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상 수필가
요즈음은 몸짱이니 얼짱이니 외형에만 지나치리만큼 신경 쓰는 세상이다. 특히 한인들에게 는 늙는다는 것이 형벌에 가까운 일이다. 어쩌면 산다는 게 육체뿐이라는 듯 몸에 대한 애착은 지나칠 정도다. 젊은이는 자신의 얼굴을 뜯어고치고 나이든 이들은 외적 늙음을 감추려 힘든 정성을 드린다. 사회 전체가 보여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남보다 돌출해야 받아드려지는 경쟁의식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학문만 해도 그렇다. 맹렬히 공부하는 것은 다른 친구들을 물리치고 합격하고 취직하여 더 좋은 입지조건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결국 나의 행복은 상대적으로 다른 한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공계를 기피하고 성직과 사회봉사의 길로 가려는 자녀에게 제동을 거는 것도 모두 물질적 육체적 성취에 기준을 두기 때문이다. 자업자득이랄까 정신 문화의 빈곤과 남을 배려하는 데에 인색한 사회에서 자란 세대로부터 어른 대접받기란 어려운 일이다. 교복에 까까중 머리로 어른들의 통제를 받고 자란 우리 세대들은 얼마나 어른 되기를 학수고대했던가. 그러나 어른이 되고 보니, 나이든 이들이 배척 당하는 시대가 되어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살고있는 일본여자 시오노 나나미는 잘나가던 로마가 망한 이유 중에 하나가 노인경시라고 뼈있는 지적을 했다.
원래 학문이란 공자도 퇴계도 인생 일대의 기쁜 일라 했다. 인생 최대의 즐거움인 학문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덕(德)을 밝히는 것이라 했다. 불의의 사고로 상반신만 남은 사람도 완전한 한 사람인 것처럼 우리는 육체를 빌려서 태어났을 뿐이다. 육체에 가려져 본래의 나를 잃어버린 것이며 학문을 하는 것은 본래의 나를 찾는 길이라는 것이다.
미국인들의 인생은 대부분 3등분된다. 1/3은 자라고 공부하고 살아가는 터전을 닦는 시기. 그 다음 1/3은 직장을 갖고 가정을 이루고 사회 생활하는 시기, 마지막 1/3은 남은 여생 이 기간을 커뮤니티 칼리지에 가서 그림 그리는 할머니, 목수일 배우는 할아버지들도 있다. 그들은 여행을 떠나고, 다니던 직장, 지역 사회에 자원 봉사도 한다. 자기와 그리고 이웃을 위해 사는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동양의 학문과 서양의 사회정신의 궁극은 함께 하는 삶의 모습에 있다. 나를 찾고 보면 네가 곧 나라는 공동의식의 삶에 도달된다. 더욱이 성공한 노인들은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목표를 가지고 자기 자신을 찾아내고 사회에 봉사하는 정신세계와 균형을 이루게 된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법보다 인정이 앞서기 때문에 간첩도 길을 잃으면 노인에게 길을 묻는다.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피력한 스콧 리어링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인간은 살고 있는 환경의 일부이다. 살아있는 한 이 명백한 사실을 피할 수 없다. 한 개인은 인류전체의 일부이며 그가 살고 있는 당대 사회적 자연적 환경의 일부이다. 좀더 완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을 넘어서 다른 사람 또는 이념과 목표를 향하여 부단히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매력적인 부인 헬렌은 니어링 보다 20년 연하다. 재혼한 이들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젊은 날의 뛰어난 활동보다 노년의 삶이다. 헬렌은 화려하고 유혹적인 문명생활을 포기하고 나이링과 함께 버몬트의 숲 속 바위에 기대어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겨울 농장이 얼어버리면 여행을 떠나고 강연을 하고 저술을 했다. 니어링은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의미 있고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 실천적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니어링이 가장 싫어한 것은 네가 일하고 나는 먹는다는 식의 자본주의 사회였다. 그는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자기 부부가 내년 일년 먹고 살만큼만 농사짓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하루의 시간을 생계를 위한 4시간, 지적활동 4시간, 좋은 사람들과 친교를 위한 4시간으로 나누어 실천하며 살았다. 기품있고 뛰어난 여인 헬렌은 감자밭을 가꾸는 구부정하고 팔굼치가 해진 옷을 입은 과팍한 노인 니어링을 외형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의 뛰어난 재능, 부지런함, 꺽이지 않는 이상, 청렴함, 여유로운 마음을 평생토록 사랑했다.
노년을 모범으로 산 스콧 리어링은 1983년 8월 24일 100세의 나이로 부인 헬렌을 바라보면서 행복한 모습으로 눈을 감았다. 그들이 얼짱 몸짱 재산 권력을 부러워하지 않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것들은 지나고 나면 한줌의 흙과 먼지 일뿐이었으니까. 노년을 제대로 산 사람을 만나면 가장 아름답고 농익는 가을 풍경처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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