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나절 뒤꼍을 서성거리다가 철사 망으로 둘러 쳐진 울타리 밑에 거의 터질 것 같은 꽃망울들이 맺혀 있는 것을 봐 두었다. 노란 색깔의 꽃망울들이 연한 바람결에 살랑거리고 있는 것이 가냘퍼는 보이지만 질기고 강한 생명력에 대한 증거라도 하려는 양 소담스럽고 싱싱하다.
일월 중순의 바람은 아직도 차가운데 어느새 꽃망울이 이만큼이나 부풀어올랐나 싶었다. 하기야 요 며칠 사이 낮 동안엔 햇볕이 제법 따사로워 졌나 싶더니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고개 내민 수선화. 오후 늦게 쯤에는 활짝 피어 날것 같았다.
삼 년 전 꽃집에 들렸다가 두세 뿌리를 사다가 심었던 것이 이제는 여러 뿌리로 불어나서 해마다 이맘때면 샛노란 꽃을 피우고 있어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는 전령사의 역할을 해주고 있기도 하다. 접시 위에 올려놓은 찻잔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꽃은 눈이 부시고 황홀할 만큼 밝은 샛노랑을 띄우고 있으면서도 하나같이 고개를 아래쪽으로 숙이고 있어 수줍음을 타고 있는 여린 소녀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매년 이 무렵이면 예외 없이 피어나는 꽃이지만 아내가 일에서 돌아오면 깜짝 놀래어 줄 일거리가 생겼구나 싶었다.
때 이르게 피어난 꽃 소식에 애들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해 보면서...
그녀가 돌아오려면 아직도 삼십여분은 족히 남아있을 것 같아 그사이 개밥이나 사와야겠다 싶어 슈퍼마켓을 다녀 와 보니 그새 그녀의 자동차가 와 있다.
집안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어서 빨리 여기 나와봐” 라고 호들갑스럽게 불러내어 꽃소식, 봄소식을 물증을 제시하며 알려줄 양으로 뒷마당으로 들어갔다. 재친 걸음으로 울타리 곁엘 가보니, 아쁠사, 지금쯤 활짝 피어나 냄새라도 풍기고 있어야 할 수선화는 간 곳이 없다. 잘려나간 대공의 밑동엔 아직 까지도 진물이 마르지 않은 채로다.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부엌 개수대 위쪽, 창문턱 유리컵에 활짝 핀 일곱 개의 수선화가 꽂혀 있다. 역정을 내고있는 나에게 해해거리며 “아침 일찍 집을 나가면 오후 늦게나 돌아 와야 하는 나 같은 사람도 꽃을 보며 즐기자”는 거 옅단다. 뒤뜰에 피어나는 꽃 같은 걸 일부러 나가서 감상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없는 나 같은 사람도 눈에 잘 뜨이는 가까운 곳에 놔두고 오가면서 바라다보며 즐기자는 거 얻는데 그게 뭐 그리 큰 잘못 된 일이냔다.
꽃이란 보면서 즐기자고 심는 거지 보이지도 않는 울타리 밑 구석쟁이에 처박아 두었다가 무엇에 쓸 거냔 다. 내가 정말 못살아... 말이나 못 하면 밉기나 덜 하지... 수줍은 듯 울타리 밑에서 고개 숙인 수선화, 꺽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본래의 모습대로 바라보며 즐기면 어디 덧나느냐고 투덜대니, 자기나 나가서 울타리 밑에 머리를 틀어박고 실컷 들여다보고 있으란다. 곱디곱고 연하니 연한 그러한 수선화를 야멸스럽게 난도질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건지. “여느 때 잡초 한 포기라도 뽑아 줘 봤으며, 물 한 방울이라도 줘 본 일이 있다면 내가 말도 인해... 멋대가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여자... 남자가 마누라에게 봄소식, 꽃소식을 무드 있게 좀 전해 주려던 마음을 일구나 있는 건지... 놀라는 듯 눈을 크게 뜨며 감탄하며 좋아하는 마누라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남자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 건지... 소년 소녀처럼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장면을 연출해 보려던 생각을 무지막지하게 짓이겨 버리고 마는 여자, 무드도 낭만도 없는 여자 같으니라고...” 라고 계속 투덜대는데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해해거리기만 하고 있는 여자.
그냥 알밤이라도 메기고 싶을 만큼 얄밉기만 한 마누라쟁이 같으니라고... “꼴에, 꽃이라는 것이 곱고 예쁘다는 것은 알고서 하는 짓거리이기나 한 것인지... 주제에, 또, 꽃 같은걸 가까이에 두고 바라다보고 싶은 마음 같은 게 있기는 하구? 그런 땐 제법 여자인척 하구 있네. 웃겨 정말...” 이라며 계속 두런거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히죽거리기만 하는 여자...
결국 피식 웃어버리고야 마는 숙맥 같은 나.
박영보
약 력
▲‘문학세계’ 수필부문 수상
▲‘한국수필‘ 신인상
▲미주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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