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군중이 외국인을 공격했다. 꺼멓게 그을린 네 구의 시체. 거리로 끌고 다니다가 다리에 걸쳐놨다. 그 중 셋이 미국인이다. 이라크에서 날아든 뉴스다.
소말리아 사태를 방불케 한다. 미군의 시체를 걸어놓고 환호하며 춤추던 군중. 10년 전 그 때의 상황과 너무 흡사하다.
촛불시위는 그침이 없다. 자신을 태워가며 주변을 밝힌다. 다분히 상징적이다. 왜 한국의 젊은 세대는 계속해 촛불을 켜드는가.
서구가 제국주의의 우월감을 즐기는 동안 밖의 세계는 회한을 쌓아왔다. 그 회한이 분노로 변하면서 서구의 가치에 대한 격렬한 저항으로 나타나고 있다. 누가 한 말이었더라.
분노가, 한(恨)이 이야기된다. 아랍의 분노다. 한국인의 한이다. 그 분노는 결국 한곳을 향하고 있다. 미국이다. 서구문명, 제국주의의 동의어가 된 미국이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배격되는 아메리카, 이 상황을 미국인들은 그러면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바라만 보고 있을까.
“우리 미국인들도 감정이 있는 국민이다. 이 점을 외국의 미국 비판가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 해 전, 그러니까 이라크전쟁 전의 한 시점에서 로버트 새뮤얼슨이 한 말이다.
부시의 이라크 전쟁계획을 찬성해서가 아니다. 네오콘의 해외정책을 지지해서도 아니다. 미국인의 선의를 항상 왜곡하고 악의에 찬 선동을 하고 있는 데 대한 분노의 표시였다.
분노의 대상은 아랍이 아니다. 맹방으로 불리는 나라다. 프랑스, 독일 그리고 한국도 들어있다.
이라크 전쟁 반대는 이해한다. 반(反)부시도 이해한다. 수백만 미국인도 같은 생각이니까. 문제는 저의가 있는 반미 선동이다.
슈뢰더 독일 총리는 열세의 선거전을 반미 선동으로 뒤집었다. 프랑스의 시라크도 마찬가지다. 사사건건 미국의 정책에 브레이크다. 계산된 반미로 정치적 곤경을 벗어난 것이다.
3만4,000여명의 미군이 희생되지 않았으면 대한민국이 존재했겠는가. 한국에 대해서는 먼저 질문부터 던진다. 그러면서 날로 확산되고 있는 반미정서를 배은망덕의 시각으로 그렸다.
결론은 미국의 분노를 자초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아들과 딸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 있다. 그 맹방으로부터 경멸에 가까운 반응이 돌아올 때 미국인들은 분노한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의 분노가 가져올 사태를 결코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경고다.
‘누가 영어를 필요로 하는가’-. 며칠 전 LA타임스 기사 제목이다. 한국의 중국어 열풍을 다루었다. 경제대국으로 뻗어나는 중국, 그 중국행 열차를 타라. 전체 그림은 이런 모양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는 거다. 미국 배격의 의식적 제스처로 한국의 신세대가 중국어를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만이 살길이라는 구호는 어느덧 사라지고.
중국과의 유대는 날로 깊어진다. 반비례해 미국의 그림자는 점차 엷어지고 있다. 이런 친(親) 중국 분위기는 한미동맹을 와해시킬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 단도직입적 질문은 이런 식이다. 미국이 중국의 인권사태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제출할 때 한국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그리고 같은 날 월스트릿 저널의 논평이다. 이슬람의 ‘마드라사’(madrassa)식 교육법이라고 했나. 반미, 아니, 미국에 대한 증오감을 조직적으로 주입시키는 학습 말이다.
비슷한 선동이 한국의 초·중·고교에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전교조의 작품이다. 그 결과 반미주의의 물결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완전 불신의 시각이다. 그리고 그 행간 행간에는 분노가 서려 있다. 한미동맹을 그 근본에서 와해시키는 전술을 구사해온 세력이 다름 아닌 한국정부라는 진단에서 특히 그렇다.
북한이 달라졌고, 평화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만을 한국정부는 거듭 강조해 왔다. 그 결과 한국민은 북한의 핵무기가 다른 곳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거침없는 비판이다.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다. 탄핵의 후폭풍을 맞아 야당은 지리멸렬 상태다. 총선 후 반미친북 성향의 좌파가 국회마저 장악하는 사태가 온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가장 기뻐할 세력은 김정일 체제로, 미국은 이제 한미동맹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할 시점에 와있지 않은가 하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불과 1년의 세월이다. 그렇지만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히 달라졌다. 원망에서 분노로, 분노에서 냉랭한 체념으로. 이런 식이다.
그 체념의 뒤에 오는 건 그러면 무엇일까.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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