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일은 결코 없겠지. 그렇지만 아주 극단적인 상상을 해보자. 남한이, 다시 말해 대한민국이 북한에 흡수됐다. 이 경우 미국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난리일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이지 않을까. 한국은 미국의 중요 파트너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사활적인, 중차대한 이해가 걸린 나라는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타임 머신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자.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냉전시대다. 같은 상상을 해본다. 미국의 입장은….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한국 방위에 나섰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손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미국이 공산주의 체제 소련에 대한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애써 극단의 상상을 하는 건 다름이 아니다. 철수하는 미군. 주한미군은 한국에 있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새삼 스쳐서다.
한국의 안보에 가장 심각한 위협은 북한이다. 그 북한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한다. 미군의 한국 주둔, 한미동맹의 존재 이유다. 여기에는 적어도 한·미 양국 정부간에는 이견이 없었다.
북한은 그렇지만 미국 자체의 안보에는 직접적 위협은 되지 못했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은 단지 한반도에서만 대결해야 할 존재였다. 동맹국의 입장에서. 그런 북한에 대한 전략개념이 크게 달라졌다. 9.11 이후의 변화다.
앞으로의 전쟁은 테러리스트나 불량국가와의 전쟁밖에 없다. 때문에 승리나 평화는 이들의 공격을 미리 방지하는 것 일 수밖에 없다. 선제 공격론이다. 테러 전쟁에서 사후 격퇴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오히려 테러리스트 쪽의 승리다.
세계 유일의 수퍼 파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11테러의 최대 피해를 입은 미국이 내린 결론이다. 그 논리는 또 이렇게 이어진다.
테러리스트의 배후에는 지원세력이 있다. 사람, 돈, 무기를 대주는 불량국가들이다. 이들은 바로 미국의 적이다.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을 수출하는 북한은 특히 위험한 존재다. 비밀리에 테러리스트에게 핵을 공급할 경우 미국은 가공할 사태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제 남한만을 위협하는 세력이 아니라는 거다. 미국의 본토를 공격할 수도 있는, 말하자면 미국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달라진 북한 관이다. 전략도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종전의 미국의 북한 전략이 한국 방위에만 온통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9.11 이후는 테러전쟁이란 글로벌한 차원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북한 문제는 그 해법이 과거와는 전혀 다르게 전개될 수 있다. 단순한 남북 대결구도 측면으로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몫은 작아지고 미국의 몫이 훨씬 커진 것이다.
그 전략은 대략 3가지로 분류된다. 군사적 공격이 그 하나다. 외교노력이 또 다른 옵션이다. 다른 제 3의 방안은 북한에 대한 전면적 제재와 봉쇄다.
이쯤에서 주한미군의 존재에 눈을 돌려보자.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킬 필요는 그렇지 않아도 희석되어가고 있었다. 냉전도 끝났고,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판이니.
게다가 반미정서는 날로 확산된다. 한국에서 부디 몸조심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라. 서울의 미군방송이 미군 장병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나다니다 봉변 당하지 말라는 경고다.
북한은 동반자다. 결코 악이 아니다. 화해야말로 북의 안보 위협과 핵 위기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다. 북한의 재래식 군사위협은 날로 감소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위협. 별 게 아니다. 그리고 설마 동족을 향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인가. 386세대가 주도하는 한국정부의 북한 관이다.
북한을 보는 눈이 전혀 다르다. 급기야 한국 안보에 가장 위협적 존재는 북한이 아닌, 미국으로 인식되는 상황이다.
어떤 전략을 채택할 것인가. 시간은 촉박하다. 언제까지 한국 방위에만 주의를 기울 필요가 있나. 미군의 한국주둔은 유사시 오히려 부자유스러울 수 있다. 작전상 필요에 따라서는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 여러 채널을 통해 시그널을 계속 보낸다.
“북한에 대한 심리적 무장해제를 해버린 한국. 북한의 돈줄이 되고, 미국의 군사행동에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이 변하기 전에 한국이 먼저 변했다.” “한·미 관계가 터질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악화되고 있다.”
한·미 동맹관계에는 석양이 들고 있는가.
옥 세 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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