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개미’를 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자타가 공인하는 개미 전문가이다. 여섯 살때 우연히 개미에 흥미를 느끼게 된 후 그의 삶은 집요하게 개미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일로 채워졌다.
그런데 그런 ‘개미 박사’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이따금 개미들은 하는가 보다. 예를 들면 그가 목격한 어처구니없는 떼죽음 사태이다.
대단히 호전적인 한 열대지방의 종(種)이 있는데 한번은 그 개미 행군대열에서 병정개미 한 무리가 비 때문에 낙오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길 잃은 수천마리의 개미들은 전진하는 대신 소용돌이를 이루며 둥글게 돌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개미무리는 돌고 또 돌기를 하루 반 동안이나 계속하더니 결국 탈진해서 검은 융단같이 모두 널브러져 죽었다고 한다.
앞으로 행군해 가면 될 것을 개미들은 왜 제자리 돌기를 계속했을까. 계속 돌다보면 결국 탈진해 죽는다는 걸 개미들은 몰랐을까 - 개미가 아닌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생각이나 판단 없이 관성에 떠밀려 같은 길을 돌고 또 도는 반 몽유병 같은 상태, 머리로는 ‘아니다’ 싶으면서도 몸이 따라주지를 않는 속수무책의 무력감이 그 원인이라면 우리에게도 그것은 낯설지 않다.
만약 외계인 같이 이해의 고리가 전혀 없는 어떤 제3의 존재가 우리의 일과를 내려다본다면, 그도 그런 의문에 빠지지 않을까 - 저런 식으로 계속 반복하면 결과가 뻔한데 왜 벗어나지를 못하는 걸까.
그것은 영화배우 멜 깁슨이 12년 전 뼈저리게 느낀 고민이기도 하다. 그는 객관적으로 누구보다도 행복해야 마땅할 사람이었다. 하지만 당시 그는 그렇지가 못했다.
‘행복’이 과학적 연구의 주제가 된지는 70년 정도 된다. 어떤 사람은 행복하게 느끼고, 어떤 사람은 불행하게 느끼는데 그 차이를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가 연구의 초점이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최근호는 이제까지의 연구를 종합해 행복에 필요한 대표적 요소 10가지를 소개했다.
전문가들이 우선 강조하는 바는 행복감의 절반은 유전자가 좌우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타고 난 IQ가 있듯이 행복을 느끼는 용량도 타고난다는 말이다. 같은 조건하에서도 낙천적이고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 쉽게 행복해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나머지 절반을 9가지 요인들이 좌우하는 데 부, 외모, 지능, 결혼, 친구, 신앙, 자선, 나이, 더 갖고 싶은 욕망 등이 그것들이다.
깁슨의 경우는 손에 넣고 싶던 모든 것을 손에 넣은 상태였다. 현재로 결혼 24년째인 조강지처와 7남매의 유복한 가정, 세계에서 가장 섹시하다는 외모, 넘치는 부와 명성 … 그런데도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더 이상 느낌도 없는 물질의 풍요에 중독되고, 그 무료함을 타락으로 털어 내면서, 그는 개미떼의 소용돌이 같은 반 수면의 삶을 계속 한 듯하다.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지, 인생의 목적이 없었다. 12년전 자신의 상태를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나는 아마도 최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내면에 있다. 나는 (그때) 영적인 파산상태였다. 그건 마치 영적인 암에 걸린 것 같아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암에 내가 잡아 먹혀버릴 판이었다”
한동안 잃었던 자신의 정신적 뼈대, 신앙을 붙잡고 그는 ‘탈출’을 시도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저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존재론적인 질문들을 던지면서 그는 성서를 파고들었다. 그 노력의 한 열매가 최근 개봉된 ‘그리스도의 수난’이다.
신문사 동료 한 사람이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2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것이다. 뭔가 달라져보겠다던 새해의 결심들이 2월쯤 되면 대개 흐지부지 되는데 결심을 강행하자니 너무 힘들고, 그렇다고 포기하고 안락한 이전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이르고…
깁슨이 이제 진정한 행복에 도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관성에 떠밀리던 삶에서 과감하게 탈출을 시도한 점은 배울만하다. 새 봄이다. 또 새롭게 결심한다 해서 어색할 게 없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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