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린것 다시 구워내도 맛은 그만
전문 빵집에서 빚어 구워내 공급
천연재료 어울린 맛에 말랑한 속살
제빵업계 전체 성장률의 4배 매출
마켓서도 일손 덜며 손님늘어 환영
요즘 전국의 수퍼마켓에서는 소위 ‘아티잔 브레드(artisan bread)’가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동네의 조그만 빵가게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빵들처럼 손으로 빚은 모양새, 호두, 로즈메리, 건포도, 올리브등 여러가지 천연재료가 어울린 맛, ‘바게트’‘바타드’‘시아바타’‘피첼레’‘포카시아’등 이름부터 이국적인 다양한 종류, 잘 익어 쫄깃쫄깃한 껍질 속의 말랑말랑한 속살, 매장 내에 퍼져 있는 기막힌 냄새 덕분에 저탄수화물식이 온 국민의 뇌리에 박혀 있는 요즘 작년보다 10%나 매출이 신장됐다.
그뿐 아니라 제빵업계의 연간 총매출 160억달러중 이미 거의 20억달러를 차지하고 있는 이 아티잔 브레드의 매출 신장은 제빵업계 전체의 신장율의 4배에 달하며, 흰 빵과 비교하면 거의 20%나 된다.
그런데 이름은 아티잔, 즉 빵만 굽는 장인이 만든 빵이라지만 사실은 미리 살짝 구워 얼려 놓은 빵을 납품받아 수퍼마켓 베이커리에서 다시 구워 낸 것이다. 아주 조그맣게 레이블에 쓰여 있듯, 이미 구워 얼린 빵을 되굽는 것(parbaking)은 유럽에서 개발된 일로 미국에는 이 업계의 존경받는 장인중 한사람인 LA의 라브레아 베이커리 주인 낸시 실버튼에 의해 도입됐다. 현재 가장 유명한 것은 뉴욕의 빵 전문업소 에세 파니스로 2002년에 매장을 닫고, 그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미니애폴리스의 컨셉트 2 베이커스도 이렇게 구워 얼린 오개닉 빵 생산을 늘리고 있고 샌프란시스코의 가장 유명한 빵집 그레이스 베이킹도 전국 시장에 구워 얼린 빵을 공급하고 있다.
사실 19세기말에 수퍼마켓에 대량으로 공급되기 전까지 미국에서 빵이라면 모두 빵집에서 손으로 반죽해 구워낸 것들이었다. 그러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눈처럼 흰 공장에서 제조된 빵들이 식품점 선반에 등장하기 시작한 1930년대부터 곡식 낱알이 씹히고 모양도 거친 수제 빵들은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예 썰어서 포장한 식빵들이 등장하면서 그것이 미국빵을 상징하게 됐다.
1970년대들어 건강식 운동과 함께 도정하지 않은 곡식과 집에서 구운 빵이 반문화 식품의 총아로 대두되기 시작, 1990년 대에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과 검게 볶은 커피 원두, 유럽산 치즈들과 함께 아티잔 브레드가 다시 식도락의 상징이 된 것이다.
라브레아 베이커리의 실버튼은 4년전부터 남가주 마켓에 미리 구워 얼린 빵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2001년에 회사 지분의 80%를 7,900만달러에 아일랜드계 재벌사에 넘겼지만 실버튼은 전국의 2,500개 매장에 공급하고 있는 대량 생산하여 미리 구워 얼린 빵이 요즘도 자신이 매일 라브레아 블러버드의 오리지널 매장에서 굽고 있는 빵과 꼭같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근처에 빵을 직접 구워 파는 가게가 없는 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품질좋은 빵을 먹을 수 있는게 더 낫다는 것이다.
상당한 인력이 감축된 미국 수퍼마켓 업계로서도 이 방식은 환영이다. 대형 마켓일수록 베이커리를 구색으로라도 갖춰야 하는데 대부분 파트타임으로 빵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없는 종업원들로 꾸려려다 보니, 지시된대로 굽기만 하면 되는 빵은 안성맞춤이다. 또 잘 팔리는 종류만 골라서 구우면 되니까 손실도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빵의 가짓수가 많아져 고르는 기분이 좋다는 손님들은 빵 한덩어리에 5달러씩 내면서도 열심히 집어간다.
덕분에 죽어나는 것은 진짜 장인들이 운영하는 작은 빵 가게들. 이전에는 수퍼마켓에 납품도 했지만 이제는 그 길도 막혔고, 계속 납품을 하더라도 내막을 모르는 손님들은 사실 얼마나 오래전부터 냉동되어 있었는지 알 길 없는 마켓 오븐에서 나오는 빵이 더 신선한 줄로 오해한다. 그래서 자신의 제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유기농 인증을 붙이고, 밀을 기른 농부의 얼굴 사진까지 곁들인 조리법 카드를 만들고, 포장지 디자인을 바꾸면서 손님들을 상대로 그 지방에서 나는 제일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든 빵의 가치를 역설하기도 한다. 역시 믿을 것은 맛을 보고 맛을 알아줄 손님들 뿐이기 때문이다.
<김은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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