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코리안’이 본 ‘안타까운 한인사회’
정태수 <편집국 부국장>
최근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전신애 노동부 차관보(여성국장 겸임)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한국에서 낳고 자란 그는 대학까지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1세인데도 숱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지금 연방정부 차관보라는 중책을 맡고 있다. 미국 여성들을 위한 거의 모든 정책들이 그의 머리와 손을 거쳐 기획되고 집행된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자랑스런 코리안’이다. 비단 한인사회뿐 아니다. 다른 소수계는 물론 주류사회에서도 그를 부러움과 놀라움이 섞인 눈으로 바라본다.
하루 서너시간밖에 못자고 일에 파묻혀 산다는 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전미여성 최고경영자 연례총회에 특별연사로 초대받은 이유 중 하나도 본인 말마따나 여기(미국)서 태어난 사람들보다 영어도 서툴고 여러모로 불리한데 어떻게 차관보가 됐을까 하는 여성경영자들의 궁금증과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지난달 27일 총회 연설을 통해 이민 1세에 불과(?)했던 자신이 일리노이주에서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이를 계기로 주정부에서 일자리를 얻어 승진을 거듭해 관료가 되고, 나아가 연방정부로 진출하기까지 과정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자랑스런 코리안’ 전신애 차관보의 눈에 비친 한인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여성경영자 총회를 하루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그가 털어놓은 얘기를 종합하면 아직은 ‘자랑스런 한인사회’가 아니라 ‘안타까운 한인사회’인 것 같다. 그가 자랑스럽다 안타깝다 꼬집어 말한 것은 물론 아니다. 높은 자리에 앉더니 목에 힘이 들어간 모양이라고 고깝게 받아들일지 모를 한인들이 있을까봐 미리 말해두지만 그는 2시간이 넘는 인터뷰 내내 아니할 말로 한인사회를 우습게 여기거나 족치는 듯한 발언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노동부 차관보가 돼 일리노이에서 워싱턴D.C.으로 옮긴 뒤 정부직에 한인들이 너무 없는 걸 보고 놀랐다며 한인들이 정부직이나 정치권에 많이 진출해야 한인사회의 ‘보이스’가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재미한인 1세들이 피나는 노력으로 경제적으로 어느정도 성장을 한 만큼 이제는 ‘나 혼자, 내가 속한 서클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일리노이 주정부 각료 시절 소수계 출신 고위직 인사들이 자기가 속한 소수계 후배를 자기 부서에 근무시키자면 남들이 어떻게 볼까 부담스러워 다른 소수계가 맡는 부서에 자기후배를 근무토록 주선하고 상대편 부서장의 후배를 자기부서에 근무하게 하는 등 일종의 ‘트레이드 방식’으로 끌어주고 밀어준다는 소수계 챙기기의 비법(?)을 귀띔하기까지 했다. 여기에도 단서는 있다. 스스로 일정한 실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지 한인이란 이유만으로 무턱대고 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무술사범으로 이민을 와 시장까지 지낸 양진석 코테마데라 시의원 역시 ‘자랑스런 코리안’이 다. 전 차관보의 말처럼 그는 최근 같은 지역에 사는 건축전문가 김균씨를 코테마데라시 도시개발위원회 커미셔너로 추천해 만장일치 승인을 받아냈다. 김씨의 커미셔너 입성이 양 의원의 ‘빽’으로 됐다는 뜻은 아니다. 이력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김씨는 충분히 자격을 갖췄다. 양 의원도 따로 로비를 할 필요가 없었고 다른 의원들로부터 훌륭한 분을 추천해줘 고맙다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김씨도 양 의원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심사대상에 오르지도 않았을 게 분명하다. 김씨 스스로 양 의원의 권유 이전까지 건축담당 커미셔너를 뽑는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고 따라서 거기에 응모할 생각조차 못했다고 실토했다.
물론, 높은 자리에 오른 한인 누구를 ‘빽’으로 삼아 거저 ‘덕’을 보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덕을 보는 데도 (적어도 남들 눈에 ‘끼리끼리 해먹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의) 합당한 자격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평소 부단한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능히 할 수 있다고 나설 수 있는 ‘우리’는 과연 얼마나 될까. 마이크만 들이대면 한인사회의 위상제고를 외쳐온 많은 한인단체 리더들은 ‘자랑스런 코리안’이 될 ‘준비된 코리안’을 기르는 데 과연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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