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브라운 v. Board of Education이 50주년을 맞는 해이다. 미 전국에서는 이 케이스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54년 5월17일에 나온 브라운 v. Board of Education은 미국 민권운동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일대 사건이었다. 얼 워런 코드는 당시 미국 남부 공립학교에서 시행되던 인종분리 정책이 수정 헌법 14조 평등보호 규정에 위반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지만 대법원의 위헌 결정이 나왔다고 해서, 하루 아침이 흑백 분리가 교육현장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뒤에도 무려 15년이라는 세월이 더 지낸 70년대의 문턱을 넘어서서야 비로소 미국 남부에서 흑인 학교와 백인 학교가 사라지게 되었다
“흑인은 흑인학교만 가야” 인종분리 정책
1954년 위헌 판결… 미 민권운동 전환점
52년 켄터키주 토피카에 사는 린다 브라운이라는 흑인 소녀가 집 옆에 백인 학교가 버젓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집에서 무려 4km나 떨어진 흑인 학교로 통학을 해야 했다. 흑인인 이 여학생은 켄터키 주법에 따라 백인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것이다. 린다 브라운은 켄터키 주법이 위헌이라며 제소했다. 버지니아주 등 다른 4개 주에서도 유사한 소송이 제기됐다.
이 브라운 케이스가 나오기 전만 해도 미국에서는 시설 등 외적 조건만 같으면 흑인과 백인이 다른 시설을 사용하게 할 수 있다는 이른바 분리된 평등의 원칙(Separate but Equal)이 법이었다.
이 원칙을 선언한 Plessy v. Ferguson(1896)은 당시 대중 교통수단이었던 열차 안에서 흑인 칸과 백인 칸이 나누어져 있는 것이 수정헌법 14조의 평등보호 규정에 맞느냐가 이슈였다. 당시 루이지애나 법은 흑인이 백인 칸을 타거나 백인이 흑인 칸을 타면 경범죄가 됐다. 백인 칸을 탔다가 흑인 칸으로 자리를 옮기기를 거부했던 흑인 남자 플레시가 루이지애나 법이 위헌이라고 제소한 것이다. 그렇지만 연방 대법원은 흑인이 백인 칸에 탄 것을 경범죄로 처벌한 루이지애나 법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연방 대법원은 수정헌법 14조가 인종의 절대적 평등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것이 자연스런 인종의 차이까지 없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흑인과 백인의 구분은 매우 자연스런 것이고, 열차에 흑인 칸과 백인 칸을 따로 두도록 한 루이지애나 법은 결코 불합리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외부적 조건만 같으면, 인종차별을 해도 무방하다는 이 원칙은 그 후 50년 이상 동안 인종 문제를 다루는 룰이 되었다.
그런데 브라운 케이스는 설사 외적 조건이 모두 같다고 하더라도, 흑인은 흑인 학교만, 백인은 백인 학교만 다니게 하는 것 자체가 곧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흑인 학교와 백인 학교가 시설과 교과과정, 나아가 교사의 자질과 봉급이 같더라도, 흑인은 흑인 학교만 다니게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수정헌법 14조 평등보호 조항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수정헌법 14조는 수정헌법이 제정될 당시 관점으로 보아서는 안되고, 현재의 시점에서 수정헌법 14조를 읽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방 대법원은 공공교육의 장에서 분리되어 있으나 평등한 원칙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교육시설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불평등하다고 천명했다.
해가 바뀐 1955년에 내린 브라운 II는 어떻게 하면 대법원 결정을 교육 현장에서 시행할 것인가를 다루는 장이었다. 이 케이스에서 흑인 단체들은 학교 통합을 직각 시행하거나 적어도 법원이 시행 스케줄을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연방 대법원은 인종차별을 해결해야 할 일차적인 책임은 각 교육구에 있고, 교육구마다 사정이 다르므로 연방 대법원 차원에서 일률적으로 인종통합 정책을 시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연방 대법원은 인종통합은 각 교육구의 사정에 따르므로, 관할 연방지방 법원이 관할권을 갖고 신중하게 시행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이 이렇듯 시행 국면에서 다소 미온적인 입장을 취하자 브라운이 결정된 뒤 10년이 지난 1964년에도 남부주의 교육 현장에서 인종통합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브라운 케이스는 미국 인권운동의 씨앗이었다. 60년대 들어 개화된 미국의 민권운동도 그 출발은 바로 브라운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브라운 케이스야말로 미국 인권사의 새 지평을 연 사건이었다.
김성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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