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상<수필가>
뉴욕의 DK 출판사는 지나간 1000년 동안 세상을 움직인 1000명을 선정한 책에서, 영국이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극작가이며 시인인 셰익스피어를 으뜸으로 등극시켰다.
2위는 마더 테레사, 미국인으로는 아브라함 링컨이 17위인데 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3위였다. 대개가 당연한 선정(選定)이라 싶다가도 가수 마돈나가 소개되었는가 하면 일본인은 여러 명인데 한인은 한 명도 없음에 이르면 선발 기준의 잣대가 짧고 시야가 넓지 못 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세계적인 정치가 처칠이 23위인데 비해 이혼녀 다이아나 황태자비가 18위 인 것을 보면 더 많이 인구에 회자 된 순위로 점수를 매긴 모양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구석에 간략히 기술 했는가하면, 영화배우 제임스 딘(1931-55)은 그의 칼라사진으로 한 면을 덮으며 소개됐다. 반항아들의 세계적인 우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세 편 영화만을 남기고 24세에 자동차사고로 죽었다. 그것도 <이유 없는 반항>. <에덴의 동쪽>은 사망하던 1955년에, <자이언트>는 죽은 다음해에야 완성되었다. 세상에 알려진 활동은 반년뿐, 더 많은 영상을 남기지 못한 아쉬움이 그를 더 빛나게 하는 건 아닌지.
내가 어린 시절 보았을 <이유 없는 반항>은 전혀 기억되지 않는다. 제임스 딘이 콧수염을 달았던가, 그 보다 엄청 큰 미남 배우 록 허드슨에 가려진 <자이언트>는 몇 장면만이 아련하다. 우상으로 따지면 <구월이 오면>에서 그 당시 젊은 여인들의 연인 록 허드슨이다. 그는 왜 빠진 걸까, 오래 살다가 몹쓸 병과 추한 모습을 남겼기 때문일까.
아무튼 제임스 딘을 돋보이게 한 영화는 <에덴의 동쪽>이다. 그의 선발이유를 찾고 싶어 엊그제는 다시 구해보았다. 존. 스타인벡 작품이다. 제임스 딘이 죽은 지 6년 후에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스타인벡도 1,000명 축에 끼지 못했다. 스타인벡은 자기가 태어난 농장지대 살리나스와 태평양 해변의 절경 몬트레이를 배경으로 이 작품을 썼다. 그래도 지금은 흔적만 남은 철길, 언제나 푸른 농장, 스타인벡의 생가가 내가 있는 곳에서 2시간 거리라는 걸 새삼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어진다.
영화의 줄거리는,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의 철저한 신앙심과 도덕적 삶에 질려, 양심과는 거리가 멀다고 대접받던 딘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어깨에 총상을 입히고 멀리 떠나갔다.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생모를 찾아 살리나스에서 몬트레이를 오가는 기차의 지붕 위에서 추위를 이겨내는 딘의 모습. 몬트레이에서 술집을 운영하여 큰돈을 번 어머니의 성격을 닮은 그를 아버지는 무관심하게 대하고 형만을 편애한다. 사랑에 굶주린 그는 한 마리의 작은 도둑고양이였다. 움 추린 어깨 왜소한 체구 짧은 곱슬머리 여린 콧대에 작은 입, 귀를 제외한 모든 게 작았다. 돋보이는 것은 움푹 패인 깊은 곳에서의 눈이다. 끝없이 갈구하는 그 눈이 인간이란 존재의 외로움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작은 키, 날렵한 행동과 함께 눈은 거인처럼 연기를 해냈다. 누구도 그를 미워하기는커녕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실제로도 그는 다섯 살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삼촌 농장에서 자랐다.
그의 지난날 실상이 이 영화에서 젊은이의 고통과 감수성의 실체를 정확히 묘사하여 온 세상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그를 선정한 책은 말한다.
이 책은 실생활에 도움을 준 과학자, 더 나은 세계로 이끈 정치인, 정신 세계의 길을 제시하는 종교인 철학자들보다는 인간의 내면 심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예술인들에 비중을 둔 것 같다. 크게 뛰어나서 범인(凡人)으로는 근접 할 수도 없는 이들만이 위인들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깨고 작고 왜소한 한 인간의 사랑에 성취는 우리들에게 희망의 가능성을 사사한다.
영화 속 그의 아버지와 형이 보여주는 성서적인 선한 외형의 탈을 깨부수고 그 뒤에 움 추린 한 사랑을 보여준다. 그래서 죽기 전 반년동안 온몸과 마음을 담아낸 그의 눈빛은 천년을 빛낼 것이다.
세상은 보여지는 것만을 선호하고 그런 사회적인 공덕만을 중요시한다. 세포가 건강해야 한 인간이 건강하듯 개개인간이 소중해야 그 사회가 건전하고 밝아진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가늠하게 해준 <에덴의 동쪽>은 외적인 거품이 충만한 세계에서도 단연히 빛나는, 세월이 가도 변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온실에서 자란 듯 반듯해 보이는 형이 쉽게 무너지는데 비해 잡초같이 자란 제임스 딘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실은 이런 사랑의 성취이며 성취로 이어지는 혼신의 외로운 과정이다.
아무튼 다시 본 영화에서 1,000年史의 한 명으로 그가 선발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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