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희 미주본사 논설위원
우주인이 진공에서 우주 유영하는 모습을 보면 태아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 과거에는 유영시 탯줄 같은 케이블로 우주인과 우주선이 연결이 되어 있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케이블은 우주인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모선과의 통신 채널이 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생명선이다. 우주의 탯줄이다.
탯줄이 끊어지면 우주인은 존재의 근거를 잃고 우주의 미아로 떠돌게 될 텐데 지상에서의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가 않은 것 같다. 모선인 가족·가정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면 정신적 미아로 전락해 영혼이 처참하게 망가지는 경우를 본다. 최근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도 한 예가 될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의 군인들이 이라크인 수감자들을 짐승 다루듯 야만적이고 잔혹하게 고문하는 광기 어린 장면들을 사진으로 보면서 우리는 경악했다. 사진에 단골로 등장한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의 시골 처녀는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만인의 증오를 받았다. 보기에 지극히 정상인 사람들이 어떻게 이처럼 잔인해질 수 있는 걸까. 평소 평범한 아들, 딸, 혹은 남편·아내였던 사람들이 어떻게 전혀 딴 사람이 되어서 야수처럼 행동하는 걸까.
심리학자들이 유사 실험에서 내린 결론은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상황이 정상적인 사람들을 미치광이로 내몬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전쟁에서 ‘비정상적 상황’의 요인으로 우선 꼽히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완전한 단절감이다. 전쟁훈련은 부분적으로 적의 비인간화 훈련이다. 수감된 이라크인들이 나와 똑같이 고통과 기쁨을 느끼는 사람으로 보였다면 군인들이 그렇게까지 잔혹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울러 야수성을 부추기는 ‘비정상적 상황’은 가족·가정이라는 모선과의 탯줄이 절단된 상태이다. 가치관의 뿌리이자 정신적 안정의 근원인 가족으로부터 고립되면 사람들은 영혼이 메말라서 산불 타오르듯 쉽게 한 떼의 야수로 돌변할 수가 있다고 한다. 겁에 질린 수감자들에 대해 일말의 동정도 없는 냉혹함은 그래서 가능하다.
그리스 신화는 인류가 돌덩어리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처럼 그리스 신화에서도 인류는 한차례 물로 멸망을 당한다. 인간들의 타락에 분노한 제우스가 인간을 멸종시키기로 마음먹고 온 세상을 물로 휩쓸어 버렸다.
그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데우칼리온과 그의 아내 퓌라.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의롭고 믿음이 깊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제우스도 그들을 멸하지 않았다. 온 땅에 단 둘이 남은 이들 부부는 간절한 기도로 테미스 여신의 도움을 얻어 다시 인류의 맥을 이어가는 데 여신이 가르쳐준 사람 만드는 법이 특이했다. 옷으로 머리를 가리고 띠를 푼 후 돌을 주워 어깨너머로 던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돌이 말랑말랑 해지면서 커지더니 눅눅한 흙이 묻었던 부분은 살이 되고 딱딱한 부분은 뼈가 되며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차갑고 딱딱한 본성이 부모의 손을 거쳐 따뜻함을 얻었다고 해석하면 어떨까. 전장에서 벌어지는 냉혹함을 보면 인간의 근원이 차가운 돌이라는 신화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페스탈로치는 가정을 도덕의 학교라고 했다. 사랑과 협동, 봉사와 관용, 용서와 감사 …를 배우는 곳이 가정인데 그 가정이 흔들려서 생기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
수마트라 섬의 밀림지대에는 샤망이라는 영장류 원숭이가 산다. 일부일처제를 엄격히 지키며 가족을 이루고 사는 데 이들 샤망 부부가 매일 하는 일이 있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부부가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이중창의 연륜이 쌓일수록 교감의 깊이가 깊어지고 부부의 정이 돈독해진다. 그런데 똑같은 샤망이라도 동물원에서 억지로 짝을 짓게 하면 새끼는 낳지만 노래를 같이 부르지는 않는다고 한다. 부부간에 교감이 없는 것이다.
우리 가정 중에 노래 부르지 않는 부부·가족이 너무 많다. 한 지붕 아래 살지만 대화가 없다. 튼튼한 가정은 가슴을 여는 대화의 시간으로 만들어진다. 튼튼한 가정의 구성원들은 우주의 미아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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