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1.4 후퇴 때 나는 어떤 복잡한 연유로 한국군 방첩부대(CIC)의 한 분대에서 한 두어 날을 지낸 경험이 있다. 중공군과 괴뢰군이 계속 남하하고 있어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시절이다. 당시 만 열세 살이 채 못되었던 나 또래의 아이들 몇이 잡혀와서 CIC 대원들로부터 닥달질 당하던 광경이 생각난다. 괴뢰군들이 한국군 진세를 탐색하느라고 보냈던 척후별 역을 하던 아이들을 심문해서 적군의 상태를 발견해야하는 것이 일선에 위치한 CIC 분대의 역할이었으니까 어르고 달래는데 더해 문닫은 방에서 들려나오는 비명으로 보아 잔혹행위까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그 아이들이 키가 자그만 하면서 얼굴은 백짓장처럼 하얗고 테두리 없는 안경을 낀 대원을 따라 나갔는데 나중에 보니 아이들은 종적이 없었던 기억이다. 소위 즉결처분의 희생물로 사라진 게 아닌가 한다. 전쟁의 참혹성과 비극이다.
뉴욕의 트윈 타워즈와 워싱턴 근교의 펜타곤에 대한 공격, 그리고 미수에 그쳤지만 국회의사당 아니면 백악관이 표적이었던 네 번째 비행기를 생각하면 9.11은 사태가 아니라 미국으로 볼 때는 6.25에 필적하는 사변이다. 테러와의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또 이라크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전시 상황으로 보아 그 점이 분명하다.
알 카에다나 탈리반에 속한 사람들을 생포하여 쿠바의 관타나모 감옥에 집어넣으면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은 그들을 포로라 부리지 않고 적 전투병(enemy combatant)이라고 불렀다. 포로라 칭하면 포로에 대한 제네바 조약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을 심문하여 미국에 대한 다음 번 테러 대상이 어디인지를 발견하려는 노력에 제약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9.11 사변의 제4 비행기가 성공했더라면 535명 연방 의원들의 다수가 희생되었을 것을 감안하여 그와 같은 유사시 정부의 계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특별선거법까지를 의회에서 고려할 정도의 위기감을 생각하면 9.11은 전 후가 확연히 구별되는 분수형이다.
미 헌병들의 충격적인 고문 내지는 잔혹 행위를 보여주는 아부 그레이브 감옥에서의 행태에도 군사첩보기관들 아니면 포로심문을 하청 받은 민간업체 조사요원들의 역할이 큰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이 식은 죽 먹는 것처럼 쉽사리 종결될 것이라는 장미빛 평가가 터무니없는 오산이라는 것이 미군 차량들에 대한 공격으로 증명되기 시작한 작년 8월부터 이라크인 포로들이나 억류자들에 대한 심문이 더 중요시되었던 것은 당연하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라크 저항세력이 미군을 공격할 것인지를 알아내려는 과정에서 저항세력 용의자들, 특히 순순히 자백을 하지 않는 용의자들을 잔인하게 고문하여 정보를 캐려했을 것이다.
성기노출이 금기시 되는 회교권 남자들에게 있어서 미국 여군들 앞에서 발가벗기우는 학대를 받는다든지, 한 걸음 더 나가 여자들 속옷으로 얼굴을 가리우는 수모를 당하거나 집단 동성애 행위를 모방하도록 발가벗긴 포로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린다든지 하는 만행처럼 모욕적인 행위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기를 꺾어 순순히 취조에 응하게 하라는 군사첩보대원 등 상부의 지시가 있어 한 짓이었다는 것은 곧 군법회의에 회부될 미 여군병사가 TV와의 인터뷰에서 주장한 항변이었다. 이번 수요일 국회의원들만 본 그밖의 디지털카메라 사진과 비디오에 의하면 바로 그 여자와 자기 상관과의 성행위 장면까지 포함되어 있다니까 그와 같은 분위기에 가학음란증 등 변태성욕자들의 가증스러운 욕망이 가미되어 발생한 사건으로 보인다.
럼스펠드의 사직 내지 해고를 요구하는 소리가 드세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 와중에 알 카에다 방계조직에 속한 테러분자들이 니콜라스 버그란 미국 청년을 참수해서 죽인 끔찍한 비디오가 그들의 웹사이트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배포되는 사건이 있었다. 상하 양원의 보수계 의원들은 그 같은 야만적인 테러리스트들의 잔혹행위를 비난하면서 아부 그레이브 감옥에서의 미군 병사 일부의 잔혹행위가 일부 리버럴 미디어에 의해 너무 과장되었다고 불평을 한다.
그러나 미국이 법치주의 국가라는 것을 보여주고 알 카에다 등 테러리스트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럼스펠드는 사직을 해야 마땅할 것이다. 또 졸병 6, 7명만 군법회의에 회부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포로들을 말랑말랑하게(soften up) 준비시키도록 지시했다는 정보기관의 책임자들을 포함하여 그 같은 사태를 묵과한 모든 지휘관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전세계적으로 실추된 미국 명예와 신뢰도 회복에 일조가 될 것이다.
아부 그레이브 감옥에서의 미군 병사들의 만행을 보고 지옥과 같다는 표현을 한 의원도 있다. 테러리스트들은 물론 독재국가나 정권들과도 차별화되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가 적들을 ‘흉보면서 닮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제네바 조약 준수를 재확인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그래도 전쟁은 비극과 잔혹성의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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