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갑신년, 역사적으로 격변이 많았던 해다. 120년 전인 1884년 기회와 위기가 교차했던 갑신정변의 경우를 떠올리면 금년 한국 외교에 시사점이 적지 않다.
이번 4월 한국의 총선은 역대 그 어느 선거보다도 많은 정치신인들의 등원과 정당구도의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선거 철에 우리는 정치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또한 정치의 오용을 우려하게 된다. 얼마 전 외교통상부 윤영관 장관의 경질사건이 한 예다.
노무현 정부의 몇 안 되는 외교 전문가로 노 대통령을 대선 때부터 소신 있게 도와준 윤 장관을 갑자기 경질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제기된 윤 장관 경질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윤 장관과 대통령의 불화설이다. 둘째, 윤 장관이 대표하는 외교부와 대통령이 신임하는 다른 부서, 특히 국가안전보장회의(NSC)나 청와대와의 갈등이 그 근원이라는 것이다. 셋째, 김대중 대통령의 전적인 지원과 신임아래 대통령이 된 노 대통령이 햇볕정책의 기조를 변화시켜 나가는 조짐이 나타나자 윤 장관을 경질했다는 설이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이 사실이든 이는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먼저 대통령과의 갈등설은 윤 장관의 역량이 부족했다면 별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현 장관들 중 정권 안정에 기여하였다고 언론에서 호평을 받았던 인물이다. 경질에 해당하는 큰 과오가 없었는데도 해임됐다면 문제다. 둘째, 노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소장 신진 관료들이 포진한 부서와 직업 테크노크라트 출신 관료의 철옹성으로 간주되는 외교통상부간의 정책이 달라 외교부 장관의 경질이 불가피했다면 이는 신진관료와 구관료와의 갈등이 국기를 흔들었던 조선조의 사화의 재판이다. 이런 사태가 반복된다면 이것은 국가관료 집단내의 불신과 반목을 부추길 것이다.
가장 우려할 만한 것은 셋째 가설이 사실일 경우다. 전 정권 임동원 장관의 역할을 계승한 이종석 NSC 차장과 윤 장관과의 갈등은 햇볕정책을 계승하고자 하는 노 대통령으로서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중대사안이다. 김 전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천문학적 자금을 김정일 정권에 헌납한 후에 이루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결국 약속했던 김정일의 서울 답방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현대그룹의 재정파탄은 그룹 총수의 비극적인 자살로까지 이어졌다.
부시 공화당 행정부의 강성 반테러 정책의 기조를 감안할 때 대한민국 외교정책이 국가이익 보장을 위한 한미동맹의 유지 대신에 대북 포용정책의 절대 고수라는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든다. 만일 이 논리를 따른다면 우리는 북한과 동맹을 맺어야 하며 미국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것은 공산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하는 북한의 이념과 체제를 용인하고 수용하는 문제와 직결되며 현 대한민국의 헌법체제의 중단을 의미할 수 있다.
외교부 장관의 경질에는 단순한 국내정치의 한 부분을 훨씬 넘어서며 주변 관련국들은 이를 자국에 대한 외교정책의 변경으로 받아들일 계기가 될 수 있다. 외교 관례에서 대사의 소환이나 외교부 장관의 경질은 일국의 자유소관이 아니라 주변국가의 동의와 지지를 쌓아 나가는 포괄적 외교과정의 일환이다. 이를 전적으로 대통령 고유의 통치행위만으로 강변하는 것은 외교의 세계를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것이다. 윤 장관의 경질은 단순한 햇볕정책의 계승뿐 아니라 임박한 4.15총선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의 지지세력을 여당의 지지층으로 흡수하기 위한 고려도 상당히 작용했을 수 있다. 즉 내정을 위해 외교를 희생한 것이라는 논리가 큰 설득력을 얻게 되는 부분이다.
21세기의 극 초강대국이자 민주주의의 선도세력인 미국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하고 중국과 북한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 대한민국의 외교의 경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이들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는 실리적 이해타산의 일치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한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적어도 50년에서 100년을 내다보며 역사적 안목과 철학적 신념을 바로 세우면서 외교적 목표는 추구돼야 한다. 정치와 외교는 선거철일수록 구분하여 나가는 것이 장기적인 국가이익의 구현의 첩경이 된다는 국제정치의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다시금 새겨볼 필요가 있다.
김용직
성신여대 정외과/ UCLA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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