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원서를 쓰면서 부산했던 시간이 지나고 다급하게 추천서가 필요하다며 어렵사리 부탁하는 학생들을 보며 조심스런 생각을 했던 지난 몇달 동안의 긴 시간도 지나고 이제 모두 원하든 원치 않든 합격 통지서를 받아들었다.
공부를 잘했든 못했든 열심히 했든 그렇지 못했든 그런 결정이 학생들의 심적 부담을 덜었는지 학생들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고 다만 어떤 학교를 가야할 지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학교의 인지도는 빠질 수 없는 학교 선택 시 유념 사항인지 학교의 겉모습엔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학생들은 그들의 장래를 많이 고민하며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정작 자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들이 인생을 즐기며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고작 부모님이 자녀가 학교 선택 시 해줄 수 있는 말이란 “그래도 UC가 낫지 않아? 누가 그러는데 그 분야는 거기가 최고라 하더라”는 식의 조언 외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마지막 결정은 본인이 해야 하는데 이왕이면 인지도도 있어야 하고 학생이 하고자 하는 분야와 맞아떨어지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부모님도 학생 자신도 학교 자체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
명문 대학의 입학 정책은 에세이를 잘 써야 한다든지, 봉사활동을 한 분야에서 깊이 있게 해야 한다든지 아님 재정보조를 신청하면 떨어질 확률이 많다든지 하는 식의 막연한 추측 외에는 수박 겉 핥기 식의 정보만 있을 뿐이다. 학교 교수진이라든가 연구 실적 혹은 학위 프로그램 등 정작 결정적인 요소에는 근접하지 못한 채 무난한 학교에 들어가서 무리 없이 졸업하기 때문에 졸업 후의 방향이 그리 밝지 못하다. 많은 우수한 한인 학생들이 좋은 학교는 들어갔지만 정작 들어가서는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그저 학점 유지 잘해서 겨우 졸업이나 하자는 생각이 다수라 대학마저도 고등학교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졸업생들이 가끔 들러서 인사라도 하고 가는 아이들은 나에게라도 자신의 불안감을 토로하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할 뿐이다. 부모가 그런 어려움을 얼마만큼 함께 하는지 아니면 부모가 자녀의 문제에 전혀 도움이 안되기에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것인지 대학을 가서도 그들의 불안감은 고등학교나 별 반 다를 게 없다.
다수의 부모님들은 일단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기까지는 열심이지만 정작 대학에 들어가면 더 이상 상관치 않거나 상관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사실 기숙사에 가있기라도 하거나 타주에 있다면 자녀가 어떤 과목을 듣고 있으며 어떤 생활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방학이 되어 집에 와도 부모와의 상봉은커녕 친구들 만나서 지나간 회포를 풀기에 바쁘지 서로 마주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부모들의 불만이다. 그저 한국 음식 많이 해주고 필요한 것 사서 넣어주는 것 외엔 별 다른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부모들의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마지막 순간에 사립대학을 외면하는 이유는 물론 감당할 수 없는 학비의 문제도 있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또한 교수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만큼 문화적으로 개방된 환경에서 자라지 않은 이유도 있고 SAT 점수나 성적 외엔 다른 학생들과 내세워 견줄 만한 것들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명문대를 들어간 학생은 많이 있지만 들어가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소식이 감감할 뿐이다. 열성적인 부모 밑에서 과잉 보호받으며 자란 온실 속의 우리 자녀들이 거칠고 자유분방한 문화와 스스로 키워낸 내성이 강한 독립적인 사고 방식의 타인종들과 어울려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끝까지 관심을 가져주자. 고등학교 졸업이 마지막이 아니라 지금부터 자녀의 인생에 깊이 관여하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좀더 가까이 다가가자. 우리의 일상적인 습관이 오랜 시간 하나씩 형성되어 커다란 우리의 모습이 그려진 것처럼 좋은 생각, 바른 언어 습관, 그리고 나 혼자만 잘 살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누릴 수 있는 그런 행복을 꿈꾸는 마음이 따뜻한 아이로 자라도록 무리하게라도 기대해 보자. 그렇다면 굳이 명문대 준비할 것도 없다. 그것이 명문대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요건이니까.
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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