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보다는 능력’- 요즘 한국의 젊은 남성들이 바라는 여성상이다. ‘용모는 떨어져도 돈 많고 능력 있는 여자’가 ‘돈이나 능력은 없지만 얼굴 예쁜 여자’ 보다 단연 인기라고 한다. 최근 인터넷 여론조사의 결과이다.
그런가 하면 신부감의 조건으로 ‘얼굴’이나 ‘능력’은 우선 순위에서 한참 밀리는 경우도 있다. 재벌 가문 등 상류층 가정이 며느리를 고를 때이다.
지난달 말 이화여대 대학원의 한 학생이 제출한 ‘상류층 결혼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 가정이 며느리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집안과 성격이다. 조사는 최근 2년간 자녀를 결혼시켰거나 조만간 결혼시킬 예정인 상류층 주부 200명을 대상으로 했는데 집안·성격을 꼽은 응답이 88%로 압도적이었다.
여성의 ‘능력’에 해당될 ‘맞벌이 가능성·직업’을 꼽은 사람은 2.5%에 불과했다니 거의 고려의 대상이 안 된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집안과 성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소위 상류층 ‘집안’에 얽힐 수 있는 정략적 이해를 접어두고 본다면, 이들 요소는 새 사람을 가장 마찰 없이 자기 집안 사람으로 만드는 조건이라고 본다. 일단 ‘출신성분’이 비슷해야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그 다음 성격이 좋아야 집안 사람들과 잘 융화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연말 화제가 되었던 탤런트 고현정씨의 이혼은 말하자면 ‘집안’이라는 최우선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데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 조건으로 보자면 ‘얼굴’‘능력’ 모두 최고 점수이지만 집안 배경 없이 비집고 들어간 재벌가는 꿈의 궁전이 아니라 바늘방석이었던 것 같다. 집안, 학연으로 긴밀하게 얽혀 있는 그 집안 상류층 여성들 속에서 고씨는 어쩔 수 없는 ‘미운 오리새끼’였던 것으로 소문이 나돌았었다.
한국 기성 정치권의 ‘미운 오리새끼’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결국 직무정지를 당했다. 12일 열린 우리당 의원들이 ‘의회 쿠데타’라며 격렬하게 항의하는 한편으로 한나라당, 민주당, 그리고 자민당 등 야당 의원들은 오랜만에 단합된 모습으로 질서정연하고 신속하게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 광경을 지켜본 미국 블룸버그 통신의 한 칼럼니스트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국회의원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것도 이상하고 노대통령이 단순한 사과를 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고 그는 말했다.
특정당 지지의사 표명이 “대통령을 탄핵할 만큼 중대한 사안인가”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상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탄핵안에 찬성한 193명의 의원들 역시 그 자신을 노대통령의 입장에 놓고 봐도 여전히 탄핵을 수긍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이성이 아닌 감정의 대립이 정국을 극단적 파국으로 몰고 간 결과이다. 총선을 앞두고 뭔가 강공법을 써야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물론 있었겠지만, 그 이전에 이렇게까지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든 요인은 배경과 성격이라고 본다.
대학 동창 중에 정치하는 사람이 있다. 소장파여서 선거자금이 부족해 늘 전전긍긍이지만 그래도 버티는 것은 소위 일류학교 출신인 덕분이라고 그는 말했다. “굳이 부탁을 안 해도 선거에 나간다고 하면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회에서 알아서 지원을 해준다”는 것이다.
학벌, 집안 어느 쪽으로도 배경이 없는 서민출신 노 대통령은 비빌 언덕 하나 없는 외로움, 서러움, 억울함이 많았을 것이다. ‘탄핵’운운이 1년전 취임 초반부터 있었다는 것이 좋은 예이다.
하지만 코미디처럼 비현실적으로 들리던 ‘탄핵’을 현실로 만드는 데는 그의 성격이 한몫을 했다. 미국 통신사 기자가 이해 못할 만큼 그 단순한 사과를 하지 않는 꿋꿋함, 우직함, 혹은 고집불통이 사사건건 대치의 강도를 높여왔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장점은 강한 신념과 불굴의 의지, 앞만 보는 추진력이다. 반면 유연성과 포용력이 부족한 흠이 있다. 자기 정의가 너무 강해서 매사가 정면 대결이다. 지난 1년의 숱한 대결이 탄핵 가결로 일단락 났다. 정치권은 이성을 잃었다. 이제는 국민들이 말할 때라고 본다.
권정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