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병렬(교육가)
가끔 놀랄만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 중에는 피할 수 있던 일, 막을 수 있던 일들이 있고, 어떤 일들은 실수나 부주의로 일어나고, 때로는 불가항력적으로 맞을 수 밖에 없던 일들도 섞이게 된다. 우리들의 삶이란 좋은 일만 계속되는 것이 아닌 듯 하다. 이번의 북한 용천역 열차 폭발 사고는 없었으면 좋았을 일이다. 자연 재난이 아닌 인재였기 때문이다.
이 엄청난 사고를 뉴스로 접한 사람들이 아픔을 자아내는 까닭은 희생자의 많은 수가 어린이들인 까닭이다. 폭발 지점 가까이에 ‘룡천 소학교’가 있었고, 마침 그 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에서 귀국하는 날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중에는 ‘그 기차가 이미 지나간 것을 모르고...’라는 구절이 있던 것을 기억한다. 왜 이렇게 정보 전달이 늦었
을까. 하여튼 처음에 발표된 사망자 수 161명 가운데 어린이는 76명을 차지하고 있었다.
현장에 남겨진 주인 잃은 가방과 신들을 보면서 착잡한 느낌을 가누기 힘들었다. 나라의 국경을 높이 쌓아 자유의 파장이 넘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었지만, 학생들의 소지품 디자인에는 텔레비전의 주인공이 섞여 있었다. 자유는 공기로 전파되는 모양이나, 그들은 자유를 모르고 멀리 떠났다.
병상에 누워있는 어린이들. 그들은 하나같이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다쳤기 때문이다.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는 어디에 있는가. 그 중에는 허술한 안대를 하고 있는 어린이도 있었다. 모두 화상을 입어 얼룩진 얼굴로 눈을 감고 있어서 표정이 없다. 입을 다물고 있다.
사진을 찍는다니까 긴장하고 있었을 것인가. 그들은 눈과 말을 잃은 숨쉬는 인형이었다.그래서 문제이다. 그 화상을 신속히 적절히 치료할 의료진과 의약품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다투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북쪽에서는 의료품만을, 그것도 배로 보내달라고 하니 그대로 할 수 밖에 없겠다.
뉴스 보도 중에서 북쪽답다고 느낀 것은 어느 여교사가 김일성 부자의 사진을 가슴에 안고 숨졌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폭발 사고를 당하면서 ‘미국 핵폭탄이 떨어진 것인 줄 알았다’는 대목이다. 북쪽 체제 안에서 학습한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핵폭탄이 다른 나라들에게 공포심을 주고 있음을 알고 있을까.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따로 있다. 우리의 동족이기 때문에 어려울 때 힘이 되어야 한다. 특히 어린이들이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어린이들이 다시 뛰어놀 수 있도록 무엇이든 보태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넓고 푸른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게 해야 한다.
또한 북쪽 어린이들에게 남한 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있는 한민족들이 그들을 사랑하고 있으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음을 알려야 하겠다. 그들 자신의 성장이 통일 한국의 미래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무표정한 얼굴들이 활짝 웃는 날, 우리의 미래는 힘을 얻게 된다.
그래서 이번 성금 모임에 어린이들의 활발한 참가를 바라게 된다. 어린이들이 어디에서 성장하고 있든지 서로의 마음을 이어나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편지를 쓸 수도 있고, 선물을 보낼 수도 있다. 나흘만에 흙더미 속에서 용케 살아남은 어린이의 첫 마디는 ‘배 고파요’였다.
전에도 배가 고팠겠지만 굶고 견뎌야 하는 긴 시간 얼마나 허기졌을까. 이게 바로 이곳 어린이들의 친구 이야기인 것이다. 좀 더 그들 가까이로 가자. 어린이들의 우정이 하루 아침에 쌓이지 않는 점을 알고 있는 어른들의 할 일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요즈음 ‘전화위복’이란 말을 생각하면서 위안을 느낀다. 이번 기회에 북쪽은 개방의 문고리를 열게 되기 바란다. 여러 나라의 도움을 얻어 용천을 새롭게 건설하면서 국제적인 협력의 고마움을 느끼게 되면 좋겠다. 나라 안팎의 문제를 자주적으로 행사하거나 처리하는 권리는 귀중하지만, 세계인과 더불어 살기에는 어떤 한계가 있음을 직시하는 지혜를 가지게
된다면 그들을 위해 다행한 일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은 말하고 있다. 풍파를 겪은 뒤에 일이 더 든든해 진다고. 우리에게 놀라움을 준 이번 일을 계기로 북녘이 점차 밝아오고, 남북 어린이들 사이에 우정이 싹 튼다면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 준다. 북한 어린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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