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Went Wrong?
버나드 루이스
이라크가 적대관계에 있던 수니파와 시아파가 손을 잡고 미군정에 저항, 무
력 충돌이 빚어지면서 사상자가 속출하는 등 종전 1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오늘날 회교권이 왜 이렇게 됐으며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 것인지를 날카롭게 분석한 책으로 평가받는 버나드 루이스 저 ‘무엇이 잘못 됐나?’ (What Went Wrong?)를 통해 중동의 현주소를 진단해 본다.
<민경훈 논설위원>
‘루이스 독트린’ 이라크 침공 이론적 기반
회교권, 남의 탓 하기 앞서 자체 개혁해야
버나드 루이스는 미국이 국내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를 침공하도록 이론적 근거를 만들어준 대표적 인물이다. 87세의 고령에도 불구, 왕성한 집필 및 강연 활동을 벌이고 있는 루이스는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낙후한 아랍권을 현대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현상 유지에 급급한 방식으로는 중동 테러의 뿌리를 뽑을 수 없으며 민주화를 통해 이 곳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만이 진정한 해법이라는 것이다.
“루이스 독트린’으로 불리는 이 이론은 현재 부시 행정부 대 이라크 정책의 줄기를 이루고 있다. 부시 대통령과 ‘네오콘’으로 불리는 그의 보좌관들은 이라크를 이 이론의 시험대로 삼아 ‘안정’을 지상의 가치로 삼으며 중동의 독재자들을 옹호하던 과거 50년 간의 정책을 뒤엎었다.
영국 출신인 루이스는 1945년 런던대에서 오토만 사를 가르치다 1974년 프린스턴으로 초빙돼 왔으며 그 후 소위 ‘네오콘’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그가 이처럼 부시 행정부 내 주요 인사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60여 년 간 교수와 영국군 정보 장교로 근무하며 20여권의 저서를 쓰는 등 중동 문제 전문가로서의 명성 탓도 있지만 그 제자들이 행정부 각처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의 하나가 매파의 기수 폴 월포위츠다. 루이스는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 담당 보좌관의 자문역을 맡고 있으며 부시 대통령도 서류 가방에 그가 쓴 기사를 오려 들고 다닌다.
그는 ‘무엇이 잘못 됐나’ 라는 책에서 7세기 초 회교가 탄생한 이래 근 1,000년 간 서구에 대해 압도적 우위에 있던 이슬람권이 1683년 비인 함락에 실패하면서 급속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며 왜 이들이 우리를 미워하느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주장을 편다.
회교도의 입장에서는 자기보다 못난 문명인 기독교가 모든 면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부강하고 성공적인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서 사랑 받을 수는 없다. 그들이 우리를 증오하는 것은 당연하며 문제는 그들이 왜 우리를 두려워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가 하는 점이다”라고 루이스는 말하고 있다.
비인 전투에서 패배하고 1699년 칼로비츠에서 치욕의 강화조약을 체결한 후 회교권이 자구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구에 대한 오랜 우월감으로 굳어진 사회 분위기를 바꾸기는 어려웠다. 이들은 시계와 권총, 망원경 등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데는 열심이었지만 이런 물건의 발명을 가능케 한 자유로운 탐구 정신을 수용하는 데는 실패했다. 근대 서양 문명을 가능케 한 르네상스도 종교 개혁도 계몽사상도 이슬람권에서는 없었다. 시계만 수입할 줄 알았지 시계 제조법이나 수리법을 배우지 않아 한번 고장난 시계는 버리는 식의 피상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회교권이 실패한 것은 물질 문명만이 아니다. 서방의 압력으로 기독교도들에 대한 박해는 줄어들고 노예제도 가까스로 폐지했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을 이슬람권 전역에 그대로 남아 있다. 지난 300년 간 회교권의 역사는 군사적 패배, 경제적 몰락, 정치적 압제, 사회적 침체라는 총체적 재난의 연속이었다.
오랜 세월 세계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던 회교도들로서는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고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악당들을 찾는 작업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 결과 나온 답이 서방의 제국주의와 시온주의다. 지금 중동을 휩쓸고 있는 테러와 이를 지원하는 극렬 단체를 이론적으로 지탱해주는 것이 바로 이 음모론이다.
그러나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에서 “무엇이 잘못됐는가”로 질문이 바뀌지 않는 한 회교권의 희망은 없다는 것이 루이스의 생각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 테러로 아무리 많은 인명을 살상해 봐야 그것만으로 아랍인들이 조금이라도 잘 살게 될 가능성은 없으며 지금 회교권이 필요로 하는 것은 사상의 자유, 정치 경제적 자유이지 자살 공격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1930년대 히틀러가 유럽을 제패하려든 때 평화 운동을 벌이던 사람들을 직접 체험한 그는 이라크 반전 운동가들을 경멸한다. 당시 평화 운동가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 히틀러가 전쟁에 이겨 지금쯤 나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미국이 테러 위협을 근절하고 회교권의 부흥을 위해 해야할 일은 힘을 바탕으로 한 대외 정책을 펴 아랍 민주화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루이스는 믿고 있다.
현재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은 일면으로는 아랍 민족주의와 서방 제국주의의 싸움이지만 다른 일면으로는 중세적 야만과 자유 민주주의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만약 미국이 국내외 압력에 굴복, 아랍 민주화를 포기하고 물러난다면 테러 단체들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고 아랍을 비롯한 회교권의 현대화는 한 세대 이상 늦어질 것이다.
9·11 테러 직후 나와 한 때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던 이 책은 중동 사태를 바로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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