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을 보내며
얼마전 연합뉴스에 보니까 여자가 남자보다 `봄’에 더 민감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한 병원에서 남녀 각 15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남자보다 여자가 봄철에 겪는 변화가 훨씬 많더라는 것이다. 나른하고 피곤해지는 신체적인 변화도 그렇고, 기분이 좋아지거나 우울해지는 정신적인 변화에서 모두 여자(84%)가 남자(65%)보다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봄이 되어 의욕이 생기거나 기분이 달라지는 것은 뇌 속에서 분비되는 세라토닌 때문인데, 여성은 남성보다 감성적 측면이 발달했기 때문에 세라토닌의 변화에 더욱 예민하다”고 말했다.
세라토닌 때문인지 아닌지 몰라도 올해 나는 유난히 봄이 나른하고 피곤하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는 동안 계절을 타는 것은 사치라고 여겼었는데, 올 봄은 왜 이렇게 마음마저 산란한 것일까?
오늘은 3월의 마지막 날. 사실은 계절과 관계없이 나는 원래 3월이 싫었다.
새 학년이 시작되던 잔인한 달, 3월은 내게 언제나 ‘학교’를 생각나게 한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교실, 분가루 날리던 칠판, 시꺼먼 출석부, 도시락 쌓인 난로, 교무실, 화장실, 교련시간… 이런 것들을 추억이라며 아름답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으니까 추억이 되었지, 더 좋은 시절을 보냈더라면 더 즐거운 추억을 가질 수 있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국민학교에 처음 입학하던 날 이후, 3월은 언제나 춥고 어리둥절하고 낯선 달이었다. 꽃샘 추위가 나를 오돌오돌 떨게 했고 새로 배정된 반에 가면 새 담임선생님, 낯선 얼굴들이 서먹서먹하기만 했다.
사춘기를 앓던 중고등학교 때는 3월이 더 싫었다. 오바를 벗고 동복만 입은 채 등교하면 언제나 추웠다. 속에 아무리 내복을 끼여 입어도 스타킹 하나로 버티기엔 한국의 초봄이 너무 싸늘했고, 그보다 낯선 환경에서의 적응이 한동안 힘겨웠다.
새 반에서 번호를 정하느라 복도에 키순서로 길게 늘어서는 일은 특히 싫었다. 키가 작았던 나는 언제나 10번을 넘지 못하여 첫째 줄이나 둘째 줄에 앉혀지곤 했는데 늘 키 큰 아이들의 뒷자리, 그들의 세계가 궁금하곤 했다.
새 교과서들을 받아오면 달력으로 표지를 싸던 일, 월화수목금토 시간표를 만들고, 과목마다 참고서와 새공책 둘째 장에 이름 쓰던 일, 늘 선생님과 학교가 무서웠고, 숙제와 규칙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던 모범생의 비애는 누구도 헤아리지 못했으리라.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는 특히 힘들었다. 중3때 갑자기 입시제가 ‘뺑뺑이’로 바뀌면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창덕여고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규율이 어찌나 엄격했는지, 시험 치지 않고 들어온 첫 후배들을 교사들도, 선배들도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처음부터 무척 겁을 주었다. 빵덕모자에 칼 같이 풀먹여 세워야 했던 칼라는 나를 더욱 위축되게 했고 1학년 8반, 60명이 넘는 급우들중에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춥고 외롭고 학교 가기가 싫었던지, 3월초의 어느날 나는 사흘을 무단결석하여 초판부터 담임선생을 분노케하고, 엄마와 식구들을 깜짝 놀래켰다. 반항심이나 배짱에서 저지른 일이 절대 아니었다. 단지 고등학교라는 곳에 다니는 것이 너무 버겁고 겁이 났던 것이다.
검은 제복, 귀밑 1센치의 단발머리, 무거운 책가방, 만원버스에 갇혀 개성과 자유를 완전히 차단 당한 채 보내야 했던 세월은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었나 보다. 교복과 헤어스타일 자율화 시대를 보낸 후배들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때와 사뭇 다른 것을 느끼게 된다.
아침 출근길에 매일 아들이 다니는 중학교 앞을 지난다. 저 건물 안의 어느 교실 안에선가 아이가 공부하고 있겠구나, 라고 생각할 때마다 괜히 슬퍼지는 이유는 나의 감정이입일까. 아들은 전혀 다른 나라, 다른 시대, 전혀 다른 학교와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특별히 3월이라고 나를 괴롭힐 사람이나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그래도 이때쯤이면 어렴풋이 되살아나는 ‘새학년 신드롬‘. 한여름 같이 더운 삼월을 보내면서, 이제 나는 마음이 추운 삼월을 아주 떠나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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