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진<미주본사 편집위원>
오페라에는 “뚱보 여인이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는 아직 끝난 게 아니야”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원래 이 말은 한 라디오 야구경기 해설자로부터 나온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오페라의 홍보실장 게리 머피(Gary Murphy)에 따르면 경기가 거의 끝날 무렵까지 시소게임을 하는 야구경기를 중계하던 한 해설자가 옆에 사람이 “이제다 끝났어”라고 말하자 이에 대한 반응으로 이같은 발언을 했다는 것. 뚱보 여가수를 들먹인 것은 과거 오페라 여가수는 모두 뚱보라는 고정관념에서 나온 말이라고 머피 실장은 덧붙였다.
그런데 이렇게 오페라와 동의어가 되다시피 한 뚱보 여가수가 이제는 점점 오페라 무대에서 문전박대를 받는 신세가 되어 가고 있다. 최근 런던 코벤트 가든의 로열 오페라측은 올 여름에 공연될 리햐르트 슈트라우스 ‘낙소스 위의 아리아드네’에 주연할 예정이던 미국인 소프라노 데보라 보이트(43·사진)를 뚱뚱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놓았다. 그 뒤로 오페라계는 스타일이 먼저냐 아니면 내용이 먼저냐는 문제를 놓고 찬반토론이 요란했었다.
로열 오페라측은 현대적으로 해석한 오페라에서 보이트가 날씬한 검은 칵테일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아리아드네로 나오기엔 너무 뚱뚱하다고 출연취소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보이트는 “나는 큰 엉덩이를 가졌는데 코벤트 가든에게는 그게 문제인가 보다”라고 한마디했다. 그런데 보이트의 체중은 220파운드로 알려졌다.
보이트는 ‘여신의 음성을 지닌 가수’라는 말을 듣는 금세기 최고의 드러매틱 소프라노 중의 한 사람이다. 풍성하고 강력한 목소리와 마라톤 선수의 지구력을 요구하는 바그너의 악극에 알맞는 성량과 몸집을 지닌 가수로 지난 달 뉴욕 메트 오페라가 공연한 ‘발퀴레’에서 지클린데로 나와 열창, 격찬을 받았 었다.
오페라는 시각 드라마와 성악 멜로디의 합작품이다. 이 보는 것과 듣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에 대한 의견은 각인 각색이다. 가수가 진짜 스타라는 의견을 지닌 메트 매니저 조셉 볼피는 자기는 어떤 역에든 언제나 서슴없이 보이트를 고용하겠다고 말한 반면 오페라의 요체는 극적 경험이라고 주장하는 한 음악저술가는 폐병을 앓는 미미(‘라보엠’)를 뚱보가 노래하는 것은 꼴불견에 가깝다고 반박했다.
보이트 사건은 어쩌면 외모와 이미지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의 성향의 부산물이라고 하겠다. 과거에는 오페라 가수는 체중이 넉넉해야 성량도 풍성하다는 것이 통념이었다. 이런 뚱보 여가수의 이미지를 바꿔 놓은 사람은 마리아 칼라스로 알려졌다. 그녀는 1950년대 초 엄청난 체중감량을 시도, 날씬한 여가수의 선봉장이 되었다.
오페라단이 날씬한 여가수를 반기는 이유를 젊은 관객을 유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이들은 영화와 TV에 익숙한 젊은이들을 유치하기 위해선 역에 맞는 모습을 한 가수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로스앤젤레스 오페라 전속 메조소프라노 수잔나 구스만(그녀는 날씬하다)은 “날씬한 여가수 선호 경향은 다분히 할리웃의 영향”이라며 “오페라가 갈수록 시각적으로 화려해지면서 이런 경향이 생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과거 수세기간 이상적인 미녀는 몸매가 풍만한 여자였다. 루벤스와 르놔르의 여체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세월이 변하면서 요즘 여자들은 하나 같이 트위기처럼 되기를 원하고 있는데 지금 미국에는 이른바 굶어 죽는 병인 거식증에 시달리는 젊은이가 수백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가수 카렌 카펜터도 이 거식증으로 사망했다.
뚱보 가수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너무 살이 쪄 온갖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가수가 루치아노 파바로티(69)다. 과체중으로 ‘맥주통’이라는 별명을 가진 파바로티는 지난 달 메트 오페라가 공연한 ‘토스카’로 오페라 무대에서 은퇴를 했다.
그런데 이 공연에서 그가 무거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냈고 (공연 후 오랜 기립박수로 그를 치하는 했지만) 비평가들로부터 별로 명예스럽지 못한 퇴장이라는 말을 들었다. 파바로티는 여기서 그의 상표가 되다시피 한 화가 카바라도시로 나와 3막에서 총살을 당한다. 그런데 파바로티는 총에 맞아 쓰러지면서 마치 낮잠이라도 자려는 듯 자기 주위에 잔뜩 깔아놓은 부드러운 베개들 위로 조심스럽게 몸을 눕혔다고. 이 광경을 본 관객들의 폭소가 음악소리를 압도했다고 한 신문은 보도했다. 망신살이 뻗쳤지.
오페라 가수건 일반인이건 간에 너무 뚱뚱하면 미관상도 별로 안 좋고 건강에도 안 좋다. 몸조리들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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