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진정한 세대 교체
이번 한국 총선의 결과를 보면 두가지 중요한 현상을 꼽을 수 있다.
첫째, 진정한 의미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지난 1997년 대선을 통해 한국에서는 여야 세력의 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으로 대통령직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회 쪽에서 보면 16대까지 세대교체는 없었다.
이번 선거를 통해 국회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정치 신인이 대거 등장했고, 평균 연령도 많이 낮아졌다. 한국 정치 엘리트의 세대가 교체된 것이다.
한국 정치는 60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근대화 세력이 주축을 이루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들도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 연령이나 권위적 사고의 측면에서는 근대화 세력과 크게 차이가 없다. 17대 국회에 운동권 출신을 비롯한 젊은 세대가 다수 진출함으로써 개혁 입법 등으로 한국의 변화 분위기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두 번째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약진이다.
1948년 정부수립이후 한국은 분단 상황에 묶여 진정한 의미의 진보가 발붙일 수 없었다. 열린 우리당이 진보라고는 하지만 보수 성향이 많이 섞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민노당이 원내 3당으로 선전한 것은 한국 정당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진정한 진보 정당의 원내 진입으로 한국 정치에 진보, 보수의 이념적 분할이 초래되지 않을 까 생각된다. 민노당의 약진은 앞으로 몇 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선거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후보나 정당 간 정책을 둘러싼 진지한 대결이 없었다는 점,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다. 선거 유세 동안 저마다 눈물을 흘리며 너무 감정에만 호소하였던 점을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신기욱 스탠포드대 교수
보수·냉전 세대의 퇴장
이번 17대 총선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사에서 혁명적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전체 의석의 17% 밖에 장악하지 못하고 있던 집권당이 1년만에 깨끗하고 공정한 민주절차에 의한 선거를 거쳐 51%의 과반 의석을 차지하게 된 것은 민주주의 의회 역사상 경이로운 일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불과 12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노태우 정권이 끝난 1992년까지 한국의 정치는 관권, 금권, 군권의 야합에 의한 권력의 계승이었고, 대통령을 뽑거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였다.
1992년 김영삼 대통령의 선출로 군사정권이 물러갔으나 국민의 대표를 뽑는 과정에서 금권과 관권의 부패적 야합으로 깨끗한 민주선거가 실시되지 못했다. 그래서 과거 독재정권에서 전승된 기득권 세력이 계속 유지되었다. 이번 17대 총선은 55년 동안 한국의 정치권력을 장악해 온 보수와 냉전 세대가 물러나고, 개혁의식으로 대표되는 전후 세대가 나라의 운전석을 차지하게 하였다. 이번 선거 결과는 국민의 다수가 선출한 대통령을 그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고, 가끔 말 실수를 한다는 구실로 국회에서 함부로 탄핵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강하게 남겼다는 의미에서 좋은 결과로 볼 수 있다.
미주 한인들은 우리당의 대북 정책과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많은 염려를 하는 듯하다. 그러나 북한이 궁극적으로 변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우리당이나 한나라당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본다. 다만 북한이 바뀔 수 있도록 돕는 방법에서 우리당은 햇볕으로 따뜻하게 해서 스스로 바뀌게 하자는 것이고, 한나라당은 이러한 정책에 의견을 달리한다는 데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우리당은 한나라당과 같이 한미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그러한 정책을 시행해 왔다. 앞으로도 계속 한미관계에서 이와 같은 실용주의 정책을 적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당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하게 된 이번 선거의 결과에 대해 우려되는 면도 있다. 개혁 세력이 집권을 하면 부패하기 쉽다. 개혁세력은 주로 과거 정권의 혜택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 만연한 부패 문화에 저항할 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가 있다. 개혁 세력이 도덕성을 잃으면 힘을 잃게 된다.
또 개혁 세력이 한 번 집권을 하게 되면 법을 휘고, 꺾고, 없애면서까지 해서 정권을 연장하여 독재로 가는 성향이 강한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군사 정권이 그랬고, 나치 정권이 그랬고, 공산 정권이 그랬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한국을 세계에 모범이 되는 민주주의 국가로 만드는 데에 큰공을 세우는 겸손한 국회의원들이 되어 주기 바란다.
유의영
칼스테이트 LA교수
정치개혁 가속화 할듯
여당인 열린 우리당의 압승은 구체적 업적과 활동에 대한 국민의 평가라기보다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국민의 심판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제 열린 우리당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할 각종 개혁에 힘을 실어주고 당면한 경제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정치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선거운동 초기의 비관적 전망과 달리 이른바 ‘박풍’과 ‘노풍’에 힘입어 과거의 텃밭인 영남지역에서 압승을 거두고 수도권 지역에서 선전함으로써 제1 야당으로서 노무현 정부의 독선과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힘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 한나라당은 선거에서 거듭 약속한 대로 건전한 보수세력으로서 거듭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비록 영남에서 압승을 하기는 했지만 지역주의적 지지가 과거와 달리 무조건적이라기보다는 조건부로 이행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이번 선거가 보여주는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여당이나 야당 모두 보수 우익정당이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나 계급적인 이해관계의 차이에 따른 선명한 정책대결이 없었다.
그러나 민노당의 진출과 함께 이제는 정당간의 정책대결이 좀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노당의 원내진출은 진보세력의 제도권 수용과 함께 한국의 보수정당이 이제 합리적 보수로 체질개선을 도모해야 할 역사적 시점에 도달했음을 예고한다.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17대 총선은 한국 민주주의가 서구국가들에 비추어 보면 아직 여러 모로 미흡한 점이 많지만 아시아권에서는 타의 모범이 되는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하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경사다.
강정인 서강대 UC 데이비스 교환교수
‘부패 청산하라’는 국민적 명령
열린 우리당이 제1당이 된 것은 힘을 실어줄 테니 제대로 정책을 펴보라는 국민의 요망의 표현이다.
보스정치, 제왕적 총재 정치 등 구시대의 유산을 벗어 던지고 개혁을 약속한 만큼 한국사회에 고질적인 부정부패를 확실히 청산하라는 역사적 명령인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장 깨끗한 선거가 치러진 것, 부패정치인들이 총선을 통해 상당수 물갈이가 된 것은 향후의 개혁을 위한 좋은 출발이다.
한나라당이 보수당의 대표로서 제2당이 되어 우리당과 정책 대결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다. 특히 구시대적 부패정치인이 상당수 퇴출된 상황에서 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때로 경쟁을, 때로 협조할 수 있는 양당체제가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민주당이 몰락하다시피 한 것은 진보 세력 내부에서의 개혁파와 장로파의 권력투쟁에서 장로파가 패배한 것이라 해석해야 할 듯하다. 군사독재의 유산을 상당부분 이어받았다고 생각되었던 한나라당과 탄핵에서 연합한 것이 역풍을 얻어맞은 결정적 이유였을 것이다. 우리당과 갈라서서 대결하는 것은 안타깝고 모양새가 좋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이라는 급진적 진보정당의 원내 진입은 한국의 산업발전의 결과로 야기된 노동자 계층의 증가와 빈부격차가 가져온 자연스런 과정이라고 본다. 그만큼 억압받고 소외되어 있다고 느끼는 층이 증가했다는 증거이며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부패와 더불어 분열과 비타협의 정치문화이다. 이념이나 정책 뿐 아니라 지역, 연령 등으로 사분오열되어 있고 서로 타협하기 보단 극명하게 갈려 대립한다. 한국 사회가 지역, 연령 등으로 갈라져 대립하는 것보다 진보 대 보수의 정책 대결로 경쟁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이다. 대의를 위해서는 때로 진보와 보수가 협조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이가 든 연령층을 수구세력이라 몰아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 연장자의 경험과 관록을 받아들여야 한다.
개혁 세력은 우선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에서 출발하여 지속적 고도성장을 창출하는 시스템을 이루어내야 한다. 진보정당이라고 하여 분배를 우선시하고 성장을 희생하는 것은 어리석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의 지정학상 성장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분배보다 우선해야 한다.
대북 문제는 평화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한국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된다. 대북 경제 제재나 선제 공격은 한반도에 전쟁의 재앙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북한의 체제변화는 대외경제협력과 개방을 통해 더 평화적이고 건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동시에 북한은 지구상 가장 열악한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며 북한 인권문제 시정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다.
유 철
USC 한국 프로젝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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