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한국을 모르겠어. 이제는. 갑자기 걸려온 전화다. 몇 년 만인가. 가끔가다 바람 같이 나타나는 선배다.
서울을 다녀왔다고 했다. 신변 이야기가 어느덧 한국 정치로 이어졌다. 북한 이야기도, 한국 언론 이야기도 나왔다. 신문쟁이들의 버릇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전직이든, 현직이든.
특파원이란 친구들이 그렇게 엉터리 보도를 해서 되겠어. 이건 단순 오보가 아냐. 편파적인 왜곡 보도 같아. 그리다가 불쑥 내뱉는다. 한국을 모르겠다는 거다. 뭘 모른다는 걸까.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난 NBC 앵커맨 톰 브로커가 책을 한 권 냈다. 6년 전의 일로, ‘가장 위대한 세대’(The Greatest Generation)가 그 책이다. 바로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올랐다. 톰 브로커가 썼다는 유명세가 한몫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감동으로 전해져서다.
대공황에서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혹독한 시련의 시대를 살아간 세대 이야기다. 브로커는 현장을 일일이 답사했다. 사람들을 직접 만났다. 결코 관념의 유희가 아니다.
그리고는 결론을 내렸다. 경제, 정치, 문화적으로 세계 최강의 나라, 오늘의 미국이 있게 한 사람들은 바로 그들로, 그 세대야말로 ‘가장 위대한 세대’라는 거였다.
‘가장 위대한 세대’는 전 세대가 보여준 불굴의 용기, 건강한 가치관, 희생에 대한 찬사로, 이제는 베스트 셀러를 넘어 스테디 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당신들의 피와 땀, 봉사와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이렇게 자유롭고 번영된 사회에서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모 세대에게, 조부모의 세대에게 브로커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를 드린 것이다. 어찌 보면 이는 전후 세대가 전 세대에게 바친 감사의 헌사일 수 있다.
월남전 세대, 지독한 ‘에고’에 사로 잡혀 ‘미-제너레이션’(me-generation)으로 불린 세대다. 베이비붐 세대 말이다.
풍요 속에서 반항의 세월을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기성 세대가 됐다. 모든 것, 다시 말해 이 사회에, 또 다음 세대에, 그리고 국제사회에도 책임을 지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어른이 된 베이비 붐 세대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부모 세대가 지닌 위대성이다. 그리고는 그런 부모를 둔 행운에, 또 그들의 희생과 헌신에 진정 어린 감사의 표시를 하게 된 것이다.
일단의 유대계 자유 진보 그룹이 그 시작이었다. 격동의 60년대와 70년대. 월남전 여파로 좌경의 아이디어가 미국의 지성계를 풍미하던 시절. 이들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사회적 아젠다에 있어서는 여전히 진보적이었다. 안보문제에 있어서는 생각이 달랐다. 진보파들은 그래서 본래는 한 동아리였던 그들을 신보수파라고 불렀다. 네오콘의 탄생이다.
사상에 있어 본-어게인을 경험한 그들이다. 이런 그들은 가치 중심적이다. 보수신앙의 기독교 가치관과 일맥 상통한다고 할까.
신 윌슨주의자로도 불린다. ‘미국의 가치’를 굳건히 믿고 있고 그 가치를 전파해야 한다는 신념에 사로 잡혀 있으니까. 말하자면 미국 중심의 ‘민주화에 의한 세계평화’ 신봉자들이다.
이들은 이제 해외정책 결정과정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민주당 행정부가 들어서도 마찬가지란 전망이다. 오늘날의 미국은 1946년, 1947년 무렵, 그러니까 냉전이라는 기나긴 투쟁의 시작을 앞둔 그 당시와 흡사하다는 이유에서다.
성장주의에 대한 거역(Revolt)과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Resistance), 국가주의에 대한 거부(Rejection)가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가는 386세대의 특성이다. 이 같은 ‘3R’은 앞으로 10년은 계속될 것이다. 4.15 총선 직후 나온 분석이다.
한국 정치의 구조적 변화의 핵심에 세대가 있다는 설명이다. 분석은 계속 이어진다. 이들은 구질서의 해체를 원한다는 것이다. 엘리트를 배격하고 고령자를 기피한다는 것이다. 세대의 승계가 아니라 세대의 교체를 원한다는 것이다.
국제관계에서는 가치보다는 민족적 동질성이 강조되고 중국 쪽으로 기울면서 친북과 반미 노선은 더욱 심화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대간의 안보의식은 날로 양극화 돼 앞으로 큰 딜레마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미국과 한국의 차이점? 글세. 한국은 뭔가 뒷걸음치고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면 망발일까. 이념과잉에 사로잡혀 대립의 각만 곧추 세우고 있는 모습에서 그런 게 보여서다.
당분간 한국에 갈 일은 없을 것 같아. 그들의 선택이니 어떻게 하겠나…. 또 보아야지.
긴 이야기 끝에 헤어졌다. 선배의 뒷모습에는 실망감이, 분노가, 아니 뭔가 배신감마저 절어 있는 것 같았다. 한국을 모르겠다. 무슨 소리인가.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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