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 낫한 스님(오른쪽)이 설법 청강과 수행을 위해 디어파크 수련원에 모여든 한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4월 3일 윌셔이벨극장서‘평화의 집회’갖는 틱 낫한 스님
‘화’는 참는 것이 아니라 달래는 것
행복·평화 있으면 몸도 젊어져
한인사회 승가·공동체설립 세우길
“Enjoy the Present Moment…. 매 순간 집중해 깊이 음미해 보세요. 일상의 불안과 조급함으로부터 벗어나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LA 남동부 에스콘디도 디어파크 수도원에서 겨울 수련에 한창인 틱 낫한 스님은 처음 기자를 맞이하는 자세부터 말문을 떼는 속도, 차를 마시는 움직임까지 모두 한결같이 슬로템포다. 답답함 없는 느림, 좌충우돌 쏟아지는 질문에도 아랑곳없는, 봄바람에 잔잔히 흔들리며 따뜻한 햇살 즐기는 들꽃 같은 느낌이랄까. 스님은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힘(Power)과 함께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적 자유가 아닌 후회, 두려움, 불안, 과거와 미래로부터의 자유 말이다. 또 이 힘과 자유를 키우는 방법으로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을 연습하라 한다. 먹을 때나 걸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포옹할 때, 운전할 때, 가사를 돌볼 때도 그 행동 하나 하나에 집중하여 깊이 음미하는 것. 온 정성을 기울여 온전히 느껴보라는 것이다. “전화벨이 울리면 눈을 감고 하나, 둘, 셋, 심호흡을 해 보십시오. 이 순간의 평안을 충분히 감지하며, 저 전화기 너머 무슨 말이 들려와도 화내지 않을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주는 현재의 바로 이 지점에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행복해도 된다고 조용히 일러주는 틱 낫한 스님이 다음 달 3일 한인들을 위해 윌셔 이벨극장에서 본보 특별후원으로 평화의 집회를 연다. 행사를 앞두고 몇 가지 문답을 나눠봤다.
틱 낫한 스님은 매사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듯 차분한 움직임이다.
▷지난 해 한국을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두 번째 방문이었습니다. 95년 방문 때에 비해 또 놀랍게 변했더군요. 서울은 겉모습이 뉴욕이나 유럽의 대도시와 차이가 없지만 밤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훨씬 안전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사람들이 매우 부지런하고 매사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았지요.
다만…(생각에 잠긴 듯 쉼), 보다 긴장을 풀고 평화를 맛보는 연습을 통해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회복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무분별한 소비문화에 대한 대책과 정체성 회복이 매우 시급합니다.
▷한반도의 평화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며, 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95년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의 대표적인 개·천·불 종교 지도자가 한데 모여 평화에 대해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서 처음 있는 일이라 하더군요. 왜일까요.
또 DMZ와 판문점도 방문했습니다. 무장한 군인들을 만났지요. 거기엔 ‘두려움’(Fear)이 있었습니다. 북한이 (주민의) 가난과 굶주림을 등한시한 채 무기를 개발하는 이유는 바로 이 두려움 때문입니다. 남과 북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이자 가족입니다. 어떻게 서로 전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작은 조직에서부터 남과 북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자비로운 대화로 평화를, 또 화해와 통일을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종교를 가진 자들이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로 각 방면의 화해에 앞장서야 합니다. 한국은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자연스레 어우러진 아름다운 복합문화를 가진 나라입니다. 이를 잘 지켜나가며 조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 이 수도원엔 불자만 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교와 타종교 신자, 심지어 성직자들도 참석해 행복과 평화를 위한 수행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개신교 지도자 가운데 마틴 루터 킹 목사나 칼빈 목사는 얼마나 열린 마음을 가진 분입니까. 우리는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제 자신도 이 곳에서 크리스천 영성 기도서 ‘베네딕트 계율’(Rules of Benedict)을 교과서 삼아 공부하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한국 불교전법 40주년을 맞고 있는 미주 한인사회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는지요.
▶아직 미주 한인들을 많이 만나볼 기회는 없었습니다만 한국사회와 많은 부분이 연결돼 있을 거라 추측됩니다. 한국선 아름다운 사찰과 불교문화가 관광을 위한 관리에 그치고 있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미주사회에 한국 불교를 활성화하려면 단순히 사원을 세우기 보다 세대와 종교를 넘어 넓게 포용할 수 있는 승려 교육기관, 즉 일반 신도들도 가르침을 받으며 수행에 정진할 수 있는 승가와 공동체의 설립이 우선돼야 할 것입니다.
▷미주 한인사회에 승가나 공동체 설립 계획이 있습니까.
▶한인 여러분들이 세워야지요. 이곳 디어파크 수련원엔 지금 세계의 젊은이들이 매일의 삶에서 평상심을 찾고 화해를 꾀하는 ‘마인드풀니스’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한인 젊은 세대에게도 영어와 한국어로 부처님의 뜻을 교육할 수 있는 승가가 있어야 세대에 걸쳐 문제해결에 접근하는 살아있는 가르침이 전달됩니다. 진정한 문제해결이 없는 사원은 제 아무리 웅장하고 멋있다 한들 한낱 관광지로 남게 될 뿐이지요.
▷저서 ‘화’의 한국어 번역서가 한국과 미주 한인 서가의 베스트셀러로 올라 있습니다. 스님은 화를 안 내십니까.
▶이전엔 주변이나 제자들의 삶에서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게 될 때 안에서 뭔가 치밀어 올라와 끝내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경험하곤 했습니다(웃음). 하지만 화는 울고 있는 아기처럼 보듬고 달래야 합니다. 화가 났을 때는 남을 탓하거나 스스로 자책하기보다는 먼저 내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억누르고 참는 것이 아니라 달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면 화가 안에서 뭉쳐있지도, 겉으로 나와 남과 나를 해치지도 않게 됩니다. (잠시 쉼)최근엔 화를 낸 기억이 없군요.
▷집회를 앞두고 한인사회에 전하고 싶은 말은.
▶화합으로 평화를 누리십시오. 내 안의 평화, 가정의 평화 그리고 사회의 평화는 서로 이해하고 화합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습니다.
남편이 불교신자고 부인이 크리스천이면 남편은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함께 예배를 드려야지요. 또 보름달이 뜨면 부부가 함께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십시오. 서로 다른 두 종교가 있는 가정은 두 개의 뿌리로 보다 많은 수분과 자양분을 빨아들일 수 있어 더욱 건강하고 윤기 흐르는 나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불안과 조급함을 벗고, 밝고 긍정적인 면을 보십시오. 그리고 발전을 위해 화해를 꾀하십시오. 사회의 평화는 개인과 가정의 평화에서 비롯됩니다. 행복하고 평화로우면 마음 뿐 아니라 몸도 젊어집니다.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됩니까.
▶일흔 일곱 살밖에(!) 안됐습니다(I am 77 years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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