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다던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108배, 3보1배, 휠체어, 큰절, 단식, 삭발, 그리고 사죄의 눈물·통회의 눈물 등 눈물 바다 … 감성 자극용 ‘소도구’가 유난히 많이 등장했던 선거였다.
이번 선거는 굳이 분류를 하자면 드라마 중에서도 눈물샘을 집중 공격하는 멜로 드라마였다. 패거리 정치에 분노하고 구태에 식상해 싸늘하게 식어버린 유권자들의 관심을 단시간에 끌어내자면 ‘눈물’만한 도구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정책이나 이념적 소신이 있다면 울기 민망한 울음들을 불사하며 각 당 대표들, 후보들은 기회 있는 대로 눈물을 보였다. 논리는 뒤로 미루고 일단 눈물로 호소해 지지 바람을 일으키고, 그래서 등돌린 민심을 달래보자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그 결과 어떤 눈물은 성공했고, 어떤 눈물은 피나는 고행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후보들이 보통 때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을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큰절도 마다 않는 것은 얻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마음, 표심을 잡으려는 심산이다.
정치인들만이 아니다. 사회적 동물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행위는 대부분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로 귀결된다. 연인이나 부부, 가족, 친구 등 개인적 관계는 모두 마음의 관계들이고 공적인 대인 관계에서도 마음을 얻으면 매사가 순조롭다. 전자는 사랑, 후자는 호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친지 중 얼마 전부터 주문 판매업을 시작한 분이 있다. 그분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말이나 행동을 조심하게 됩니다. 누가 내 고객이 될지 모르니 행동을 함부로 할 수가 없어요. 겸손해지고 남들에게 신뢰감을 주도록 애를 쓰지요. 이 일이 내면의 성숙에도 도움이 됩니다”
선거는 후보가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만큼 ‘호감’이 특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 호감의 기본적 근거는 우선 비슷한 정치적 성향. 하지만 전혀 비 이성적인 요소들이 작용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영향을 받는 ‘호감의 법칙’이다.
자동차 광고에 섹시한 여자 모델이 등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동차 성능과 여자모델은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멋진 모델이 나오는 광고를 자꾸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동차도 그렇게 멋지게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치인들이 연예인들을 지지부대로 동원하는 것도 같은 이유. 평소 좋아하던 배우나 탤런트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면 그 후보도 괜히 멋있어 보이는 심리이다.
이번 한국 선거에서는 민주노동당이 특히 연예인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 그 영향이 얼마나 작용했을까. 민노당은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또 익숙한 것에 호감을 느낀다. 오하이오에서 부동층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 결과를 보면 기표소에 들어갈 때까지도 지지 후보를 못 정한 유권자들은 대개 이름이 가장 눈에 익은 후보를 선택한다. 실제로 주정부 고위직에 도전한 한 후보는 자신의 지명도가 너무 낮자 이름을 ‘브라운’으로 바꿔 승리한 일화가 있다.
영남지역을 휩쓸며 한나라당을 위기에서 구출한 ‘박근혜 바람’은 ‘박정희 후광’, 지역주의와 아울러 육영수 여사를 연상시키는 익숙한 모습이 한몫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요인은 공동체 의식.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이 적용되는 상황에서는 ‘우리 편’에 대한 호감이 증폭된다. 선거전 막판 ‘대통령 탄핵 세력의 부활’을 경고하는 열린 우리당의 호소는 평소 지지층의 ‘애정’을 투표라는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선거일 오후, 갑자기 휴대폰 사용과 문자 메시지가 폭주하고 그 시간대에 20대, 30대의 투표율이 급증한 것은 의미있는 현상이다.
이제 선거가 끝나고 한국에 새로운 정치 기후가 형성되었다. 정치인의 존재의 근거는 국민들의 마음이다. 궁극적으로 마음은 마음으로서만 얻을 수 있다. 선거운동 기간의 ‘쇼’는 다시 등장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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