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령의 퓨전수필>
우리 부모의 세대는 우리보다 불행했을 것이다. 대동아 전쟁, 6.25 등 전쟁을 몇 번씩 겪으면서 그 때마다 풍비박산 나는 삶을 헝겊 깁듯이 끌어 모아 살았을 것이다. 그들 세대의 끝 부분에서 태어났으므로 우리들에게도 그 꼬리의 음울한 그림자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유년의 기억 속에 나의 아버지는 멋쟁이셨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로는 남다른 데가 있는 분이셨다. 철 따라 내게 예쁜 옷을 맞추어 주시고 가죽구두를 신겨 나들이를 하시곤 하셨다. 까만 보자기를 씌운 구식 카메라 앞에서 사진 많이도 찍게 하셨다. 명동과 화신 근처에서 아버지와 둘이서 먹던 아이스크림과 샤벳, 높은 의자에 매달려 달랑거리던 내 다리의 기분 좋은 느낌, 그 뿐이 아니다. 사업자금이 없어 찾아온 이에게 차용증 한 장 받지 않으시고 집문서를 내주셨다. “자네가 가져다 요긴하게 쓸 수 있다면 가져가게나. 어차피 서랍 속에 있을 거.” 하시면서 형제도 친척도 아닌 그에게 가족과 의논 한마디 없이 내어주셨던걸 내가 기억하고 있다. 우리들에게 주시는 봉투보다 이웃집에 돌리라고 건네주시던 봉투가 언제나 몇 배는 컸었다. 과자든 과일이든.
돈 꾸어주고 받은 문서들을 태우면서 그 연기를 보고 즐거워하며 누군가 천만금을 준다면 다 태워 눈처럼 뿌리고 한 푼만 남겼다가 친구와 밤새워 술을 마셔보겠다던 17세기 중국의 문장가 김성탄과 꼭 닮은 아버지셨다. 엄마 또한 그러하셨다. 부창부수(夫唱婦隨)였던 셈이다. 좋은 유전 같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남편도 다행히 그런 사람이어서 우리는 죽이 잘 맞는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그가 가진 재물로 사람을 저울질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재물을 위해서는 염치도 버리고 인륜도 버린다. 우리 동포사회에서도 형제를 배반하거나 친구를 배신하는 등 어지간한 패륜도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이런 것들을 못 본체 눈감아버리는 분위기이다. 수단방법이야 어쨌든 많이 가진 자가 이긴 걸로 간주하는 도덕불감증 말이다.
저간 동포사회를 들여다보면 여자들의 욕심이 남자들을 앞지르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 벗어난 여권신장의 과도기적 현상이라 할 수 있겠지만 도를 넘을 때는 아주 추한 모습이 되고 있다. 10년만에 찾아온 남편의 친구에게 술대접을 하기 위해 하나뿐인 자신의 비녀를 팔았던 소동파의 아내 같은 여자들이 이제는 없는 것일까? 우리 아버지 같은 남자는 없는 것일까? 그런데 이런 흙탕물 속에서 깨끗한 물줄기로 세상을 살아보겠다고 모인 이들이 있다는 소릴 들었다. 통쾌했다. 이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남아있다는 게 통쾌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말만 들어도 행복했다. 워싱턴에 낭만파(浪漫派)클럽이 자생했다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나는 그들의 행로를 지켜보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을 거라며 내심 흥분했다. 잘 되어가는 듯해서 부럽기도 했다. 그 모임이 깨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유감이다.
고국에 낭만파클럽이 생긴 건 2년 전 여름이었다. 고 조병화 시인, 차범석 교수, 영화인 허참, 삼성문화재단 손기성 고문, 서울미대 최만린 교수 등 문화예술계, 학계, 기업계의 인사들로부터 평범한 시민들까지 뭉친 것이었다. 회장이나 대표 없이. 애초에 그들은 20가지의 낭만적 지향점을 설정했다. 요즈음시대와는 그다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다. 예를 들면 <따지지 않는다> <차라리 내가 손해 본다> <조건 없이 서로 돕는다> <문화 예술 스포츠를 사랑한다> <멋도 부릴 줄 안다> <식도락을 즐긴다> <지갑을 보고 친구를 삼지 않는다> 등등이었던 것 같다. 모르긴 해도 이들 워싱턴의 낭만파클럽은 첫 번째 지향점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실 따지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것에 형통하는 덕목이 될 것 같다. 넥타이 풀어 던지고 허리띠 느슨하게 매고 먹고 마시며 넋두리 좀 늘어놓다 보면 악의 없는 실수도 생기기 십상이다. 이런 실수 세상에선 용납하지 않아도 낭만파클럽 안에서는 무사통과되어야 하리라. 그들이 만나 다시 워싱턴에 낭만파클럽을 만들어 주위에 부러움을 사고 이런 모임이 유행처럼 번져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살맛날 것 같다. 날카롭고 삭막하고 조금도 참지 못하고 경제 제일주의로 내달으며 개인주의만 팽배한 세상을 낭만파정신으로 인간미 넘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야 마다할 사람 그 누구일까?
(시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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