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스 김<회사원>
내가 제일 쓰기 힘들어 하는 글은 카드 쓰기다. 잘 알지 못하는 분에게 명절이나 행사 등의 일로 카드를 쓸 때마다 너무 의례적인 것 같아 정성 담긴 특별한 말 한마디를 넣으려고 고민하다 밤을 샌 적도 있다. 아는 게 있고 평소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어야 쓸 말이 좀 있을 텐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 더 이상 쓸 말이 없다. 정말 없다. 매일 만나서 또는 전화로 수다를 떠는 친구들의 생일 카드도 고민되긴 마찬가지다. 매일 이말 저말 다 하는데, 특별히 글로 써야 한다면 평소에 말로 하지 못했던 것이나 기발한 내용을 써야 한다는 고정 관념 때문일 것이다. 결국 한마디 쓴다는 게 이런 거다. ‘너랑 나랑 무슨 할 말이 더 있냐. 생일 날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살 쪄라. 그리고 같이 다이어트 다시 시작하자.’ 등 장난스럽게 넘어가기 일쑤다. 가족들에게 쓰는 카드도 애로사항이 있다. 난 아무리 카드라고 해도 이상하게 낯 간지러워서 ‘아버지, 어머니 사랑해요.’ 이런 말은 잘 못 쓴다. 어른들에겐 장난스러운 메세지도 안되고 그렇다고 ‘어머님 전상서.....기체우 일향만강 하옵시고.....’이렇게 쓸 수도 없고, 시시콜콜 감사했던 것 다 적을 수도 없고, 쓸 내용 없기는 마찬가지다. 나만 그런 건지, 학교 때 글짓기 못하던 친구들도 잘만 쓰던데 알 수가 없다.
미국에 와서 카드 진열해 놓은 것 보고, 놀라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받는 사람에 따라 그 때 그 때 명절에 따라 이미 적절한 내용이 모두 써 있어서 읽어 보고 고르면 되도록 해 놓았다. 참 편리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받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담는 카드까지 기성복처럼 고르게 만들어 놓는 상술 같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은 ‘저 카드 만드는 회사에서 메세지를 고르고 만드는 작업하는 사람은 얼마나 머리가 아플까? 그 사람은 자기 가족에게도 기존의 메세지 중에서 골라서 싸인만 하고 줄까?’ 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받았던 카드 중 좋았던 것을 떠올려 보면 꼭 문구가 기발해서, 내용이 특별해서 기억이 나는 것도 있지만,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서 받았거나, 중풍 걸린 떨리는 손으로 겨우 ‘할머니’라고 세 자만 쓴 카드, 한글 학교에서 아이들이 준 받침이 다 틀리고 삐뚤삐뚤 쓴 카드 등도 있다. 남편이랑 처음 주고 받았던 카드는 아직 서로에 대한 관심을 숨긴 채 꽤나 의례적인 문구들 뿐이었지만, 그 속에 숨겨진 서로를 향한 호감의 정도를 추측하는 탐색전의 수단이었다.
오래 전 유행가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사랑이란 말은 너무너무 흔해, 너에게만은 쓰고 싶지 않지만은, 마땅한 말이 없어 어쩔 수가 없어....’ 정말 사랑이란 말은 연인에 대한 아주아주 특별한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정말 너무너무 흔하다. 하지만 이상야릇한 그 호감과 연민, 가슴저림 등을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사랑 말고는 또 무엇이 있을까? 사랑이란 말은 아주 흔하지만 그 말을 한 사람에 따라, 듣는 사람에 따라, 말한 상황에 따라 특별하고 유일한 단어가 된다. 흔히 그리고 널리 쓰이는 말들- 너무나 관습화 되고 굳어버린 표현 같아 다른 방법을 찾아보지만 흔히 쓰이고 널리 쓰인다는 것은 그만큼 적절한 표현이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쓰는 표현이건 기발한 표현이건 그 말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단단한 알껍질을 깨고 새 생명을 세상으로 초대하는 어미새의 온기처럼, 그 메세지를 전하는 이의 따스한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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