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스트릿 저널은 해마다 연초가 되면 미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올 미국 경기를 진단하는 여론 조사를 한다. 올 초 실시된 조사에서 올해 미국 경기가 나빠질 것이며 주가가 폭락할 것으로 내다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경제에 문외한인 일반 독자들이 볼 때 미국을 대표하는 경제 전문지가 권위 있는 경제 전문가들을 동원해 한 조사니까 믿을 만 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신문에 난 기사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 대기업을 움직이는 인사이더들이다. 이들은 자기 회사가 현재 어느 정도 실적을 올리고 있고 앞으로 전망이 어느 정도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일반인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이를 이용해 축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은 ‘내부자 거래 금지법’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이들은 자기가 종사하고 있는 회사 주식을 거래할 때는 반드시 당국에 신고를 해야 한다. 한창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마사 스튜어트가 유죄 평결을 받은 것도 자신이 투자했던 제약 회사가 만든 제품이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지 못할 것을 미리 알고 주식을 처분한 후 거짓말을 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들 인사이더들의 동향을 주시하면 미국 경제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조금이나마 감 잡을 수 있다. 미국 경제가 좋아진다는 장밋빛 기사가 온 신문을 장식했던 올 2월 달 이들의 주식 매도 총액은 51억 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이들이 이처럼 열심히 판 주식을 산 사람들은 소위 ‘개미 군단’으로 불리는 중소 투자가들이다.
이들은 미 증시가 바닥을 친 2003년 3월 이후 지금까지 맹렬하게 자사 주식을 팔고 있다. 이들의 최근 주식 매도 대 매입 비율은 25대 1로 이는 지난 2월 미 주가가 피크를 기록했을 때의 55대 1보다는 낮지만 적색 경보 위험선인 20대 1을 훨씬 넘는 것이다.
지난 수개월 동안 하락세를 걷던 다우 존스 산업지수가 10일 마침내 1만선 이하로 추락했다. 나스닥은 연초 최고치에서 10% 이상 하락한 상태며 거의 모든 지수가 나날이 연중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다. 미 기업들의 수익이 호전되고 실업률이 낮아지며 일자리로 늘어난다는 뉴스가 연일 터지는데도 백약이 무효다.
폭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미국 증시만은 아니다. 일본 니케이 지수도 10일 올 들어 최대 폭인 500포인트 이상 빠졌으며 한국도 48 포인트 폭락하며 800선이 깨졌다. 이렇게 전 세계 증시가 동반하락하고 있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미 금리 인상과 중국 경제 성장의 둔화가 꼽히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2000년 3월 터진 하이텍 버블의 거품이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거의 순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하이텍 기업들은 고속 항진을 최근까지 해왔다. 인터넷 서치 엔진인 구글(google)의 상장을 둘러싼 투자열기는 4년 전 봄을 연상시키는데 부족함이 없다.
미국을 대표하는 투자의 귀재 존 템플턴은 증시가 한창 달아오르던 작년 “미국 주식시장은 망가졌으며 이를 고치는데는 수년이 걸릴 것이다. 기억력이 짧은 대중 매체들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증시 추락의 여파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독자들에게 알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공적인 투자가의 대명사인 워런 버핏 또한 “적당한 투자처가 없다”는 이유로 수백 억 달러의 현찰을 은행에 쌓아두고 있다.
신문에 나는 기사는 대부분 인사이더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관점에서 유리한 시기에 유리하게 발표한 정보를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정말 주식과 경제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여기 좌우되지 않는다.
“경험이 없으나 돈이 있는 사람이 돈은 없으나 경험이 있는 사람이 동업을 하면 경험은 얻지만 돈을 잃는다”는 속담이 있다. 미 증시는 경험과 지식이 없는 사람이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막연히 신문만 보고 뛰어들어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공부하지 않은 투자가는 증시 근처에서 서성거려서는 안 된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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