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ture of Freedom
파리드 자카리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동의어로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는 대체로 궤를 같이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양자의 확대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 이 문제를 가장 날카롭게 다룬 책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파리드 자카리아 작 ‘자유의 미래’(The Future of Freedom)을 소개한다.
자유와 민주주의 항상 일치하지 않아
이라크 민주화 여건 없어 낙관 힘들어
미 헌법 소수 보호 위한 비민주 요소
“우리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 100년간 세계를 지배한 가장 으뜸가는 조류는 민주주의의 흥기다. 1900년에는 모든 국민이 투표해 정부를 선출한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 국가의 62%인 119개국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저자는 적고 있다.
현재 민주주의에 필적할 정치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와 같은 흉악한 독재자도 엉터리 선거를 하며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런 자들까지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칭송한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정치 제도간 경쟁에서 완전한 승자로 자리를 굳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했는데 인종차별주의자와 파시스트, 분리주의자들이 선출됐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유고슬라비아 내전 중재에 나섰던 리처드 홀브루크는 물은 적이 있다. 티토 독재 하에 평화롭게 지내던 유고는 민주화된 후 나라는 갈기갈기 찢기고 인종 간 학살과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옐친이 탱크 위에 올라서 반동 쿠데타를 진압하고 의회 민주주의의 승리를 쟁취했을 때 러시아 국민은 물론 세계가 환호했었다. 러시아는 지금도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들은 더 이상 민주주의에 찬사를 보내지도 않 는다.
올해 대통령 선거가 있지만 국민들은 무관심하다. 푸틴의 재선이 확실시될 뿐 아니라 이렇다 할 야당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푸틴을 종신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법안까지 의회에 상정된 판이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뽑힌 의원들이 합법적으로 법을 만들어 그를 사실상의 독재자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이를 과연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그 와중에 언론의 자유는 말살 당하고 체첸 침략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인종을 말살하고 전쟁을 일삼은 것은 그가 처음은 아니다. 1933년 독일 국민은 선거를 통해 히틀러를 지도자로 선택했다. 히틀러는 대표작 ‘나의 투쟁’에서 자신이 선출되면 어떤 이를 저지르리라 것을 숨기지 않고 밝혔다. 그럼에도 독일 국민은 그에게 권력을 맡긴 것이다.
서양의 역사를 보면 자유와 민주주의가 반드시 발걸음을 같이 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서양에서 자유가 싹튼 시기를 서기 324년으로 잡고 있다. 이때 콘스탄틴 로마 황제는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겼다. 그러면서 다른 주요 인사들은 모두 데려갔으나 로마의 주교만은 남겨 두고 갔다. 이것이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서양 교회의 시작이다. 그 후 교회는 사상 처음으로 공권력에 맞서 싸우는 독립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중세의 봉건제도 왕과 신하의 관계를 일방적인 명령과 복종이 아니라 서비스와 봉토를 교환하는 계약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왕권을 제한하는데 성공했다.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마그나 카르타는 사실은 민주주의와는 무관한 봉건 문서다. 그러나 교회가 그랬듯이 이 또한 권력의 전횡을 봉쇄함으로써 훗날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는 길을 열 었다.
교회나 봉건제보다 서양의 자유 증진에 기여한 것은 영국이 시작한 자본주의와 자본주의가 탄생시킨 부르주와다. 상권과 금융권을 쥐고 있던 이들은 왕과 귀족이 독점하고 있던 권력을 견제함으로써 18세기 영국을 당시까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로 만들었다. 유럽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었던 볼테르와 몽테스키외는 영국이야말로 유럽 최고의 선진국임을 칭송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영국을 통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부를 수 있는 지는 의문이다. 전체 영국 국민 중 2%만이 투표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과 함께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평가받던 미국도 마찬가지다. 1824년 투표권이 있던 미국인은 5%에 불과했다.
투표권과 자유가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는 현대에도 있다.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되기 직전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로 참정권이 제한돼 있었지만 시민의 자유, 특히 경제적 자유도라는 측면에서는 세계 1위를 고수 했다.
이런 예들은 현재 미국이 당면한 초미의 과제인 이라크 민주화와 관련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현재 이라크는 임시 정부 지도자들이 새 헌법을 채택하고 6월 정권을 인수받아 민주화 실험을 앞두고 있다. 이렇게 되면 아랍 최초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돼 자유가 꽃피고 경제가 부흥할 것이란 기대감에 많은 사람들은 싸여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이런 낙관적 전망에 회의적이다. 위의 숱한 예가 보여주듯이 민주주의만으로는 자유와 인권, 경제적 번영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성공을 거두려면 권력에서 독립한 종교 기관, 법치주의와 사법부의 독립, 분별 있는 유권자 역할을 해낼 중산층 등 여러 조건이 구비돼야 하는 데 현재 이라크는 이런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 이다.
또 민주주의를 오래 했다고 반드시 정치가 발전했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민주화의 진행이 나라를 분열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로 저자는 자신의 고향인 인도를 들고 있다. 인도는 흔히 ‘가장 인구가 많은 민주주의 국가’로 불린다. 인구 10억 넘는 인도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과연 경제적 후진국답지 않게 피 흘리지 않고 집권자를 가는 민주주의를 해왔다.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가 총리 자리에서 쫓겨나 감옥에 가는가 하면 선거를 통해 무혈 재집권에 성공하는 등 정치만은 선진국다운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이런 외관상의 화려함만 보고 인도를 칭찬하는 것은 수박 겉 핥기 식 관찰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지난 수십 년 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집권층 내부의 부패와 인종 갈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으며 정치 지도자들은 대중의 종교적 편견을 바로 잡기는커녕 이를 부추겨 표를 얻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 민주주의 국가 중 가장 비민주적인 헌법을 갖고 있는 나라의 하나로 미국을 든다. 인구 3,000만이 넘는 캘리포니아나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네바다가 똑같이 2명의 상원의원을 워싱턴에 보내고 있다. 미국 법의 최종적 심판자는 국민이 뽑지도 않은 9명의 대법원 판사다. 과반수의 국회의원이 헌법 개정을 원해도 이뤄지지 않는다. 이 모두 민주주의 원리와는 배치되는 것이다.
연방 헌법에 이런 규정이 들어 있는 것은 헌법의 입안자인 매디슨이 ‘다수의 횡포’를 횡포 중 으뜸 가는 횡포로 보고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수많은 장치를 만들었다. 그 결과 미국은 순수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지만 오히려 개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 는 데는 뛰어나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간 한국은 민주주의가 지상의 정치 과제였다. 그 결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 상황은 민주화가 만병 통치약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뉴스위크 편집장인 자카리아가 쓴 이 책은 민주주의와 자유와의 멀고도 가까운 관계를 날카롭고도 흥미롭게 다뤘다는 점에서 독자로 하여금 우리가 갖고 있는 통념이 과연 올바른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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