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우리아이들…어떻게 기를까
논술과 Critical Thinking 26
(쓰기의 과정)
한번은 서울대 대학원 학생이 쓴 논문을 읽은 적이 있었다. 글도 잘 썼고 연구의 전개도 잘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잘된 것 같지만 어딘가 좀 못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리 읽어봐도 이 필자는 어디인지 감을 잘 잡을 수가 없었다.
읽고 또 읽으며 구체적인 ‘못마땅함’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우선 원인은 아주 잘 쓴 논문인데도 불구하고 한마디로 ‘아! 이 논문은 이것에 관한 연구구나!’라고 한번에 머리에 싹 들어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마침내 결론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다시 자세히 읽었다. 결론 자체에는 그리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 결론이 처음 시작한 서론과 맞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해 냈다.
흔히 결론을 짓는다는 것은 ‘본문을 다 쓴 후에 그 끝을 맺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계실 것이다. 서울대 학생도 그리 알고 있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반만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먼 여행이나 잘 모르는 길을 갈 때는 지도를 갖고 떠난다. 즉 목표가 있어 떠난다. 글 쓰기에서의 이 목표는 서론에 나온다. 결론이란 이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처음 시작한 서론(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다시 점검해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행에서 떠나가기 전의 목적지와 도착한 장소가 같아야 하는 것처럼 글 쓰기에선 서론과 결론이 같아야 한다.
보통 학생들은 서론은 아주 잘 시작한다. 그런데 본론이 길다 보면, 혹은 길지는 않아도 복잡하게 전개를 해야 하는 본문이면, 자기도 모르게 그 방향이 다른 데로 흐를 수도 있다. 서울대생의 논문이 바로 그런 케이스다. 이 논문은 우선 300 페이지가 넘는 양이었고 내용도 대단히 복잡했다. 이 복잡한 내용도 참 전개를 잘해 냈다. 또 결론도 본문에 맞게 잘 내렸다. 우리는 본문은 물론 그대로 살리고, 결론도 조금도 손을 안댄 채 서론을 결론에 맞게 다시 쓰도록 했다.
가끔 교사들은 제목을 정하고는 목차(outline)를 써 오라는 숙제를 내준다. 글을 많이 안 써본 사람은 마땅히 그것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또 이론적으로는 합당한 숙제이다.
그러나 지난번에 여러 번에 거쳐 말한 free writing을 많이 해 본 학생들은 free writing이나 본문을 쓰는 도중에 자기의 목표가 바뀔 수도 있고, 더 선명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대부분 대학원 논문을 쓰는 사람들이 사실은 본론을 먼저 써 놓고 서론을 제일 나중에 쓴다.
▲결론을 쓸 때 특별히 유의해야 할 점:
1. 글을 쓰다 보면 끝이 아주 효과적으로 잘 맺어질 때가 있다. 그때는 결론을 맺으려고 일부러 애를 안 써도 된다. 오히려 결론을 다시 맺으려 하다가 더 글을 망칠 수도 있다. 글 쓰기란 언어의 일부로서 우리의 감정과 직접적인 연결이 있다(싫은 사람과 말도 하기 싫어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도 계속 아주 잘 나갈 때가 있다. 이것을 flow라고 한다. 이 때는 서론, 본론, 결론을 가리지 말고 계속 써나가 주기를 바란다.
2. 결론을 맺기 전에 본론에 가서 혹시, 빠뜨린 것, 잊은 것, 더 추가해야 할 것, 또 가끔은 별로 쓸데없이 지저분하게 말을 많이 했나를 일일이 점검해야 한다. 이것을 영어에서는 ‘tie up the loose end’라고 한다.
3. 결론을 맺을 때 영어에서는 ‘In summary………’ 한국어인 경우는 ‘결론적으로………’ ‘결론을 맺으려 합니다’라고 쓴 후에 결론을 맺는 것도 효과적이다.
4. 위의 이런 결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결론을 맺는 것도 때에 따라서는 아주 효과적일 수가 있다. 글이란 수학이나 과학 방정식같이 어떤 규율에 꽉 짜여 있지가 않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쓰기에는 critical thinking이 주동이며 이 생각을 나타낼 수만 있으면 어떤 형태로써도 상관이 없다.
예:
Thou he died more than 15 years ago, he legend of Howard Hughes lives on. He represented the American Dream turned on itself, a victim of the multibillion-dollar empire that he almost single-handedly created. We will always be fascinated by celebrities, heroes, the wealthy, and the sick. Howard Hughes was all of these. And more.
이 글은 Howard Hughes의 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부, 명성, 자수성가, American dream의 상징 등과 함께 기이한 행적(여기에 쓰지는 않았지만 손톱이 발끝까지 오게 길렀다는 등)도 점잖은 표현이지만 그저 ‘the sick’으로 덧붙이며 아주 적절한 결론을 맺고 있다. 여기에서는 ‘In summary………’라고 쓰지 않은 것을 유의하기 바란다.
5. 보통 논술의 경우엔 언어(diction)가 아주 formal English라야 한다.
논술뿐만 아니라, academic papers(research papers, literary analyses, analytical essays, argumentative essays)도 여기에 속한다.
예:
Still, it is hard to pin down the exact reason that Simpsons fans love the show so much. I have over 7- of the more than 15 episodes on tape. Yet I cannot say exactly why I watch. I enjoy the social parody, the mocking of popular culture. But I also am attracted to the simpleness of the concept. I don’t have to worry about the show attempting to teach me deep moral lessons, or insulting my intellect. When I watch The Simpsons, I feel that I am being treated a thoughtful viewers. These reason keep me and the rest of America laughing. (Nathaniel Zylstra)
6. 논술의 경우에도 informal English를 쓸 수는 있으나 보통의 경우는 reminiscences, personal essays, commentaries, review에 많이 쓴다.
예: Ultimately, both Alan and Bigger fall to gain real control over the outside forces in their lives. Alan forfeits his interest in life, and Bigger forfeits life itself. They, like so many people, become victims of the world in which they live. (Janae Sebranek)
여기에서는 그 내용은 아주 진지한 것이지만 personal essays에 속한다. Alan이나 Bigger가 우리는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 글의 Tone이 우리와의 친근감을 주며 문장도 모두 짧다.
전정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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