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제라드 신부가 한인 신도들과 함께 아이리시 맥주를 마시며 고향에 관한 추억담을 나누고 있다. 그는 “한국인과 이일랜드인은 기질이나 가치관등에 있어 너무나 비슷하다”고 말한다.
“습관·정서 같으니 좋은건 당연”
오는 17일은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 더 이상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가 아일랜드 인들만의 축제는 아니다. 3월초만 되면 벌써부터 마켓에는 초록색 맥주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17일로 다가올 빅 데이를 예고한다.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를 맞은 뉴욕, 보스턴, LA 등 대도시에는 대규모 퍼레이드가 펼쳐져 아름다운 초록의 나라와 위대한 아일랜드인들의 후예들을 기억하게 한다.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를 앞두고 헤아려보니 한인들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아일랜드 사제들이 제법 된다. 몇 해 전 타계한 그레고리 성당의 차갈로 신부도 그렇고 밸리 성당의 손 제라드 신부, 로랜 하이츠 성당의 노엘 라이언 신부, 웨스트민스터 성당의 폴 브래들리 신부, 샌디에고 성당의 프랭크 매나이언 신부가 모두 한인 성당에서 사목하고 있는 아일랜드 계의 사제들.
17일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는…
17일은 성 패트릭 축일 (St. Patrick’s Day). 성 패트릭은 뿌리 깊은 켈트족 고유의 토속신앙을 갖고 있던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샴록 잎으로 성부, 성자, 성신이 삼위일체임을 쉽게 비유해 가르침으로써 93퍼센트가 넘는 국민들을 가톨릭 교도로 만든 아일랜드의 수호 성인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오면서 아일랜드 최고의 명절,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도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왔다.
한국어로 미사를 집전하고 말씀을 전파하며 점심 시간 교우들과 함께 김치, 된장국을 나누는 아일랜드 신부들은 피부와 눈, 머리 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시골서 올라오신 친척 어른들만큼 정겨운 이미지로 다가온다.
밸리 성당에서 시무하고 있는 손 제라드 신부. 한국, 한국인들과 얽힌 그의 인연은 196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은 1969년의 여름, 그는 낯설기만 한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 땅에 도착했다. 영어와 전혀 체계가 다른 한국어를 습득해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지만 언어 장벽은 한국인들과 친구가 되어 가며 자연스레 사라져갔다.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를 앞두고 손 신부는 바쁜 일정 가운데 짬을 내 교우 몇 명을 자신의 방으로 초대해 함께 맥주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술자리를 좋아하는 것은 아일랜드인이나 한국인이나 꼭 같은 것 같아요.” 그의 말에 교우들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일랜드 인이라면 동네에 단골 펍 하나쯤은 갖고 있다는 표현이 있지만 등 푸른 시절 한국으로 건너와 사목 활동을 펼쳤던 손 신부의 경우 단골 펍은 고사하고 첫 맥주(First Pint)도 기네스가 아닌 OB 맥주였다고 하니 흥미롭다.
손 제라드 신부는 아일랜드와 한국이 자연, 역사, 문화, 사람들의 기질 등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기원 전 7천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한반도에 외적의 공격이 멈추지 않았던 것처럼 아일랜드 역시 바이킹 족과 노르만족 등 주변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온 수난의 역사가 그렇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일본에 의해 식민화 된 것처럼 아일랜드는 이웃 나라 영국의 통치하에 들어가 종교 탄압과 압박에 시달렸었다. 서글픔 깃든 커다란 눈의 아일랜드인들은 한국인들의 한에 멍든 가슴을 자연스럽게 헤아릴 수 있는 정서를 지녔다.
아일랜드의 오염되지 않은 초록의 대자연은 삼천리 화려강산을 쏙 빼닮았다. 손 신부가 처음 부임했을 때만 하더라도 한국은 ‘보릿고개’라는 것이 있을 만큼 가난한 나라. 아일랜드 역시 1840년대 말 감자 농사의 실패로 심각한 기근이 발생해 백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었다. 새로운 세계로의 끊임없는 이민행렬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때부터. 가난한 날의 행복을 이야기 하며 감상에 젖는 것 역시 아일랜드인과 한국인이 갖는 공통점이다.
잔치 때면 의레 벌어지는 노래판도 그렇다. 아일랜드인들 역시 노래와 춤에 관해서라면 한 풍류 하는 사람들. 술 한 잔이 들어가면 목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는 한국인들을 손 신부는 고향 사람들만큼 잘 이해할 수 있다. 교우들의 집에서 잔치가 열리고 마이크가 그 앞에 도착하면 ‘짝사랑’, ‘이별’, ‘꽃반지 끼고’와 같은 노래들을 부른다. 영어로 ‘데니 보이’나 부르겠지 짐작했던 사람들은 그의 한국어 노래 실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뜨거운 교육열과 지나칠 정도의 자녀 사랑, 가족과 전통의 존중, 그리고 성격 급한 것까지 어쩌면 그렇게 두 나라 국민들이 꼭 같을까. 반면에 순박하고 친절하며 유머 감각이 뛰어난 것도 비슷하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설명하기 위해 성 패트릭이 이용했던 샴록 이파리를 보며 그는 뭐든지 삼세판을 해야 속이 후련한 한국인들과의 오랜 인연의 끈을 생각한다.
20대 처음 부임하면서부터 한국음식은 그의 입에 착착 와 달라붙었다. 불고기, 김치 찌개도 좋지만 그가 시무했던 강원도 철원 지방의 가난한 민초들의 음식은 아일랜드 서민들의 음식과 유사한 점이 많아 가끔씩 몸살이 날 만큼 그리워진다.
얼마 전 그는 예순 살 생일을 맞았다. 한복을 입고 환갑 상을 받는 것이 못내 쑥스러웠지만 교우들은 막무가내였다. 피붙이 하나 없는 그에게는 한국인 교우들이 바로 아들딸이요 손자손녀들.
비록 겉으로 드러내고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한 마디 툭 던지는 말, 불쑥 건네는 떡 한 조각에 숨겨진 한국인들의 끈끈한 사랑을 그는 이제 헤아릴 수 있다.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는 아일랜드의 국민 축제와 같은 날. 어린 시절 아일랜드인들에게 유괴당했던 패트릭 소년은 고향으로의 탈출에 성공하지만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가 대대적인 선교활동을 펼쳐 아일랜드인들로부터 가장 존경 받는 성인이 되었다.
그를 기억하는 종교적 축일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는 이제 아일랜드인들과 그들의 후예는 물론 전 세계가 함께 축하하는 날. 그가 어렸을 때 고향에서는 친척들이 모여 먹고 마시고 즐기며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를 축하했다고 한다.
아일랜드 전역에서 대대적으로 펼쳐지는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아버지 등에 올라타 고개를 높이 빼내던 어린 시절을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정겨운 한국인 교우들과 보낸 시간을 그는 고향에서 가족들과 축하한 세인트 페트릭스 데이 축일만큼 따뜻하게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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