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 휘 (소설가)
이모야, 보라 옷 다 입혔나?
지금 입히고 있다. 왜?
찰리가 또 큰일을 저질렀다.
무엇을 잘못 먹었나.
나좀 도와 줘라.
오늘 형부는 못 가나?
그래, 우리만 가야한다.
보라야, 넌 텔레비전보고 있어라.
네-.
다섯 살 먹은 보라는 하얀 드레스 치마 끝에 핑크색 레이스가 달려있는 옷을 입었다. 같은 색으로 된 긴 리본이 달린 모자를 쓰고 리빙룸 소파에 앉는다. 엄마를 닮아 그런지 벌써 숙녀 티를 내고 있었다.
언니, 일하는 빌이 안 오니까 집에 빨리 와야겠네.
그래 빨리 와야 형부가 좀 쉴 수 있지. 왜 무슨 일이 있나?
일은 무슨 일. 형부가 안가니까 준비하기가 힘들어 그렇지.
장사 시작하면서 외식은커녕 변변한 외출한번 못하고있다.
찰리 엄마는 기저귀를 바꾸고 옷을 입히면서 푸념을 쏟아 놓는다. 사람들은 한국을 떠나면서 한가지의 꿈을 안고 태평양 상공을 날아 왔을 것이다. 그 꿈들을 다 이루면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민 자들은 이런 말들을 잘한다. ‘한국에 그냥 있었으면 이런 고생은 안 했을 것인데.’ ‘그냥 있었으면 한자리하는 것인데.’ 모여 앉으면 넋두리를 쏟아 놓는다. 다들 국회의원, 장관자리 하나씩 두고 온 사람들 같아 보였다. 여자들도 일류 배우, 재벌부인, 사회운동가, 교육자처럼 자랑들하고 있는 한인사회. 그런 헛소리하는 것이 이민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푸는 한 방법이라고들 하였다. 찰리 아버지의 꿈은 소박했다고 할까. 미국 대학에서 최첨단 기술인 레이다 관측을 공부해 이 우주 속으로 흐르는 물체들을 보고 싶은 것이었다. 공부는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었다. 먼저 언어 문제였다. 그리고 시민권이 있어야 더 깊이 공부할 수 있기에 그만 도중 하차하고 말았다. 전자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다른 학과를 찾아 봤다. 펜대로 백인들과 대결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자본주의 사회서 경제가 최고라는 생각에서 그로서리를 시작하였다. 하루 열일곱시간. 쉬는 날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돈 쓸 시간이 없다보니 호주머니는 무거워져 가고 있었다. 한편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인 생활은 하루하루 망가져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장사를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주일날 일 할 사람 다시 구해봐.
여기저기 말을 해 놓았는데 잘 안 되네. 보라는.
리빙룸에서 텔레비전보고 있다.
너 그 사람 때문에 그렇지?
언니, 보라 아빠 다음달에 와.
형부가 안가니까 오후에 커피 마시고 집까지 좀 라이더 해 달라고 해봐.
언니, 그렇게 해도 될까?
안 될 일도 없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주 시간 좀 내어 달라고 했는데.
그럼 잘 되었다.
언니, 나 이렇게 입어도 되겠지?
동생은 언니 앞에서 푸른색 바탕에 하얀 물방울이 새겨져있는 드레스 입은 몸을 한번 빙 돌아본다.
잘 어울린다. 네 옷을 보고 짐작했다.
찰리, 열은 없는 것 같은데.
자매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동생이 먼저 찰리의 이마에 손을 얻어 언니의 눈길과 화재를 돌려놓는다.
보라 아빠는 지금 한국에 가 있다. 미국 들어와 한달 만에 다시 나갔다. 다니던 직장에서 자기가 그만 두기 전 새 사람한테 일년간 일을 가르쳐 주고 왔다. 그런데 한달 만에 그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회사측에서 다시 돌아와 새 사람한테 교육을 시켜 달라고 해 간지 일년이 넘었다. 처음엔 그렇게 믿고있던 보라 엄마는 여자문제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졌다. 보라엄마는 그런 생각을 쉽게 떨치지 못해 한국에 있는 오빠한테 연락해 알아봐 달라고 까지 하였다. 오빠의 연락은 사실이라고 하였다. 보라네는 아직 집도 직장도 없다. 언니 집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보라 엄마의 생활은 말이 아니다. 언니지만 무엇을 하려고 해도 눈치가 보였다. 보라엄마는 형부 보기가 더 미안해 될 수 있으면 자리를 같이 안하고 있었다. 주위선 보라엄마가 소박맞은 것이 아닐까하고들 쑥들 거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을 잡고 아니라고 설명할 수도 없는 일. 어떤 사람은 찰리 엄마한테 동생 재혼할 의사가 없느냐고 직접 물어오기도 하였다.
보라, 차에 먼저 태워라.
언니, 형부한테 말해야지?
무슨 말?
내가 늦게 올 것이라고.
그만 가자. 갖다와서 내가 말할게.
찰리 엄마는 아이를 안고 차로 간다. 차 시트에 아이를 앉히고 안전 벨트를 묵는다. 찰리는 기운이 없는지 눈을 감고만 있었다. 찰리 엄마는 운전을 하면서 뒤에 있는 아이를 몇 번이나 바라본다.
이모야, 네 그 사람 만나는 것은 좋지만 너무 멀리 가지 말아야 한다.
멀리 라니?
돌아올 수 없는 곳까지 가지 말라는 듯이야.
언니 우린 그런 사이 아니야. 그 사람 부인도 이 개월 후면 들어온다고 했어.
내가 볼 때 그 사람은 그렇지 않는 것 같더라.
언니 너무 비약하지마. 몇 번 만나지만 보라가 옆에 있는데. 그럼 만나지 말아?
그것은 네가 결정할 문제지 내가 해라 말라 할 일은 아니다.
보라 아빠 다음달에 온다고 하니까 나도 편하지는 않아.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여기선 ‘성냥불 안 넣어도 연기가 나온다’고 하는 곳이란 것 만 알아.
그래 여기 온 사람들 좀 이상한 것 같아. 전부 자기 자랑밖에 없고. 남을 칭찬할 줄 몰라.
그래 네도 살아보면 그렇게 될 것이니 조심해라.
왜 그렇게 되는데?
흉보면서 닮아 가는 것이 우리 인간이니까.
교회 파킹장에 차들이 꽉 주차되어 있었다. 조금만 늦게 오면 길가에 차를 세워야하는 곳이다.
언니 저쪽에 빈자리 있네.
차를 파킹하자 차에서 내리려고 하던 이모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내 신발?
무엇 신발?
응-.
이모는 좌석 밑 뒤로 손을 넣어 찾는다.
아침부터 쫌 이상하다 했다. 신도 안 신고 교회에 어떻게 들어가나.
그냥 차에 있을까?
신발 거꾸로 신고 간다는 말은 들었지만, 넌 아주 벗고 갈 모양이구나.
언니 -.
늦었다. 빨리 들어가자.
찰리 엄마는 잠자는 아이를 안고 교회 문 쪽으로 걸어간다. 이모는 보라 손을 잡고 신발도 없이 언니 뒤를 따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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