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을 떠나 먼 이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적이지 않은 다른 체험 속에서 살고 있다. 혈육과 친구, 오랫동안 익숙한 것에서의 단절은 자신의 고독을 더욱 절실한 그리움으로 느끼게 한다. 내가 이곳으로 이민왔던 20여년 전에는 전화료가 비싸서 지금 같이 쉽게 할수 없었다. 편지 쓰는 일이 나의 유일한 낙이었고 답장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냈다. 우체부가 오면 내 시선은 우체부의 뒷 모습을 쫓곤 했다.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친정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 서울 갈 형편이 못되는 것을 아는 오빠는 장례식을 치루고 나서,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위로의 편지를 보내왔다. 어머니 병환이 심상치 않음을 예상은 했지만 어머니가 쉽게 우리곁을 떠나지 않을 것 이라고 믿었었다.
내가 떠나 오는날, 내 손을 꼭 잡으시고 1년만 더 살고 싶다고 하시던 어머니의 음성이 귀전을 윙윙 울릴뿐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많이 울었다. 자식의 도리를 다 할수 없는 아픔을 장문의 편지로 써 보냈다. 동생의 편지는 눈물로 얼룩졌고 동네분들도 모두 울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오빠의 편지를 받기전, 이미 난 어머니의 부고를 알고 있었다. 사촌인 정자언니가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정자언니에겐 막내이모가 되시는 우리 어머니,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신 큰 이모 대신 마음을 의지했던 탓으로 언니의 충격도 큰 듯 했다.
“외가가 모두 단명하다고들 말하나 거기에 비해 나는 장수하는 것 같다”고 어머니가 늘 말씀하셨다며 “70도 못사시면서-” 정자언니의 절절한 사연이 빛바랜체 편지함 속에 들어있다.
몇 년전, 2주 동안의 일정으로 고국을 방문했다. 형부 직장 때문에 지방에 머물고 있는 언니를 만나 하룻밤 회포를 풀고 기약없이 헤어졌다. 그후 언니에게서 소포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풀어보니 그 속에 얇은 한지에 싸인 예쁜 누비 이불과 하늘색 봉투속에 짧은 편지가 들어 있었다.
-복희에게-
오랜만에 만나고 보니 너무 반갑고 기뻤다. 객지 생활에 고생도 많았겠지만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아무것도 해준 것 없이 너를 떠나 보내고 나니 마음에 걸려 그냥 있을수가 없었다. 이 이불은 충무 이불로 며느리가 내게 준 예단인데 침대에 깔던지 덮던지 네 취향대로 써라. 세탁기에 넣고 빨아도 변질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에게는 귀한 물건이니 예쁘게 덮고 기뻐해 주기 바란다. 또 연락하고 좋은 글 쓰거던 보내거라. 넌 대견하고 똑똑하고 예쁜 동생이다. 행복하기 바라고 네 남편에게도 안부 전해라. 서울에서 정자가 1997년. 5월. 6일
정자 언니의 편지를 받을 때 마다 난 즐겁다. 시간이 없어 간단하게 메모처럼 쓴 글속에도 끈끈한 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니는 늘 주부의 얼굴은 집안의 태양 같아서 얼굴이 일그러지면 집안에 어둡고 밝게 웃으면 집안이 환해 보인다고 했다. 속상한 일이 있더라도 항상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그래서 화가 날 때 언니를 생각하며 웃은적이 있다. 법무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던 형부는 지방 군수를 끝으로 정년 퇴직했다. 오랜 세월 공직에 있게 된 것은 오직 바른 길만을 갈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준 언니의 지혜가 새삼 크게 느껴진다.
항상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는 형부의 직장 때문에 두집 살림이 불가피 했을텐데도 언니는 잘 견디셨다. 형부와 편지를 주고 받다보니 세월이 그냥 흐르더라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 역시 편지를 많이 쓴 것으로 기억한다. 그 중에 초등학교 4학년 방학때 선생님께 쓴 편지 말미에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해서 1년 내내 고개를 못들었던 창피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때로는 간단 명료하고 단도직입 적인 메모 형식의 편지일 지라도 그 속에 보낸 사람의 마음이 있고 투박한 정이 깃들어 있다. 눈에 익은 필체를 보면 그 순간 나를 생각했을 상대방을 배려하게 될 것이다.
요즈음은 편지보다 전화나 이메일을 많이 사용한다. 번호만 누르면 싼 가격으로 그리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아주 가깝게 들을수 있고 스크린에 떠오르는 얼굴을 볼수도 있다. 그러나 편지를 받아서 읽을 때 편지지에 정성 들여 찍어쓴 글쓴이의 여운을 느낄수 없으니 기다리는 여백의 시간이 필요한 편지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삶의 정서라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오해로 불편한 사이가 된 친구나 이웃이 있다면 지금 당장 편지를 띄우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서운했던 마음이 눈녹듯 사라질 것이다.
김복희
▲한국 수필문학 등단
▲재미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한국 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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