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문학박사>
미군들이 이라크 포로들을 학대하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연일 전세계 언론에 포로학대문제가 대서특필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나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기자회견과 청문회 증언에서 포로에 대한 학대는 소수의 일탈한 군인들에 의해 행해진 것이며, 그것은 비미국적인(un-American) 것이라고 한 것과 달리, 포로에 대한 가혹행위는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의도적으로 이루어 졌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애초에 이라크전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도 발견되지 않았고 자유민주주의의 전파라는 미국적 가치도 그 동안 전개되어 온 이라크 상황을 보면 허울뿐이라는 의혹이 고조되고 있던 차에 이번 포로학대 사건은 과연 이라크 전쟁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그 정당성을 다시 한번 되묻게 한다.
냉전 체제가 종식된 뒤 세계의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그 동안 힘의 논리를 바탕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오만한 외교정책을 펴왔다. 그러한 힘의 논리는 9.11 사태 이후 더욱 강화되어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을 밀어 부쳤다. 전쟁에 대한 명분과 정당성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이 고조되어도 미정부는 ‘악의 세력과의 전쟁’, ‘테러와의 전쟁’임을 내세워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를 위한 ‘숭고한 전쟁’이라며 전쟁의 정당성을 강변해 왔다. 미국은 전쟁을 통하여 상대국가의 군인들은 물론 수 천명의 애꿎은 민간인들을 살상하고도 변변한 사과도 않다가, 미군들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혔다가 귀환할 때에는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기에 급급했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도 여기에 동조하여 전쟁의 정당성을 미국민들에게 세뇌해왔다.
부시 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말대로 포로 학대행위가 ‘비미국적’이라면, 그러면 무엇이 ‘미국적인’것인가? 힘의 논리로 전쟁을 일으키고, 수 천명의 민간인들을 폭격하고, 포로를 다루는 제네바 협정을 제대로 교육시키지도 않은 미군병사들을 교도관으로 보내고, 미군들의 이라크 포로 학대사건이 폭로되자 그건 소수에 의한 ‘비미국적’ 행위라고 변명하며, 그것은 장관을 해임할 정도의 사안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 그런 것이 ‘미국적인’ 것인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무모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전쟁 상대국가에 엄청난 재앙을 일으킬 뿐 아니라 재앙의 여파가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와 궁극적으로는 자국의 이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꼭 상대 국가에서 행하는 반격이 아니더라도 전쟁의 여파는 인간관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파멸로 이끈다. 전쟁은 넓게는 국민들에게 상대국에 대한 근거 없는 적개심을 부추겨 다른 나라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하고, 좁게는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평생 극복하지 못할 심신의 상처와 후유증을 남긴다.
『논어(論語)』「자로(子路)」편에서 공자(孔子)는, 선인이 칠 년간 백성을 가르쳐야 또한 전쟁에 나서게 할 수 있다(善人敎民七年 亦可以卽戎矣). 가르치지 않은 백성으로써 전쟁을 치르는 것은 백성들을 버리는 것이다(以不敎民戰 是謂棄之)라고 했다.
이라크의 한 교도소에서 포로들에게 학대를 가하는 사진의 주인공인 린디 일글랜드 이병같은 사람들도 가해자가 아니라 전쟁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엄청난 상처와 후유증 속에서 살아야 할 피해자들일 뿐이다. 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도 않고, 별로 정당성도 없는 전쟁에 내몬 것이 누구인가? 고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도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하고 학비 마련을 위해 군 입대를 한 그에게 포로대우 규정을 제대로 교육시키지도 않고, 정당하게 포로를 다루게 명령하고 지휘하지도 않고, 결국은 악녀로 만들어 평생을 후회하며 살지도 모르게 인생을 망치게 한 게 누구인가? 소수의 일탈행위를 저지른 비미국적인 행위를 한 것은 린디 이병 같은 사람들이 아니다. 참으로 미국적인 것이 위정자들의 말대로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는 것이라면, 소수의 일탈행위를 저지른 비미국적인 행위자들은 바로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국가의 이익으로 위장하여 정권을 연장하고자 하는 소수 정치인들과 그들의 후원자인 군수산업자들이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문제도 눈앞의 이익보다도 그 정당성과 어떤 것이 궁극적인 국가의 이익이 될지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재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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