람이 탄 배와 또 다른 사람이 탄 배와의 부딪침 같은 것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다. 관계의 시작은 이렇듯 부딪치면서 시작된다. 부딪치지 않으면 관계는 결코 성립될 수 없다. 부딪침이란 곧 만남을 뜻한다. 만남은 관계를 지속시키는 관문이 된다. 그 관문은 지속적인 만남이냐 아
니냐에 따라 또 다른 관계를 유발시킨다.
사람의 삶 그 자체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로 본 신학자가 있다. 관계신학(關係神學)을 통해 조물주와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설명하며 조직신학화 한 실존주의 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1878-1965)다. 그는 조물주와의 관계 회복을 통한 인간구원론을 펼치며 사람의 삶 자체도 관계에서만 이루어짐을 설명했다.
부버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인격적인 관계로 유지될 때 정상적인 삶의 관계가 유지되며 그런 관계가 파괴될 때 문제는 발생한다고 보았다. 즉, 사람이 사람을 하나의 사물인 그것(It)으로 볼 때 인격적인 관계는 파괴된다.
이런 관계는 그의 책 <나와 너>에서 잘 설명돼 있다. 나는 너를, 너는 나로 서로 인정할 때 그 관계야말로 정상적인 관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너를, 너가 아닌 그것으로 바라보며 관계가 시작될 때 그 관계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사물과의 관계로 떨어지게 된다.
한편, 사람과 조물주와의 관계는 나와 영원한 너와의 관계로 설명되며 나와 영원한 너와의 관계회복을 통해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 구원은 철저히, 영원한 너를 나를 통해 받아들이는 자신에게 있음을 부버는 강조한다.
장자가 말한 사람이 탄 배와 빈배와의 만남과 부딪침도 관계적 상황이다.
그러나 그 관계는 사람과 사물과의 관계로 별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탄 배와 또 다른 사람이 탄 배와의 만남과 부딪침이 문제로 제기된다. 이런 예는 사람과 동물사이에서도 있을 수 있다. 사람이 개와 고양이를 사물로 볼 때, 사람과 개와 고양이 사이에는 지시와 복종과 따름만 존재할 뿐 갈등은 야기되지 않는다.
장자의 말처럼 사람 자신이 빈배처럼 마음을 모두 비울 때 누구에게도 해침을 당하지 않을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모두 비운 사람을 무능력한 사물로 착각해 볼 때 야기되는 관계없음의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장자가 말한 빈배와, 사람이 탄 배와의 부딪침과 만남 속에서 일어나는 관계와 부버가 말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람과 조물주와의 만남 속에서 일어나는 관계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차이의 생김은 모두 자신에게 달려 있을 것 같다. 자신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빈배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을 철저히 개나 고양이처럼 사물화(事物化) 시켰을 때 갈등은 있을 수 없기에 그렇다. 빈배든 고양이든 개든, 사람이든, 조물주든 모두가 만남을 통한 상황에 따라 관계는 달리 해석될 수 있다. 어찌 해석되든, 관계가 좋아야 결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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