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결의라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후 이상한 사태가 발생했다. 바로 탄핵 역풍이라는 국민적 반응이다. 탄핵안을 가결하는데 동조했던 국회의원들은 이 역풍을 맞아 위기에 몰리게 되었고 탄핵을 당한 쪽인 열린 우리당은 지지도가 급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예상키 어려웠던 현상이 현실화한 것이다.
국회에서 대통령이 탄핵을 받았다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대통령에게 문제가 많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탄핵 발의 자체가 국회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가능하며 탄핵 결의는 3분의2의 찬성이 있어야 하므로 탄핵이란 그리 쉽게 이루어질 수는 없다. 아무리 당리당략이라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잘못했다는 공감대가 크게 확산되지 않고는 국회의원 3분의2의 찬성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요즘 국회의원의 수준이 아무리 엉망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선량으로 뽑힌 사람들이니 평균 이상은 되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절대다수의 국회 의사는 국민적 합의와 대체로 일치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탄핵을 한 국회가 역풍으로 몰매를 맞다시피 위험에 빠졌고 탄핵을 당한 대통령이 비난을 받아야 할텐데 오히려 여론의 비호 속에 영웅처럼 떠올랐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오늘의 한국이 어제의 한국이 아니고 판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나온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옳고 그름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180도로 달라진다. 왕조시대에는 왕에게 무조건 충성하는 것이 절대선이었다. 불과 몇 백년 전인 조선시대만 해도 양반과 상인으로 구분되는 신분 차별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남존여비 사상이 철저한 당시에는 남녀관계 또한 절대적 종속관계였다. 이와 같은 시대적, 사회적 가치관, 즉 그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판을 전제하지 않고 당시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생각과 행동이 통하지 않는다. 이 시대에 과거시대의 생각이나 행동을 고집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공감이나 동조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미치광이로 대접받기가 안성맞춤이다.
한국에서는 반상의 구분과 남존여비 등 조선시대의 구습이 어느 정도 퇴치되었으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회 지도층이나 연장자를 존경하는 분위기는 살아있었다. 또 학력과 서열을 중시하는 풍조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 민주화의 과정에서 그런 분위기가 모두 허물어졌다. 그 결과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사람이 등장했고 그의 말대로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주는” 세상이 되었다.
지금 한국의 보수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인데 그들은 세상이 이렇게 달라진 것을 모르기 때문에 판판이 깨지고 있다. 보수층인 사람들은 사회 지도층과 연장자를 존중하고 학력과 서열을 중시하는 풍토에서 자라났다. 학교에서 공자와 맹자의 말씀을 배웠고 물질보다 정신을, 실리보다 의리를 중히 여기라는 훈육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그런 어리석은 생각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의 머리 수이고 돈의 액수이지 정신이니 의리니 하는 것은 희미한 옛날의 유산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더욱 변화시키고자 하는 젊은 사람들과 겨루는 보수층은 풍차에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구태의연하다. 말하자면 요즘 사람들이 총을 가지고 게릴라전을 펴고 있는데 보수층인 나이 많은 사람들은 옛날에 교육받은 대로 창과 칼로 전면전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니 백전백패일 수밖에.
이렇게 보수층의 생각이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앞으로 세상은 보수적인 사람들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변해간다고 전망할 수도 있다. 마치 주식시장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반대로 움직이는 것과도 비교할 수 있다. 한국에서 보수적인 사람들이 금과옥조로 여겼던 친미, 반공, 자유민주주의가 허물어지고 있는 추세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한국이 얼마나 더 허물어질 것인지, 보수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의 잣대로는 계량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한국은 빠른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다.
이기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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