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령의 퓨전수필 (시인/화가)
이(齒)가 오복 중에 하나라는 말은 어려서부터 들어 알고 있다. 왜 이가 욕심 많은 인간이 바라는 여러 가지 복 중에서 다섯째로 꼽히는지 실감할 때가 오고 있나보다. 요즈음 이가 가끔 시리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지만 몸의 어느 부분을 의식한다는 것은 아프다는 신호라고. 눈(眼)이 있는지 이(齒)가 있는지 의식 없이 쓰고 살다 이상이 오기 시작하면 “아, 내 눈”, “아, 내 이” 하게 되는 게 고마움을 곧잘 잊고 사는 인간들이 매양 하는 소리라는 것이다. 나는 병원 가는 데는 무척 게으른 사람이다. 나처럼 병원을 외면하고 사는 사람이 요즘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모르는 게 약” “믿는 건 하나님”이라고 궁한 변명을 일삼는 내게 친구는 이런 말을 해준다.
“자, 여기 새 차가 있다. 너는 어느 날 차가 갑자기 길 한 복판에서 설 때까지 그냥 타고 다닐 거냐? 아니면 손 봐 가면서 그런 사고 안 내고 오래오래 탈거냐?” 이 말은 내 변명을 일격에 부수고도 남는 말이었다. 친구의 진심어린 충고를 더 이상 못 들은 척 할 수도 없어 용기를 내어 병원에 다니다보니 기왕이면 치과 안과에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이가 아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병원바람이 분김에 치과예약을 해두었다. 그런데 가슴이 싸아 하게 아파온다. 되살아나는 감동 때문이다. <나라야마 부시고(楢山節考)> ‘후카사와 시치로’가 쓴 소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소설이 1956년 일본의 유수한 미디어인 중앙공론(中央公論)신인상에 당선되었을 때 일본문단에서는 깜짝 놀랐다. “우리는 이런 소설이 나타나길 50년이나 기다려왔다”라는 찬사를 보내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산과 산이 연이어 있어 사방 어딜 보나 첩첩 산인 일본의 신주(信州), 20여 가구가 사는 촌락에 ‘오린’은 나이가 예순 아홉으로 남편을 잃고 홀아비 된 아들과 손자 넷을 거두며 산다. 그녀는 자기가 졸참나무 산(楢山)에 가기 전 홀아비 아들 짝을 구해주어야 한다는 걱정을 안고 있다. 그녀는 아무도 없을 때면 부싯돌을 들어 입을 벌리고 아래위 앞니를 딱딱 쪼아댄다. 단단한 생 이빨을 두들겨서 망가뜨리려 하는 것이다. 쿵쿵 울려 머리가 아파도 참는다. 언젠가 이빨이 빠지리라는 기대를 하면서. 겨우 일년에 한 번 명절에만 쌀밥을 먹을 수 있고 이날 하는 강강수월래도 밥주걱을 들고 할만큼 식량이 부족한 이 마을에서 그 나이에 이가 튼튼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산너머 마을에서 아들 동갑 짜리 과부가 며느리로 들어오던 날 기뻐서 웃다가 덜 빠진 이가 부끄러워 손으로 가리며 고개 숙이는 시어머니 오린. 그래도 며느리에게 편한 마음으로 밥 많이 먹으라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주면서 “미리 알았으면 데리러 갈 걸” “그럼 좋았지요, 내가 어머니를 업고 올 텐데” “나도 새해 정월이면 곧장 산으로 갈 거다” “어머니 천천히 가세요” “아니다. 빨리 갈수록 하눌님께 칭찬 듣는다” 착한 며느리를 얻은 게 기쁜 오린은 힘과 용기를 내어 눈을 질끈 감고 돌절구모서리에다 이를 맞부딪친다. 입이 통째로 떨어져나가는 듯 아프다. 입안 가득히 이가 굴러다니고 입에서 계속 피가 흘러 냇물에 얼굴을 묻고 이를 헹구며 비로소 준비가 다 되어간다며 기뻐한다. 해가 바뀌어 정월이 되자 막걸리를 만들어 동네사람들에게 나누고 가족들의 아침식사 준비까지 마친 오린은 어두운 밤 아들의 지게에 올라앉는다.
나이 칠십이 되면 올라가야 하는 졸참나무 산. 산을 몇 개 넘고, 일곱 번 굽이도는 7곡에서부터도 25리, 험한 산길, 아들의 발에 걸리는 해골, 팔, 다리, 아직 살이 붙어있고 바위에 기댄 시체에 깃을 치고 사는 까마귀들. 졸참나무 산에서는 말을 하지 않도록 되어있다. 드디어 지게에서 내린 어머니 오린은 말없이 아들의 두 손을 잡고 이제까지 올라온 길을 향해 아들의 몸을 돌려세우고 밀어준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내려가던 아들이 바위 뒤에 숨어서 마을사람들의 훈계를 어기고 “어머니 눈이 와요. 어머니가 바라시던 대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려가라 손짓하던 어머니.
한낱 옛이야기로 넘길 수만은 없는 작품이다. 모두 한 번씩 읽었으면 좋겠다. 식량이 절대 부족하던 때 인류는 그렇게 맥을 이어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풍요의 시대에도 고려장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는 소식 고국에서 가끔 들려온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미국에도 고려장은 있다. 양로원에 버린 부모, 자식들은 외면하고 치다꺼리를 목사님들이 도맡는 것, 신종 고려장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닥터 한은 내게 말했다. 자식들을 위해 먹을 것을 줄이려 생 이빨을 빼고 웃으며 산으로 가던 옛 고려장에는 그래도 부모와 자식, 손자들 사이에 비장한 사랑이 있었다. 그렇구나. 결국 사라져 가는 건, 그래서 아쉬운 건 사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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