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순 <화백문학미주회장, 미국노동성 선임경제학자>
요즈음 이라크 포로학대 사건으로 가장 직접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현 미국 국방장관인 도날드 럼스펠드일 것이다. 장관직 사임의 의견까지 나왔지만 “그는 휼륭한 일을 해내고 있다”라고 칭찬할 정도로 부시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그는 ‘신보수주의’(New Conservatism) 세력의 수장으로 9.11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강력하게 이끌어 나간 철권의 국방장관이다. 럼스펠드는 해군조정사, 국회의원, 대사, 백악관 비서실장, 제약회사 회장, 2번의 국방장관을 역임한 미국의 정치계, 경제계, 군사계에서 백전노장 같은 ‘성취한 인물’(Accomplished Man)이다.
철권의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시인(詩人)이라고 한다면 믿겨지지 아니할 것이고 그가 쓴 시가 어떠한 내용을 간직하고 있을까 궁금할 것이다. 그는 국방부에서 행하는 주기 브리핑에서, 미디아와의 대담에서, 하이쿠나 행시나 자유문구나 서정적인 음율 등을 삽입하여 시어(詩語)를 토해내고 있다.
국방부 웹사이트에 나오는 그의 시어들을 시라큐스 포스트-스탠다드의 유명한 기자인 하트 실리가 정리하여 <지성의 조각들: 도날드 럼스펠드의 실존적 시(詩)>라는 제목의 128쪽 시집을 2003년 6월에 출간하였고, 작곡가이며 피아노이스트인 브라이언 콩이 그의 시어들을 작곡하여 가수 엘렌도 월이 부른 CD음반이 지난달 3월에 시중에 나와 널리 불리고 있다.
첫째 그의 시 세계는 전쟁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정보에 대하여 동양적인 철인의 경지에까지 승화한 관점에서 세상사를 관조하는 것이다. 그의 유명한 시 ‘모르는 것’(The Unknown)이 이를 가장 잘 나타낸다.
우리가 알 듯이 /알려 진 아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알고 아는 것들이 있다 /우리가 또한 아는 것은 //알려 진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들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또한 알려지지 않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들이 /
이 시에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전쟁의 정보를 설명하면서 우리가 첨단의 정보통신기술의 세상을 살고 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지의 경지가 너무 많다는 것이 세상사라는 동양적 철인의 시어를 보여 준다.
둘째 그의 시 세계는 전쟁과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다.
일들은 반드시 연속되는 것은 아니지 /일들이 완벽하게 연속되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해서 //잠시 정지라고 특징지울 수는 없겠지 /사람들이 보는 어떤 일들이 있고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어떤 일들이 있다 /그리고 삶은 계속 가고 있다 / (‘상황’ The Situation에서)
너희는 많은 일들을 듣게 될 것이다 /일어나지 않는 일들을 날마다 듣고 있다 /... /내가 너희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나지는 아니했지만 /그 일이 일어 날 것이라는 것 /(‘일어나는 일’ Happenings에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인간의 생명과 시설이 파괴되고 하나의 정권이 무너져 가는 절박한 전쟁상황 가운데에서 인간의 삶이란 우리가 인식하든 아니하든 진행되어 가고 있고 보도되든지 아니 되든지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인생의 흐름을 간결한 단시(短詩)로 표현한다.
셋째 그의 시 세계는 자화상의 발견이다.
가끔 가다가 /나는 이곳에 서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해 본다 /”도대체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는 깜짝 놀랄 일이다 /(‘고백’ A Confession에서)
우리는 가끔 일상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을 떠나 되돌아 볼 때가 있다. 그리고는 스스로 놀라고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럼스펠드도 그렇게 놀라면서 자화상을 발견한 것이다. 전쟁을 직접 수행하고 있는 수장인 럼스펠드가 전쟁을 지휘하면서 시를 통하여 세상사의 무지, 인생의 흐름, 자화상 등을 발견하였다고 한다면, 진정코 인생은 어떠한 형태이든 시(詩)라고 정의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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