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창 <워싱턴 통합한인학교 이사>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들끼리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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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전라도 길 -소록도로 가는 길-’은 소년 고은을 밤새 울렸다. 미술학도였던 그는 어느 어두워지는 밤길에서 주운 ‘한하운 시초‘에서 이 시를 읽는 순간 시인으로 변한다. 인간세계에서 소외된 자의 유랑과 고독이 고은 소년의 예민한 감수성을 파고들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그는 두 가지를 결심했다. 나도 한하운처럼 문둥병에 걸려야겠다는 것과 나도 시인이 되어 이 세상의 ‘길’을 노래하겠다는 것이었다. 시인 고은(71)은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에서 시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술회했다.
한국의 원로시인의 한사람이자 21세기 한국문학을 여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고은 시인이 워싱턴을 들렀다. 미주와 유럽을 돌며 시 낭송회를 열고 있는 고 시인은 지난 2월 2일 밤 워싱턴 디시의 포저 셰익스피어 도서관에서 시 낭송회를 가진데 이어 4일 밤에는 설악가든 음식점에서 동포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하여 의견을 교환했다.
고 시인은 자신의 시는 만해 한용운과 소월 김정식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했다. 민족적인 기상과 서정성을 강조한 말인 것 같다. 그는 1950년대 한국전쟁 후에는 폐허와 허무를 노래하다 70년대 후반부터는 현실참여 즉 저항 문학을 했으나 지금은 타자를 이해하고 껴안는 문학을 지향하고 싶다고 피력했다. 현실참여, 저항문학의 시기에는 자연 민주화운동과 연관치 않을 수 없어 운동 관계자들과 인연도 많다. 안병무 백기완 함세웅 장준하 문익환 김대중 씨 등이 그들이다. 그런 와중에서 옥고도 치렀다.
그는 원래 젊은 시절 해인사로 출가하여 10여 년 동안 승려생활을 했음에도 기독교 관계자들과 교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그의 ‘껴안는 문학, 포용문학’ 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의 ‘포용문학’은 민족문제와 한반도 통일문제에까지 연관된다. 즉 한민족은 남한과 북한주민과 해외동포로 구성되며 이들이 민족의 실체라고 강조한다. 북한이나 해외동포나 남한도 같이 ‘우리’라고 하자며 중국과 일본민족한테도 배울 것은 배우자고 했다. 그는 또 고 김재준 목사의 “과거의 고향에 매이지 말고 새로운 고향을 개척하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조국을 위해, 후손들을 위해 여러분이 살고있는 이곳에 미래 한민족의 고향을 만들라”고 역설한다. 모국통일 문제에 대해서도 과거 기억을 만족시키는 망향적인 통일노력 보다는 자식들에게 새로운 통일조국을 만들어 주자고 했다. 외국에서 모국어로 문학하는 것은 현대판 독립운동이란다.
문학은 작자가 처해진 상황과 의식 속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동포문학은 이민자들의 생활경험이 소재가 되어야 된다고 했다. 옛 고향인 모국의 문학이 동포문학의 전범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포문학은 한인들의 미국경험과 한반도의 통일 문제가 주요한 테마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는 동포사회에 대한 한가지 바람도 잊지 않았다. 한민족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포들 간에 분열과 이합집산을 일삼는 현상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한인들이 힘을 모으지 못 하고서야 무슨 일을 이룰 수 있겠으며 무슨 희망을 가질 수가 있겠느냐는 한탄이다. 한인사회의 분열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고 시인만의 지적도 아니다. 미주 한인사회의 원로라 할 최제창 박사와 김일평 커네티컷 대학의 명예교수도 언론을 통해서나 강연을 통해 이를 통렬히 비판하고 아쉬워하고 있다. 노 시인의 동포사회에 대한 충고가 어떤 메아리로 되돌아올지 기다려 보자.
왜 시를 쓰느냐 는 상투적인 물음에 그는 “저녁 석양에 해지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이상한 감을 느끼죠. 시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라는 알듯 모를 듯 한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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