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형 모델 중 각광을 받고 있는 차의 하나로 도요타 프리어스를 빼놓을 수 없다. 맵시 있는 디자인이 돋보이는 프리어스는 전문가들로부터 ‘가장 예쁜 차’라는 평을 받으며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개스와 전기 복합 시스템으로 돼 있는 이 차는 배기 개스도 가장 적어 소비자들의 바이블 컨수머 리포츠지로부터 ‘올해의 환경 친화적인 차’로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차의 진짜 매력은 갤런 당 60마일까지 달릴 수 있는 마일리지다. 요즘같이 하루가 다르게 기름 값이 치솟고 있는 때는 기껏해야 갤런 당 10마일 대인 SUV와 비교하면 한 달 개스 값이 수백 달러씩 차이가 날 수 있다. 고유가 시대가 오래 가면 대형 SUV는 사라지고 프리어스만 길거리에 깔리기 될 것이란 성급한 예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미국 평균 개스 가격은 사상 최고인 갤런 당 1달러 74센트를 갱신했다. 가장 자동차를 많이 타고 다니는 가주의 경우 2달러 13센트로 전국 평균보다 40센트나 높다. 차량 운행이 피크를 이루는 여름철에는 지금보다 30센트 정도 더 오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기름 값이 오르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난 주 약간 하락했지만 국제 원유가는 배럴 당 35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다. 석유 값 급등의 원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미국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는 데다 중국과 인도 등 개발 도상국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유혈로 얼룩진 중동 사태가 투자가들을 불안케 하면서 가수요까지 겹치고 있다.
세계적으로 오르는 것은 그렇다 치고 가주는 왜 특별히 더 비쌀까. 환경 보호 때문이다. 가주에서 사용되는 개스는 전국에서 가장 깨끗하다. 그만큼 정유 하는데 더 돈이 든다. 그러면서 환경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정유소를 짓지 못하게 해 시설은 턱없이 모자란다. 마지막으로 가주에서 대형 정유소를 지은 것이 35년 전이다. 환경 보호론자들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차를 덜 타게 해야 한다며 지금도 기름 값의 절반에 달하는 세금을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석유 값 앙등 요인 중 OPEC 회원국이 담합해 가격을 조작했다는 설은 별 신빙성이 없다. 사우디 아라비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가 쿼타를 어겨가며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기름을 내다 팔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 정유 회사와 주유소들이 소비자의 호주머니를 뜯어내기 위해 값을 올렸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수년 전 기름 값이 병물 만도 못한 갤런 당 1달러 이하에 팔린 적이 있었다.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석유 업자들이 그 때는 왜 그렇게 인심이 좋았을까. 시장 경제 체제 하에서 상품의 가격은 상인의 마음씨가 아니라 수요 공급 원리에 의해 결정된다. 미국 같이 거대한 시장을 장기간 조작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집단은 없다.
일부에서는 지금도 석유 값이 비싸 난리인데 석유 고갈이 확실시되는 금세기 말이면 세계 경제가 파탄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천연 자원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자원 자체가 아니라 이를 이용할 줄 아는 인간의 노하우다. 100여 년 전 펜실베니아 타이터스빌에서 석유가 처음 발견됐을 때 “냄새 고약한 액체” 때문에 인근 집 값은 폭락했다. 태양열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대체 에너지는 이미 개발돼 있다. 대량 생산이 되지 않아 값이 비쌀 뿐이다. 석유가 바닥 날 조짐이 보이기 훨씬 이전 여러 형태의 대체 에너지가 생활 저변에 널리 보급돼 있을 것이다.
나날이 뛰는 기름 값은 대선을 앞두고 주요 정치 쟁점으로도 부각되고 있다. 2000년 대선 당시 개스 값이 갤런 당 1달러 68센트를 오르내리자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부시는 클린턴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 부재를 공격하며 OPEC에 압력을 넣어 기름 값을 내리게 하라고 요구했었다. 그러던 부시가 이제는 존 케리 후보로부터 에너지 정책 부재를 이유로 공격당하고 있다. 세상은 역시 돌고 도는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기름 값은 도대체 언제까지 오를 것인가. 전문가들 가운데 곧 큰 폭의 하락이 있을 것으로 점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3월 현재 실수요자가 아닌 투기꾼들의 석유 매입이 수년 내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이처럼 한쪽으로 편향된 의견을 오랫동안 존중해주지 않는다. 증시에는 “마지막 비관론자가 죽을 때까지 주식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일방적인 유가 상승 전망이 석유 값이 정점에 가까웠다는 신호는 혹시 아닐까.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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