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민(맨 오른쪽)씨의 집에 모여 대형 TV로 함께 영화를 감상하는 영화 감상 동아리의 회원들. 이들은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는데 이번 주말 오스카 시상식도 함께 모여 시청할 계획이다.
함께 보고 느끼면‘기쁨 두배’
이번 주말은 오스카(아카데미) 위크엔드. 도대체 오스카가 뭔지, SAG(미국 영화 배우 협회) 등 미 전역에서 한 해 영화계를 정리하며 주는 모든 상들은 사실 오스카의 전주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전 세계가 동시에 시청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제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이번 주말이 지나고 나면 몇몇 영화들은 아카데미 수상작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달고 극장을 석권하게 될 것이다. 월요일 자 조간신문, 아카데미 시상식에 입고 나왔던 배우들의 옷차림에 대한 촌평은 또 에고로 똘똘 뭉친 배우들의 심기를 얼마나 불편하게 만들까.
▲후보로 지명된 영화를 미리 봐둔다.
아카데미 수상 항목은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해 22개 부문. 이 가운데 작품상과 남녀 주연 배우상, 감독상 후보작을 미리 봐둔다면 시상식을 백배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다.‘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은 작품상과 감독상 등 총 11개 부문의 후보에 지명되어 최다 후보작이 됐다.
‘매스터 앤드 커맨더’도 작품상, 감독상 등 총 10개 부문에 이름을 올려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다. 이외에도 작품상 후보에 오른 작품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 ‘미스틱 리버(Mystic River)’ ‘씨비스킷(Seabiscuit)’ 등 다섯 작품이다.
남우주연상은 ‘콜드 마운틴(Cold Mountain)’의 주드 로, ‘캐리비안의 해적’의 조니 뎁, ‘모래와 안개의 집(House of Sand and Fog)’의 벤 킹슬리, “미스틱 리버(Mystic River)’의 숀 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slation)’의 빌 머레이가 지명됐으며, 여우주연상에는‘사랑할 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Something’s Gotta Give)’의 다이안 키튼, ‘몬스터 (Monster)’의 샤를리즈 테론, ‘21그램(32 Gram)’의 나오미 왓츠, ‘천사의 아이들(In America)’의 사만다 모튼, ‘웨일 라이더(Whale Rider)’의 13세의 최연소 배우 케이샤 캐슬 휴즈가 경쟁을 벌이게 된다.
감독상 후보에는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을 비롯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소피아 코폴라, ‘매스터 앤드 커맨더’의 피터 위어, ‘미스틱 리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리고 ‘신의 도시(City of God)’를 연출한 브라질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각각 후보에 올랐다.
▲친구들 가운데 가장 큰 TV 세트를 가진 집에 함께 모인다.
간단한 다과와 음료수를 나누어 준비해 간다. 수상작에 대한 내기를 한다. 많지 않은 액수의 돈, 또는 점심 사기 등의 내기는 아카데미 시상식 관람을 더욱 즐겁게 한다.
※영화배우 빌리 크리스털이 진행을 맡은 제 76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29일(일) 오후 5시부터 3시간 30분 동안 할리웃의 코닥 극장으로부터 ABC TV 채널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 된다.
규모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주말은 여러 면에서 수퍼볼 위크엔드와 유사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수퍼볼 중계와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를 동일선상에 두게 하는 것은 혼자 봐선 영 재미가 없다는 점이다.
일요일 오후 일찌감치 대형 TV가 있는 친구 집에 모여 앉아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며 시청해야 제 맛이니 말이다. 수상자가 누가 될 지 미리 점치며 베팅을 던져보는 것 역시 공동의 이벤트에 재미를 더한다.
평소 집에서 영화 보기를 즐기는 고성민(31, 교사)씨는 작년 이사 들어올 때 혼자 보기에는 버거울 정도의 최첨단 평면 TV를 마련했다. 타운 한 가운데 위치한 그녀의 집은 대형 TV가 있다는 이유로 자연스레 그녀가 속한 ‘영화 감상 동아리’의 시사실이 되어버렸다.
아니, 꼭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유난히 둥글둥글 편안한 성격의 소유자인데다가 부엌에서 잠깐만 움직이면 근사한 간식거리를 잘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영화 감상 동아리 회원들이 부담 없이 그녀의 집을 찾는 진짜 이유들.
매달 한 번 꼴로 모여서 영화를 감상하는 그들은 그동안 참 다양한 영화의 세계를 함께 맛봤다. 보통 프랑스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 ‘타인의 취향’을 비롯해서 느림의 미학을 읽을 수 있는 타르코프스키의 ‘희생’ 등 미국 주류 사회에서 소외받는 아트 영화들은 LA의 자존을 지켜나가고 있는 몇몇의 아트하우스뿐만 아니라 그녀의 집에서도 상영돼 왔다.
여럿이서 모여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함께 보다보면 방마다 TV 하나씩 따로 갖고 있는 요즘 세상에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60년대 동네 제일 부잣집에나 한 대 있던 TV 앞에 10원씩 입장료를 내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함께 장욱제, 태현실 주연의 ‘여로’를 시청한 경험이 있는 세대들은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이미자의 구성진 목소리로 주제가가 흘러나오는 순간부터 이웃들은 눈을 반짝이며 몰입하기 시작한다. 동네에서 제일 목소리 큰 아주머니. TV 볼 때도 예외는 아니어서 태현실이 시집 식구들에게 구박 맞는 장면이라도 나올라치면 “아이구, 저걸. 그걸 참고 있어, 그래?” 하며 마치 드라마가 자신의 실제 삶이라도 되는 것처럼 추임새를 넣는다. 슬픈 장면에 누군가 코를 훌쩍이기 시작하면 이는 금시 전염성이 강한 감기처럼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옮겨가곤 했었다.
지난 주말 고성민 씨와 5명의 영화 감상 동아리 회원들은 그녀의 대형 TV 앞에 앉아 함께 영화를 감상했다. 평소 아트 영화를 자주 감상했던 것과는 달리 오늘은 좀 쉬운 영화를 감상하자며 짐 케리 주연의 트루먼 쇼의 디스크를 넣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24시간 동안 방송되고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알 길 없는 트루먼. 그가 아버지를 죽인 폭풍우의 두려움을 이겨가며 자유의 세계를 찾아나가는 여정은 세상을 향한 두려움을 극복한 내적 혁명이라 더욱 감동적이다.
함께 영화를 보고 나서는 서로의 느낌들을 나눈다. 같은 영화를 보고 나서도 어떻게 그토록 다른 감상들을 갖는지 확인하는 과정은 즐겁다. 영화는 분명 그들의 만남을 더욱 풍요하게 만들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이번 주말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휴일에도 역시 그들은 한데 모여 함께 TV를 시청할 계획이다. 집주인 혼자 음식 준비하는 것이 미안한 다른 회원들은 먹기 간편한 핑거 푸드를 저마다 한가지 씩 마련해 오기로 했다. 엉뚱한 말 잘 툭툭 잘 던지는 천세원 씨의 추임새는 함께 시청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더욱 즐거운 이벤트로 만들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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