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본사 주필>
존 케리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뽑힌다면 11월 부시와의 대결에서 볼만한 싸움이 될 것이다. 알려진 사실처럼 부시는 보수주의자, 그 중에서도 극우 크리스천 세력이 지지하는 정치인이고 케리는 진보주의자, 그 중에서도 좌에 가까운 매서추세츠 진보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4선 상원의원이다. 또 부시는 텍사스 등 남부의 상징이고 케리는 뉴잉글랜드 골수세력으로 동부의 상징이다. 커리커추어를 그린다면 박력 있는 카우보이 대 사색하는 지성인으로 묘사될 수 있을 것이다.
존 케리는 에드워드 케네디가 키워준 정치인이다. 매서추세츠주는 케네디 대통령과 밥 케네디 법무장관,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을 배출시킨 케네디가의 아성이다. 이 곳에서는 누구도 케네디가와 등을 지고는 정치인으로 클 수 없다. 케리가 정계에 진출할 때 케네디가의 신세를 진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고 그가 진보주의자가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미국 선거에서 ‘리버럴’(진보주의자)로 낙인찍히면 별로 좋을 것이 없다. ‘리버럴’하면 60년대의 히피와 흑인 데모, 그리고 징집영장을 불태우는 반정부주의자들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60년대는 진보주의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미국이 월남전에서 패하자 국민들은 좌절감에 빠졌고 이에 대한 분노가 “너 때문이야”로 변하면서 80년대에 들어서자 레이건이 ‘리버럴’과의 이념싸움을 벌여 승리한 것이다. ‘리버럴’하면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색안경을 끼고 ‘사회주의자’처럼 보는 왜곡된 풍토가 생겨났다.
‘보수주의자’들의 수난기도 있었다. 1930년대에 공화당의 후버 대통령이 집권해 대경제공황이 일어나고 수많은 가장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자 ‘보수주의자’하면 돈 있는 사람, 빈부의 차이를 조장하는 무능한 정치인으로 낙인 찍혔었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폐허에 가까운 빈민촌을 ‘후버빌’이라고 부른다. 이같은 절망상태를 사회제도개혁으로 각 분야에 새 바람을 불어넣은 정치인이 바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며 제퍼슨의 바톤을 이은 리버럴의 기수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피땀 흘려 번 중산층의 돈을 정부가 강제로 빼앗아 놀고 먹는 빈민층에 재배분하고 있다며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세금부담이 늘어나 자신의 생활의 질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중산층의 분노가 가세해 리버럴이 밀리기 시작했다. 공화당의 전통적인 구호가 ‘세금감면’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근세 미국을 이념적으로 구분하면 40년대에서부터 70년대까지는 ‘리버럴’의 득세시대고 80년대에서부터 지금까지는 ‘보수주의자’들의 득세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부시는 케리를 극좌 ‘리버럴’(liberal)로 몰고 갈 것이다. 이에 대해 케리는 자신이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는 등 보수적 리버럴이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면서 부시의 인파이팅에 아웃복싱으로 맞설 것이다. 따라서 부시와 케리의 대결은 미국에서 일찍이 없었던 ‘사상전쟁’(Cultural Civil War)으로 치닫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부시가 당선되느냐, 케리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미국의 대북 정책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케리는 자신이 집권하면 부시와는 전혀 다른 한반도 정책을 펴겠다고 벌써부터 공언하고 있다. 미국이 레이건 시대 이후 20년만에 보수주의 물결에서 벗어나 새로운 진보주의 시대의 문턱에 들어설 것인가, 아니면 남이야 욕하건 말건 힘을 과시하며 미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극우보수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인가가 오는 11월 결판이 날 것이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케리를 당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기보다 어떻게 하든지 부시를 떨어뜨리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보수 진보 양진영이 한국처럼 감정적으로 대립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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