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성에 대해 깊은 연구를 했던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결혼에 대해서도 이성적 접근을 했던 것 같다. 결혼은 왜 필요한가, 결혼의 본질은 무엇인가, 결혼이 더 나은가 독신이 더 나은가…철학자다운 심오한 사색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 틀림없다.
결과적으로 그는 결혼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구혼할 생각을 가졌던 적이 두 번 있었다고 한다. 그 중 한번의 구혼은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성이 먼저 칸트에게 청혼을 한 케이스였다. 결혼 제의를 받은 칸트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그날부터 결혼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다. 사랑, 결혼에 관한 저서들을 모두 찾아 읽고 장단점을 분석해 마침내 혼자 사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는 청혼을 받아들이기 위해, 혹은 정식으로 구혼을 하기 위해 그 여성을 찾아갔다. 그런데 여성은 집에 없고 그의 어머니가 칸트를 맞아 주었다. 칸트가 얼마나 오래 결혼에 관해 연구를 했는지, 기다리다 지친 여성은 이미 다른 남성과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버린 후였다.
이야기가 과장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칸트 같은 철학자에게는 있을 수도 있는 일로 들린다. 칸트가 결혼에 관해 내린 결론 중의 하나는 결혼을 하면 자유를 잃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자율적인 실천의지로 결혼을 택함으로써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를 그는 고심했음 직하다.
그런데 세상에는 기꺼이 자유를 잃어버리고 싶어도 그럴 자유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결혼에 관한 철학적 사색, 혹은 일상적 불평들이 부러운 호사로만 보이는 사람들 - 사회적, 윤리적 잣대에 어긋나는 사랑 때문에 결혼의 자유를 허용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제는 폐지되었지만 한국에서는 동성동본 혼인금지법으로 수많은 연인들, 사실혼의 부부들이 고통을 받았다. 동성동본이라는 이유로 양가 가족들로부터 받는 멸시는 참을 수 있다하더라도 법적 혼인신고가 안 돼 학령기의 자녀를 입학시킬 수가 없어 애를 태우는 일들이 사회의 이면에서 숱하게 일어났었다.
미국에서는 타인종간 결혼 금지법이 많은 연인들을 아프게 했다. 지금은 한인사회에서도 타인종·민족 결혼이 다반사이지만 30여년 전만 해도 다른 인종과의 결혼은 범죄행위에 해당되었다. 1922년 제정된 이종족간 혼인 금지법은 위법자를 1년-5년의 징역형으로 처벌했다.
미국 최초의 흑인 연방대법관으로 민권운동의 기수였던 더굿 마샬이 60년대 중반 존슨 행정부에서 법무차관으로 일할 때였다. 마샬은 워싱턴 D.C. 인근 버지니아 교외지역에서 마음에 꼭 드는 집을 하나 발견했다. 하지만 아무리 집이 좋아도 그는 거기서 살수가 없었다. 흑인인 마샬이 아시안인 부인과 한 지붕아래 살다가는 그대로 체포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버지니아는 당시까지 타인종간 결혼 금지법이 여전히 살아 있던 19개주 중의 하나였다. 다행히 1967년 1월 연방대법의 판결로 관련법이 폐지됨으로써 마샬 가족은 꿈에 그리던 집에서 살수가 있게 되었다.
지난 17일부터 매서추세츠에서 동성 커플들의 결혼이 시작되었다. 지난해 11월 주대법원이 만인이 평등한 법적 보호를 받을 권리를 근거로 동성간 결혼을 승인한 결과이다. 동성간 결혼은 주대법원의 판결로 일단락 지어질 문제는 아니다. 법적, 도덕적 근본을 뒤흔드는 사안이기 때문에 앞으로 상당기간의 소용돌이가 예상된다.
그런데 문제를 단순화시켜 각 개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결국 그것은 사랑하면서도 결혼할 자유가 없어 겪는 아픔으로 귀결된다. 이번에 결혼한 커플들이 “내 생애에 이런 기쁨이 있을 줄은 몰랐다”“이 여성과 결혼하려고 25년을 기다렸다”며 감격하는 모습들을 보며 우리는 반성할 것이 있다고 본다. 결혼생활에 대한 무 덤덤함이다.
결혼은 어떤 사람들에게수십년 목 타게 기다려서 얻는 자유, 아무리 애써도 얻지 못하는 권리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가정의 달에 우리 처음 결혼할 때의 열정을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잉태되었으되 태어나지 못하는 아이 같은, 이 세상의 모든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들에 위로를 보낸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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