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 휘(소설가)
밋셀. 준비 다 되었나?
네. 잠깐만 기다려요. 아빠.
무엇 빠뜨리지 말고 천천히 잘 챙 기라.
자식이 객지로 떠나가면 엄마가 알아서 준비를 해주어야 하는데. 나는 집나간 마누라가 새삼 원망스럽다. 미국이란 나라에와 살면서 늘씬한 키에 기괴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서구의 이상야릇한 남성의 힘에 그만 도취되고 말았다. 잔잔한 옹달샘 속의 물을 휘 집어주는 마력에 어디론가 흘러가 버린 여인. 지금도 많은 여자들이 옹달샘의 달콤 쌉쌀함에 쉽게 빠져들고들 있다.
밋셀이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감각의 감정이 최고 치로 예민해지는 나이 때였다.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육체의 변화. 갑자기 찾아온 집안의 일. 그런 환경 속에서 흔들림 없이 잘 자라주었다. 밋셀은 그동안 자신과의 싸움에서 금년에 자기가 원하는 대학으로 진학을 하였다. 첫 학기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간단한 옷만 가지고 기숙사로 들어갔다. 한 학기를 생활한 밋셀은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이 많다고 이 짧은 겨울 방학을 이용해 왔다. 대학에서 이십 시간이 넘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왔다. 지금 다시 덴버까지 뒤돌아가야 한다. 나의 마음은 아침부터 허전하고 쓸쓸해졌다.
꼭 오늘 가야하나?
네 아빠. 혼자 크리스마스 보내게하여 죄송해요.
아니다. 네가 이브 날 여행을 하는 것에 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빠. 오늘의 노력과 고생에 내일의 삶이 넉넉해진다고 하셨죠?
그래, 그렇지만.
아빠 저기 보세요.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렇구나. 다들 어디로 가는지.
버스 터미널 안에는 늦은 시간에도 도착하고 떠나는 사람들로 놀랍도록 붐비고 있다. 출구 문 위엔 각 도착지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이 줄이 덴버 갑니까?
네.
밋셀. 가방을 여기 놓고 서 있자.
나는 한 중년의 백인 여자 뒤에 섰다. 우리 앞으로 팔 명 정도의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옆 로스앤젤레스 가는 줄엔 내 뒤까지 사람들이 서있었다. 저쪽 줄은 시애틀. 그 줄엔 더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나는 줄 서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훑어본다. 젊은 사람. 중년의 남녀. 나이 많은 노부부도 있었다. 저 노인은 아들집을 찾아가는 길인지, 딸집을 가는지. 젊음이 있을 때는 혼자서 살아 갈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 옆에 말동무가 필요하다고들 하였다. 그 옆 사람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눈을 감고 서 있었다. 가방 옆에 앉아서 졸고있는 여인. 마중 나온 사람과 아직도 다 못한 말을 하고있는 사람. 남겨 두고 가는 것이 아쉬워 그런지 떠나 보내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진 두 손을 꼭 잡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 옆줄 두 사람 앞에 한 젊은 동양인 남자 옆에 같은 피부를 가진 여자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고 있었다. 결혼한 신혼부부, 아직 뜨거움을 나눠야할 사이에 무슨 일로 저렇게 떨어져야 할까.
일시적인 떠남일까. 다시 만나기 어려운 먼 곳으로 가는 것일까. 남자는 여자를 위로하는지 등을 토닥거리면서 무어라 말을 해준다. 그 뒤에 서 있는 한 중년의 흑인여자. 그 옆에 서있는 멕시칸 남자의 품에 안겨 떨어 질줄 모르고 있었다. 부부는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아내가 있는 남자의 사랑을 독점하지 못하고 멀리 떠나가는 여인. 그 정이 아쉬워 조금이라도 더 간직하고 싶은 뜨거운 마음이겠지.
버스가 한 대 들어왔다. 출구로 사람들이 나온다. 먼 여행에서 지친 몸들이지만 그들의 표정은 밝고 편안해 보인다. 그리운 연인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가족들과 상봉하는 그 순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기에 저들의 얼굴엔 미소가 있었다. 한 중년의 남자는 자기 앞으로 달려온 여인을 안고 만남의 기쁨을 길게 간직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만남은 여러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악수만 하는 사람. 서로 포옹만 하는 사람. 서로 두 뺨과 입술에 입을 맞추는 사람, 고개만 끄덕하는 사람. 각 나라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관습을 한 눈에 다 볼 수 있는 그런 장소였다. 지금 줄 서있는 사람들이 떠나 갈 때는 어떤 모습들이 일어날까. 떠나가는 사람이나 남아있는 자들의 가슴엔 쓸쓸함과 외로움이 겹쳐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릴 것이다.
우리가 서있는 출구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은 가방을 들고 마중 나온 사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들 있었다.
조심해라. 도착하면 꼭 전화 해야한다.
네. 아빠도 건강 조심하세요.
밋셀은 들고있던 가방을 놓으면서 나의 가슴으로 안겨들었다.
아빠.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나의 볼에 키스를 하곤 가방을 집는다.
그래 너도 버스 안에서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바란다.
밋셀은 손을 흔들어 보여 주고는 출구 밖으로 나갔다. 나는 유리벽 저쪽에서 밋셀이 차에 올라 자리에 앉는 것을 바라본다. 저 아이도 이제 다 커구나. 자기가 할 일을 찾아 하는 밋셀이 대견스럽다. 엄마가 곁에 있었으면 더 밝게 성장했을 것인 떼. 냉정한 사람. 버스는 서서히 뒤로 물러간다. 밋셀이 버스 안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버스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버스가 사라진 어둠 속을 멍하니 바라본다. 대합실은 텅 비었다. 그 많던 사람들도 떠나갔고 보낸 사람들은 자기들의 안식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도 대합실을 가로 질어 걷는다.
밋셀, 아빠.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섰다. 누가 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행용 큰 가방 옆에 한 여인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순간 아무런 말도 어떤 행동도하지 못하고 석고처럼 서 있었다.
밋셀. 가는 것 보았어요. 벌써 숙녀가 다 되었네요.
나는 두 눈을 감고 말았다. 육 년 전 종이쪽지 한 장 남기고 더나갔던 그 사람. 지금 와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잘못을 용서받고 싶어 왔어요. 여자의 일시적인 욕망에 잠깐 눈이 어두웠던 일 용서 해 줘요.
나의 귀에는 여자의 말도 들리지 않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흘러간 물이 다시 본 위치로 올 수 있을까? 그냥 돌아가자. 나는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일단 집으로 가요.
터미널. 여행은 돌아오기 위한 떠남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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