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태 목사<성요한 한인연합감리교회>
한편, 저는 여기서 이민 한인교회 100년사의 역사적인 한 자료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우리 성요한 교회가 지난 3년간 겪은 뉴잉글랜드 연회와의 갈등을 간략히 기술하고자 합니다.
파송 문제로 인한 3년간에 걸친 갈등과 반목은 성요한 교회 30년사의 좋은 교훈이 될 뿐만 아니라 한인 이민교회로서의 자긍심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앞으로 한인 이민교회 장래에 많은 참고가 될 줄로 믿습니다.
성요한 교회가 창립 27주년을 맞이하여 교회 건축 후 그 동안(13년) 매월 은행으로부터 대출 받은 원금과 이자를 완납하고 축하예배를 드린 후 꼭 한 달만에 감독(Susan Hassinger)으로부터 나를 다른 지방에 있는 조그마한 한인교회로 파송하겠다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감독에게 말하길 나의 목회가 얼마 남지 않아 은퇴를 바라보고 있고 또한 교단에서 위임 받은 ‘미주 한인감리교회 백년사’ 출판의 대업이 걸려 있는 이 시점에서 타교회로 파송 된다는 것은 나 자신의 목회 계획이 미완성으로 종결됨을 뜻한다고 파송의 부당함을 주장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 교회를 개척하고 그 교회에서 27년간 목회를 해온 목회자를 별다른 이유 없이 다른 교회로 파송 한다는 것은 한인교회의 문화와 전통에서 납득이 가지 않으며 또한 그것은 연합감리교회의 합리적인 파송 정신에 어긋난다는 근거를 들어서 나와 온 교회 성도들이 파송의 불합리성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성요한 교회와 권진태 목사의 파송건은 본교회는 물론 한인 목회자 협의회, 한인 감리교 연합회에까지 그 파송의 불합리성을 제기하여 뉴잉글랜드 감독에게 연서가 들어가고 끝에 가서는 The General Commission on Religion and Race에까지 이의가 제기되었습니다.
결국 3년간의 긴 논쟁과 한 때 재판에까지 회부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담임 목사와 그 담임목사를 사랑하고 감싸주는 성도들의 단합과 함께 한인교회 전체의 뒷바침으로 이 문제를 우리 교회가 원하는대로 원만히 해결되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이것은 우리 한인교회의 단합과 민족정신 그리고 교회와 담임목회자를 사랑하는 한인교회의 정서와 민족혼이 미국사회에 사는 우리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게 만들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끝으로 이제 30여년 간의 목회를 회상하게 되니 교회를 창립하고 교회 건축을 둘러싼 크고 작은 즐거움과 어려움들이 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특히 두 번에 걸친 교회분열의 쓰라린 경험은 제 목회의 위기이면서 나 자신을 성숙케 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미주 한인 감리교회 내에서 한 교회에서 31년 3개월이라는 최장기 목회경력을 남기지만 나에게 있어서 많은 회한과 잊을 수 없는 사실들을 몇 가지 말하고 싶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미국 초기 유학생들 모두 그랬듯이 공부하고 귀국하여 고국에서 봉사하려는 것이 유학의 꿈이었습니다. 나의 꿈도 이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부하고 목회자로서 목회 하다 보니 한국에 두고 온 가족이 합류하게 되고 교회는 교회대로 할 일이 많아지면서 어쩔 수 없이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이것이 이민 목회자 가정들의 일반적인 생활상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저도 보스턴에서 목회 하던 중 5년만에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합류하여 지금까지 목회를 하다가 이제 은퇴를 하게 됩니다.30여년의 목회 기간 동안 어려움과 눈물 그리고 외로움과 갈등도 많았지만 생각해 보면 목회자들에게만 누릴 수 있는 특권과 행복이 있었습니다. 제가 성요한 교회에서 목회 하는 동안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졸업하게 된 것은 누구의 덕이며 힘입니까? 역시 목사이기 때문에 자녀교육이 이루어졌다고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자녀들이 성요한 교회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되니 누구의 도움입니까? 저 같은 목사는 어머니까지 이민 오셔서 여생을 마치시고 성요한 교회에서 장례까지 치르게 되었으니 누구의 신세입니까? 특별히 자식으로서 저의 어머니의 돌아가심을 그냥 넘길 수 없어서 몇 자 적어봅니다.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은1992년 10월 11일이었습니다. 제가 성역 30주년을 맞아 온 교회 성도들과 보스턴 동포들과 함께 축하 예배를 드리던 그 날 병원에서 운명하셨던 것입니다. 자식의 30년 목회를 지켜보고 그 날 말없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 속에 자식의 서운함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나의 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성요한 교회의 온 성도가 저와 저의 가족을 위로해 주고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이 모두가 성요한 교회의 목회자라는 것 때문에 받은 특혜요 은혜인 것입니다. 그저 생각해 보면 성요한 식구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지금 머리에 되살아나는 추억으로 그리고 현실로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목회자들이 경험하는 것이겠지만, 교회 개척의 뜻을 갖고 약 1개월간 기도하며 준비하는 과정에서 교회 창립의 결정적인 뒷받침을 해 주었던 권순호(윤건준) 성도 가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본 교회에서 권순호 성도는 장로로, 윤건준 성도는 권사로 각각 봉직되어 교회를 위해 충실히 봉사하고 지금은 캘리포니아주로 이사하여 노년의 여생을 평안히 보내고 계십니다.
지금도 어디를 가든지 본 교회를 잊지 못하고 자녀들에게도 교회를 열심히 봉사하며 섬기라고 권고하신다고 합니다. 두 아들 모두 권사로 그리고 며느리들은 집사로 교회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딸 권은경 성도와 사위인 박경수 집사는 세 딸과 함께 아직도 본 교회에서 대를 이어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에는 나와 같이 30여년을 같이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 몇 가정이 있습니다. 그들이 아기를 낳았을 때 목사인 제가 병원에 달려가서 축복 기도도 해 주고 교회에서 영아세례를 주었던 그 아이가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대견하기만 합니다.
동시에 교회 안에서 성도들은 나와 함께 젊어서 만나 세례 받고 집사, 권사, 혹은 장로가 되어 나와 같이 늙어 가는 성도들이 제법 많습니다. 또한 신학생으로 나의 목회를 돕다가 지금은 같은 목회자의 길로 혹은 학자의 길로 가서 사역하는 동역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서 나의 목회에 아주 소중하였던 분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성요한 교회 묘지에 잠들어 계시는 노인 권사님들이십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나의 목회를 위해 눈물과 기도로 도와주셨던 그 분들을 제가 어찌 잊겠습니까?
나의 이민 목회 30여년을 되돌아 볼 때 잊지 못할 사람이 또 있습니다. 바로 저의 집사람입니다. 제 인생의 반려자로, 아이들의 어머니로,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로, 그리고 목사의 아내로 일인 4역을 이름없이 빛도 없이 꿋꿋이 해 낸 집사람의 내조와 노고를 잊을 수 없습니다.
목사인 제가 목회에만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 모든 집안일을 지금까지 도맡아 하는 집사람의 깊은 배려와 내조가 없었다면 사실 나의 30여년 이민목회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추억과 목회생활이 새록새록 떠오를 때마다 만감이 교차되기도 합니다.
이제는 목회 비전이라고나 할까 우리 성요한 교회가 이민교회 백년을 지나면서 21세기를 향하여 30년 아니 50년, 100년의 앞날을 바라볼 때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찬양하며,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Remembering the past, Celebrating the present, Invisioning the future)” 한인 이민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앞서 ‘나의 목회 30년 회상’에서 이미 강조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그의 본질을 잃지 않고 Boston(학원도시)에 한국을 비롯하여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지성인들을 돌보는 일, 과거에 이미 실시했던 제자화 성경공부(훈련), 그리고 사회 참여에 있어서 예언자적인 사명을 가지고 교회의 역할을 감당해나가야 합니다. 또한 제가 이민교회 백년사를 출판하고 우리 성요한 교회 30년사를 종합하여 출판 해서가 아니라 교회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교회사를 창조해 나가는 성요한 교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 목회 회상기를 마치면서 모든 세월을 하루 같이 지내온 목회30여년을 돌이켜 보건대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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