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창 <워싱턴 한인사 편찬위원장>
미주동포선언문은 21세기를 맞는 코리언 아메리칸의 시대적 과제와 비전을 요약한 것이다. 세 가지로 요약된 이 과제와 비전은 첫째 한인들의 미국사회(주류사회) 참여확대, 둘째 민족문화의 보존과 계승, 셋째 모국통일의 지원이다. 선언문의 구성은 목적과 전문, 본문에 이어 선언문의 해설로 나뉘어 있고, 본문은 지난 100년간 한인들의 미국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미국역사의 주인으로서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감당해야할 과제와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선언문은 한인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시대적 사명을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인사회의 정체성을 발현시키고 있다. 선언문이 제시하고 있는 세 가지 과제와 비전은 이민역사를 바탕으로 한인들의 미래에 대한 정신적 설계도와 같은 것이다. 미주 동포 선언문은 그 전문에서 “미주 한인사회는 하나의 민족 공동체로서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며 미국사회의 각 분야에서 한인들의 참여의 폭을 넓혀 가는데 필요한 시대적 과제를 선언한다”고 밝히고 있어 미주 한인사회의 미래에 대한 방향설정에 역점을 두고있다.
미주동포선언문의 골격이 필자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다. 10년 전 워싱턴 한인사(1883-1993)를 탈고한 후 느낀 바를 정리하는 과정에서였다. 워싱턴 한인사는 단순히 워싱턴 한인들의 발자취를 넘어서 미국사의 한 부분이며 미주 한인사 더 나아가서는 해외 한인사의 일부분이라는 인식을 갖게됐고 이를 통해 한인들의 지나온 삶의 궤적이 그려졌는데 이것이 바로 3가지 시대적 과제가 도출되는 근거가 됐다.
선언문의 구상을 가다듬던 중 이것이 과연 한인사회에 필요하고 합당한 논리인가 여부를 검증 받고자 미주한인회 총연합회를 비롯한 각종 한인단체에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의견을 제시해 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두어 차례 동포신문에도 게재 됐으나 역시 반응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때 필자가 선언문의 구상과 관련, 눈여겨본 사안으로는 토머스 페인(1737-1809)의 ‘커먼 센스’와 조소앙(1887-1958)의 ‘삼균주의’, 그리고 데오돌 헤르츨(1860-1904)의 ‘유대 나라’ 와 손문(1866-1925)의 ‘삼민주의’였다. 커먼 센스(상식)는 미 독립전쟁 초기 미국인들이 모국인 영국에 대한 충성이냐 독립이냐 하는 문제로 국론이 분열됐을 때 ‘왜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하는가’ 하는 난제를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풀이한 소형 팜플렛이다. 당시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국민이 ‘커먼 센스’를 읽고 독립전쟁의 당위성을 이해, 국론이 통일됐다는 것이다. 만일 이 책이 없었더라면 독립전쟁은 다른 양상으로 번졌을 가능성이 얘기될 정도로 여론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헤르츨의 ‘유대 나라’는 이스라엘 건국의 기초가 된 시오니즘의 창설을 주창했다. 시오니즘 창설이후 세계 속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한곳으로 모이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의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의 이스라엘 땅이다. 삼균주의는 당시의 독립투사이자 논객이었던 조소앙이 모국해방을 앞두고 좌우로 나뉘어 심한 분열상을 보이고 있던 독립진영의 대동단결을 위해 고안한 이념으로 임정의 기본이념으로 채택되었다. 손문의 삼민주의는 서구의 식민지로 급속히 전락해 가고 있던 중국을 다시 결속시켜 현대적 중화민국으로 거듭나게 하는데 중요한 이데올로기를 제공해 주었다.
설명이 다소 길어진 감이 있으나 일일이 거론한 것은 이 4명의 사상이 선언문의 골격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위에 거론한 4명은 모두 우연하게도 분열을 통합으로 이끌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제공해주는 공적을 남겼다. 그리고 흩어졌던 힘들을 한곳으로 모아서 새로운 역사의 물줄기를 만들어냈다. 미주 동포 선언문이 김일평 교수께서 걱정하는 한인사회의 분열을 치유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작용을 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이제 이민 2세기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한인사회가 필요로 하고있는 이데올로기 문제를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한다. 독자 여러분들의 생각과 참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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