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현 <문학평론가>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아내가 전해주는 수화기는 서울이란다. 으레 문학단체나 그쪽 잡지사의 원고청탁쯤일 게다 생각하며 받은 전화는 상상 밖이었다.
“저는 2001년 북한을 탈출한 탈북 작가 정수반입니다. 오는 3월 6일 <통일문예협회 창립대회>를 여는데 선생님을 모시고 축하의 자리를 갖고자 합니다”란다. 그러나 필자는 순간 이 행사가 열리는 곳은 당연히 미국 안, 그것도 이 지역 워싱턴에서일 것으로 간주했다. 그래 “어디서요?” 라고 장소를 물었다. 맥클린 어디쯤의 호텔이거나 아니면 우래옥이나 한성옥 쯤 이라고 예견했던 대답은 “서울에서요” 라고 한다.
“그렇다면 국내에 유수한 문학단체와 그 대표자들이 있는데요. 한국시인협회의 이근배 회장, 한국문인협회의 신세훈 이사장, 국제펜클럽의 성기조 회장, 한국평론가협회의 임헌영 회장 등 말입니다. 그 단체들은 컨택 하셨나요?”
“네, 국제펜클럽의 성기조 회장님만 못하고 다 초청했습니다”고 한다. 그들은 이 탈북작가들의 모임인 통일문예협회의 창립대회 내용을 해외에까지도 널리 알리고자 했던 것 같다. 국제펜클럽의 성기조 회장은 안 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는 지금 미국에 체제 중이다. 2월29일 출장으로 서울을 떠나 지금 보스턴에 있고, 뉴욕과 LA를 거쳐 3월10일 이후에나 서울로 돌아가는 여행 중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직접 갈 수는 없고 화환이나 이 메일로 축하의 글을 보내드리겠노라는 화답으로 예기(豫期) 없이 돌발했던 탈북 작가의 초청전화는 이렇게 매듭지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꼭 서울에 가서 그들을 직접 만나보고 축하와 격려를 주고 싶었지만 그리 못함이 못내 안타깝고 아쉬웠다.
나는 이 전화를 받고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한 분은 월북 국어학자 유열 씨요, 다른 한 분은 탈북시인 김성민 씨다. 유열 씨는 북행 후 50년만에 이산가족상봉(2000.8.17) 때 국어학자 허웅씨와의 만남을 위해 서울에 왔던 북한의 국어학자였고, 김성민 씨는 북한작가동맹 초대 시 분과위원장을 지내면서 초창기 북한 시단을 이끌었던 김순석 시인의 아들로 두 차례의 사경(死境)을 넘는 탈북에 성공한 전 인민군 선전 대위출신 탈북시인이다. 김씨는 탈북 후 중앙대 문창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자유문학을 통해 등단한 현역시인으로 지금 미국의 소리 방송(VOA)과 자유아시아방송(RFA)과 같은 기능과 역할을 할 국내 인터넷방송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작가 정수반 씨와 김성민 시인, 그들이 앞으로 할 일을 잘 알고 있다. 작가 정수반 씨는 이호철의 뒤를 이을 것이고, 김성민 씨는 VOA와 RFA의 뒤를 따를 것이다. 필자가 문인회장을 맡는 동안 유관했던 두 방송은 지금도 친숙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전에는 VOA에 근무했고, 지금은 RFA에서 일하고 있는 전수일 아나운서와 RFA의 방송국장 안재훈 씨가 그들이다. 그들이 보여준 문학작품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유관한 내용의 작품을 전파에 실어 주는 일로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김성민 시인은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한마디로 말한다. “오죽했으면 탈북자들이 나섰겠습니까?” 하루에 한 시간씩만이라도 북한 땅에 자유의 소리가 탈북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가게 하겠다는 게 탈북문인 김성민 시인의 결연한 의지다. 그 뜻과 목소리는 통일문예협회를 창립, 대북활동을 펴나가려는 작가 정수반 씨의 꿈과도 같다.
그렇다면 이제 탈북작가, 그들이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작가 이호철을 기억한다. 그는 탈북 작가로 우리의 기억에서 가장 진한 소설가다. 그는 많은 작품을 통해 북한뿐 아니라 남(南)의 삶에 대해서도 깊은 이야기를 남긴 사람이다. 허웅과 유열이 다졌던 언어 이질화로 인한 괴리감 극복과제의 재다짐에도 앞장서야 하겠지만 국제구호단체인 기아방지행동(AAH)의 재유치추진운동도 그들의 몫이다. 아직 북한에 남아있는 국군포로송환이란 인도적 사업 또한 그것을 현장에서 똑똑히 목격한 바로 그들이 증언하고 수행해야 할 일이다. 이들이 해야 할 일은 또 있다. 핵무기개발의 포기로부터 정치 경제 군사 과학을 넘어 정신적 민족화해의 디딤돌이 되어질 운동을 문학을 통해 추진해가야 할 것이다. 탈북자 강제송환을 인도적 차원에서 선처되도록 하는 인권찾기 문학도 잊지 않기를 바라고 싶다. 지금도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국경을 넘는 탈북자 상당수가 북한으로 강제 송환돼 잔인한 처벌을 받고 있으며 중국임시수용소에서도 여전히 인권은 짓밟히고 있다. 이는 이미 탈북자강제송환 실태 보고회에서 확인된 실상이다. 이들 강제송환자들 속에는 김성민 시인처럼 재 탈북을 시도하다 실패한 사람도 있다. 현재 중국을 떠도는 탈북자는 10만 명 선이다. 그들 중 한국이나 제3국으로의 탈출시도자(再脫出試圖者)는 송환즉시 총살되고 있다. 이는 밀 입국자송환협정 자체가 국제법상 무효일 뿐만 아니라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33조)상 강제송환금지규정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이제 이들은 작품을 부지런히 쓰고 또 그것을 전파를 통해 전 세계에 알리는 일들을 힘있게 추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인민군 최고사령부 선전대위로 근무하면서 들었던 KBS 사회교육방송의 대북방송, 그 자유의 소리가 노동당 간부들에게는 그들의 인생을 바꿔놓은, 잊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다고 한다. 필자는 이제 비록 서울에 가지 못하고 단지 축하의 전문만을 띄웠지만 마음은 거기 가 있다. 그리고 불원 VOA와 RFA에 수련 차 방미할지도 모를 김성민 시인과 작가 정수반 씨의 전화를 다시 기다릴 것이다. - “임창현 선생님, 저희들 워싱턴에 왔습네다”그날은 아무리 없어도 한턱 크게 쏘리라. 文學酒(문학의 술), 詩酒(시의 술), 血酒(핏줄의 술) 말이다. 그들은 그 술값을 하고도 남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