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선<본보편집위원>
총선을 앞두고 ‘열린 우리당’이 한국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를 놓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열린 우리당은 현 정권을 탄생시킨 사람들이 만든 여당이고, 노무현정권의 지난 1년 간의 실정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는 정치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 정치의 현실과 국민의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감안하더라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항변성 푸념이다.
한국 국민들은 지난 수십년 간의 사회체제에 대한 피로감과 권태감에 지칠 대로 지쳐있다. 개발독재와 관주도 경제체제에서 형성된 기득권 세력들의 사회지배구조 와 부의 독식, 그리고 그 고리 속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부정부패에 넌더리를 치고 있다.
그래서 변화는 누구도 거역 못할 시대적 추세이고 그런 요구와 흐름이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켰다.
노무현정권이 그런 변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려는 것은 필연적이다. 또 그런 변화을 위한 노력에 대해 왈가왈부할 국민은 없다.
문제는 변화의 방향과 방법이다. 국민은 ‘통합과 상생’의 방법으로 잘못된 세상을 변화시켜주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노정권은 지난 1년간 오직 ‘지배세력 교체’를 통해 거칠고 조급하게 변화를 이루려 했다. 그러다 보니 편협한 ‘코드 맞추기’에 급급하면서 성과 없이 소란스럽기만 한 1년을 보냈다. 그 와중에 경제와 민생은 풍지박산 나고 말았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지금쯤 ‘4월 총선 한나라당 압승’이라는 전망이 나와야 이치에 맞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여론의 향방은 그렇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열린 우리당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다가올 총선에서 표로 연결될 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일단 현재까지 여론조사에서 선두주자인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이 국민의 변화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노무현정부에 실망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때문일 것이다. 이번 총선은 국민적 변화요구에 누가 더 많이 빨리 부응하느냐에 따라 결판난다고 보아야 한다.
국민들은 비록 노정권에 대해 크게 실망은 하고 있지만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어 아직은 열린 우리당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러한 여론에는 대단히 위험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아무리 변화가 시대적 요구라고 하지만 정치세력들이 추구하는 변화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판단도 없이 지지를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만약 열린 우리당이 추구하는 변화가 국민들이 바라는 변화의 방향과 방법에 부응한다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노무현정부와 열린 우리당이 보여준 변화는 국민이 바라는 변화와는 많은 차이를 드러냈다.
노무현 정부 출범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친북좌경화’ 성향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북한정권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친북좌경은 국기를 뒤흔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정권내 적지 않은 실세들이 그런 성향을 보이고 있고 그것이 정부 정책에 반영돼 엄청난 국민적 이념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친북좌경 성향의 사람들은 사회 구석구석에 배치돼 ‘진보’를 앞세워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그 결과 전통적인 한미간 우호관계가 크게 손상되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에 남한의 입장을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 넣고 있다.
그들은 또 ‘지배세력의 교체’를 통해 한국사회의 전면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또한 혁명적이고 좌파적인 발상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2분법적 사고로 사회구성원을 적과 동지로 구분하고 특히 기성세대는 일단 부패세력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키지 위해서는 새세력이 구세력을 대체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최근 노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 구세역의 뿌리를 떠나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해, 터를 잡기 위해 천도가 필요하다고 한 발언은 섬찟한 생각마저 들게한다.
그렇다면 지금 외치고 있는 변화가 세상을 바르게 바꾸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지배세력이 되기 위한 수단이라는 뜻이 아닌가.
국민은 새로운 지배세력이 되라고 노정권에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다. 노대통령은 임기동안 정해진 권한 내에서 나라를 안정되고 바르게 이끌면 된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허용한 자율의 한계를 넘거나, 대한민국의 본질적인 체제를 무시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 국민은 노무현 후보가 내세운 변화의 겉모습만 보았지 속모습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했다.
유권자의 선택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각 정당들의 득표를 위한 선거전략에 빠져들지 말고 어떤 정당 어떤 후보가 바른 이념과 정책으로 국민을 대변할 능력이 있는 가를 똑바로 평가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국 국민은 총선 후 지금 보다 더 엄청난 휴유증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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