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ton지역에서 나의 이민 목회 30여년을 뒤돌아 볼 때 절반의 결실만을 맺은 것 같이 느껴짐을 고백합니다. 30여년이면 내 인생의 반을 여기에서 보냈는데 이렇게 허전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내년에 있을 은퇴 때문이 아니라 저 나름대로 세웠던 목회 계획이 미완성으로 끝나기에 그렇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나의 일생과 목회를 되돌아 볼 때 변명 아닌 솔직한 고백으로 반쪽 인생을 살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일찍 작고하신 후 어려서 식구는 많았지만 편모 슬하에서 자란 것도 반쪽 부모요, 한국과 미국에서 최고 학부까지 다니며 학문에 접했다고 하나 목회 하면서 늘 무르익지 못한 풋내기 인생이라 자책했고, 목회도 위에서 말했듯이 시작하다 중간에서 끝나버린 것 같은 목회생활이었습니다. 연습으로 마치는 기분입니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뒷문을 나서게 된 목회인 것을…
그런데 30여년의 목회 과정을 회상해 볼 때 전적으로 하나님 계획과 섭리였지 나의 계획과 능력은 아무 것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목회뿐만이 아니라 처음 미국에 유학 올 때부터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될 때 저는 Boston에서 신학 공부의 꿈을 갖고 있었지만 다른 도시로 떨어져 감리교 신학교가 아닌 초교파 신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그 학교가 Boston근교에 있는 Gordon Theological Seminary와 병합되면서 학교를 따라 오게 되니 Boston에서 학업은 물론 목회를 하도록 운명이 주어졌습니다. 저는 Boston에서의 30여년 목회 생활을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 짓고 싶습니다.
첫째, 교회 개척과 더불어 세 번에 걸친 나그네(교회 이사) 신앙생활
Watertown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세 번에 걸친 교회 이사를 하여 현재 Lexington에 성요한 교회가 자리 잡은 지 24년이 되었고, 이 곳에서 교회 건물을 신축하고 정착한 지는 16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교회가 부흥하기도 하고 때로는 교인수가 줄어 위기감을 느낄만큼 실의에 차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저 자신이 목회자로서 확고한 신앙과 인내를 가지고 또한 매사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고 오늘의 성요한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이니 만큼 때로는 인간관계로 인한 시험이 와서 교회의 시련이 되기도 하였지만 사회적인 여건과 목회자인 저의 미숙함으로 오는 어려움이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은 교회와 목회자에게 힘이 되는 성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분들 가운데 충성스럽게 교회를 위해 봉사하다 고국으로 귀국한 분들도 있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한 성도들도 계십니다.
아직도 이 교회에서 저와 더불어 15년, 20년, 30년을 함께 신앙생활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그 분들의 얼굴과 모습이 지금도 눈앞을 스쳐 지나갑니다.
목회생활을 하다 보면 교회가 한창 부흥될 때에 교회 분열을 일으키고 교회를 시험에 들게 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이 모든 것이 교회가 성장하게 되는 하나의 전기요 굴곡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와 같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 교회는 더욱 굳건히 반석 위에 세워짐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교회 건축의 즐거움과 어려움
이민 교회 모든 목회자들이 알고 있듯이 교회 개척도 쉽지 않지만 교회를 개척한 후 이를 성장시키는 것도 또한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자체 교회건물의 필요성은 당연한 것이요 절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의 교회에서 손님과 같은 나그네 신앙 생활을 영원히 할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이민생활이 어렵고 자리가 잡히지 않은 성도들과 함께 교회를 구입하거나 신축하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오, 크나큰 신앙의 모험을 각오하지 않고는 내 교회 마련이라는 꿈을 실현시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 개척보다 더 큰 어려움과 모험이 뒤따르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어려움과 모험을 체험한 목사입니다. 우리 성요한 교회만 하더라도 건축을 시작하여 완공하기까지 건축 위원장이 세 번이나 바뀌는 불안정한 상황을 겪었고, 교회 부지를 사서 신축하느냐, 지금 있는 이 자리에다 증축하느냐 하는 이견으로 3년이나 착공이 연기되기도 하였습니다.
아쉬웠던 것은 처음 우리가 원했던 계획대로 시작했더라면 기간을 3년 단축할 수 있었고 건축비도 그 절반으로 줄여서 완공을 보았을 것입니다.
결국 서로간의 의견 조정으로 원안이 채택되어 현재 이 교회에 증축하여
미국 교회와 함께 공동소유주가 되어 교회를 운영하는 형태의 건축안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교회 건축헌금이 4만달러 밖에 없는 현실에서 100여 만달러의 건축헌금을 충당하고 건축을 완공한 것은 기적이었습니다.역시 한인 교회는 교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 목회자가 깃대를 들고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역사 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회 건축을 앞에 두고 목회자는 물론 교인들의 영적 무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건축을 앞에 두고 부흥회를 개최하여 신앙 회복은 물론 영적 무장을 함으로써 성도들은 물론 목회자인 저 자신도 신앙적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100여만 달러의 건축헌금을 충당하게 되는 기적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담임목회자인 제가 은혜를 받고 보니 타교회들로부터 부흥회 강사로 초청을 받아 집회를 인도하게 되고 그 사례비를 건축 헌금으로 바칠 수 있도록 무일푼인 당신의 종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 모든 일들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뜻과 역사 가운데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내의 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 밖의 성도들과 교회 건축의 절실함을 알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건축 헌금을 권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시험과 후유증이 생겨 건축 후에 교회가 분열되는 소용돌이 속에 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목회자인 제가 그 비난과 혐의를 뒤집어쓰고 몇 년 동안 온 성도들로부터의 은혜롭지 못한 반목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로 잘 마무리되어 오늘에 이르게 됨을 주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권진태 목사(성요한 한인 연합 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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