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주필)
한국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는 고려장 이야기는 고구려시대의 전설이다. 사람의 나이가 70세가 되어 육체가 노쇠해지면 외딴 광에 옮겨 두었다가 그 곳에서 죽게 하고 죽은 뒤에 시체를 안치하고 금은보화를 넣은 후 돌을 쌓고 봉토를 해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고려장 이야기는 말로만 전해질 뿐 기록이나 고증을 통해서 밝혀진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고려장 이야기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극의 에스키모, 볼리비아의 시리오노족, 북유럽의 라프족, 아프리카의 호텐토트족,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도 노인을 유기한 고대의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고대에 이런 풍습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특히 농경문화가 정착하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계속 이동하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나이를 먹어 병이 들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사회적으로도 큰 짐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노인을 버리는 집단문화가 생겨났을 수도 있다.
이런 고려장이 있었다는 우리나라에서 고려장이 사라지게 된 몇 가지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70세가 된 노인을 아들이 지게에 지고 산중에 버리고 돌아올 때 함께 갔던 어린 자식이 그 지게를 다시 가져오기에 아버지가 “왜 지게는 가지고 오느냐”고 물으니 “아버지가 늙으면 이 지게로 지고 와서 버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크게 뉘우치고 노인을 다시 모셔다 봉양했다는 이야기이다.
또 한 사람이 늙은 아버지를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집에 숨겨놓고 봉양했는데 마침 중국에서 나라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라고 해서 온 나라가 고민에 싸였을 때 늙은 아버지의 지혜로 이 문제를 풀어 그 후 고려장 풍습이 금지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아마 이런 이야기는 인류가 문명시대에 들어와서 도덕 관념이 높아지면서 야만적인 노인 유기 풍습이 사라진 것을 말해주는 지도 모른다. 특히 동양의 불교와 공맹철학, 서양의 기독교 등이 모두 효행과 경로사상을 옹호하고 있는데 인류가 문명시대에 접어들면서 노인을 공경하는 전통이 뿌리내린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다시 노인들이 푸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과거처럼 엄격한 도덕이 지배하던 시대가 지나면서 부모와 노인에 대한 맹목적 복종과 존경이 사라지게 되었고 특히 자본주의의 특징인 실력사회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실력이 뒤떨어지는 노인의 지위가 추락하게 된 것이다. 사오정이라고 하여 40대와 50대에 은퇴하는 한국같은 사회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딱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의학의 발달로 인간 수명은 계속 길어지고 있으니 노인문제는 점점 더 큰 사회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노인이 나이를 먹어 병이 들고 치매에 걸리고 식물인간이 되어 오래동안 병석에 눕게되면 사회문제도 문제이지만 개인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고통을 받게 되는 본인은 물론이고 주위의 가족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웬만한 효자가 아니고서는 병석의 노인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현대판 고려장 사건이 보도되어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아들 3형제가 치매에 걸린 노모를 양로원에 보내놓고 양로원비를 분담해 왔는데 그 중 장남이 양로원비의 부담이 힘들어 노모를 공원에다 내다 버렸다고 한다. 노모는 얼마 뒤 4km나 떨어진 바다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한인사회도 노령화시대로 접어들었다. 한인 1세들이 은퇴연령에 이르렀고 젊은 세대에 부담을 주는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 미국사회는 한국과 또 달라서 노후를 자녀들에게 짐지울 생각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인사회 차원에서 대책이 있어야 한다.
미국에는 양로원 제도가 잘 되어 있다고 하지만 한인들에게 편한 시설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최근 한인 양로원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런 양로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한인사회에는 교회 등 많은 종교기관들이 있는데 이런 종교기관에서 한국학교를 만들듯이 모두 양로원을 만들어 운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될 것이며 ‘천국의 계단’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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